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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생명재산을 보위하여
류 응 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고 가르치시였으며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 싸울데 대하여 항상 다음과 같이 강조하시였다. 항일유격대는 인민들을 항상 자기 혈육처럼 사랑하고 존경하며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목숨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심장속깊이 새기고 장구한 15성상 언제 어디서나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싸웠다.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대로 혁명은 인민대중자신의 사업이며 그들이 자각적으로 동원됨으로써만 승리할수 있다는 혁명적군중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르는 곳마다에서 정치사업을 앞세워 인민들을 교양하고 조직동원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위에 굳게 단결시키였으며 그들과 함께 싸웠다.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 이룩된 군민일치의 전통적미풍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나는 1937년 칠성하강반에서 있은 일들을 다시금 회상하게 된다. 그해 봄 내가 속한 부대는 근거지를 떠나 칠성하강반으로 진출하였다. 그것은 이 지대 인민들속에 혁명적영향을 주어 그들을 반일혁명조직에 묶어세우는 한편 적들의 략탈적만행으로부터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칠성하강반은 끝없이 넓은 벌판을 이루고있었다. 넓은 벌은 모두 습지판으로 되여있었는데 군데군데 높은 구릉지대가 마치 바다에 섬처럼 솟아있었다. 이곳은 땅이 걸어서 곡식이 잘되였고 특히 아편이 잘되였다. 그러기에 이곳 인민들은 알곡농사와 함께 아편농사도 많이 하고있었다. 인민들이 피땀 흘려 지은 곡식과 특히 아편에 눈독을 들인 일본수비대, 위만군경과 관리놈들은 해마다 수확때가 되면 이곳에 달려들어 곡식과 아편을 몽땅 빼앗아가군 하였다. 우리는 인민들의 사무친 원한을 풀어주며 놈들의 략탈로부터 인민의 리익을 보호하려고 이곳에 진출하였던것이다. 우리가 칠성하를 건너 투도린즈에 이른것은 그해 4월이였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민의 리익을 위해 싸우는 항일유격대라는것을 잘 알고있던 이곳 인민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마을로 들어가서 인민들의 집에 나뉘여서 휴식하며 그들속에서 정치사업을 하였다. 리학만동지는 마을인민들을 모아놓고 유격대의 성격과 사명에 대하여 해설한 다음 우리가 칠성하강반일대에 진출하게 된 목적에 대하여 알기 쉽게 이야기하여주었다. 인민들은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일부 완고한 사람들과 적지 않은 로인들은 아직도 완전히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그것은 일만군경놈들의 계속되는 략탈과 압박에 시달릴대로 시달려 총쥔 사람만 보면 겁부터 먹었기때문이였다. 우리들은 항일유격대가 진정으로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혁명군대라는것을 반복해설하여주면서 로인들을 존경하고 어린이들을 사랑하며 인민들의 일손을 적극 도와주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일하면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죄행과 지주, 반동관료배들의 착취와 압박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고 인민이 살길은 오직 일제와 싸우는 길뿐이라는것을 일깨워주었다. 부락주민들은 례절이 바르고 헌신적으로 자기들을 돕는 우리 유격대를 점차 믿게 되였으며 진심으로 우리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지휘부에서는 마을의 핵심들을 장악하고 그들에 의거하여 반일혁명조직을 내오고 그것을 확대하도록 지도하였다. 투도린즈마을이 어느 정도 혁명화되고 혁명조직이 튼튼히 뿌리박게 되자 우리 부대는 다른 마을을 혁명화하는데 착수하였다. 투도린즈에서 30~40리 서북쪽에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악질적인 자위단이 둥지를 틀고있었다. 우리 부대는 이 마을 인민들을 해방하고 인민들속에 혁명적영향을 주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다.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부대지휘성원들은 자위단장놈앞으로 편지를 써서 농민에게 주어 들여보내였다. 편지내용은 우리 부대가 며칠동안 마을에 머물겠으니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을 보장하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자위단단장놈은 편지를 받자 그것을 마구 찢어버리며 반항해나섰다. 놈들이 계속 반항해나오는 조건에서 우리들은 당장이라도 총공격으로 이행하여 섬멸해치우고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한번 인내성을 발휘하여 악질놈들을 제외한 자위단원들을 돌려세울 대책을 세웠다. 리학만동지는 부락인민을 모아놓고 선동연설을 한 다음 자위단원들의 가족 50여명을 따로 모아놓고 그들을 설복하였다. 우리 항일유격대의 성격과 사명 그리고 포로들에 대한 관대한 정책에 대하여 알게 된 자위단원들의 가족들은 자진하여 아들과 남편들을 설복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자위단원들이 들어박힌 외딴집으로 달려가서 소리를 치며 울고불고하였다. 《왜 헛되이 죽겠는가. 손을 들고 나오라.》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총을 쏘지 말라.》 자위단원들의 가족들은 제각기 자기 아들과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웨쳤다. 어떤 로인과 녀성은 《쏠라면 나부터 쏘라.》고 가슴을 내대며 자위단원들이 들어박힌 집으로 달려들어갔다. 자위단원들은 마침내 항복하겠다고 하면서 제발 용서해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들을 설복하여 자기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얼마간 이 마을에 머물러있으면서 인민들속에서 정치사업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일손을 도와주면서 그들을 반일사상으로 교양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이 투도린즈부근마을 인민들속에 혁명적영향을 주고는 얼도린즈, 싼도린즈 마을들로 다니면서 칠성하강반의 인민들속에 혁명적영향을 주었으며 광범한 인민들을 반일혁명조직에 묶어세웠다. 칠성하강반에서 우리의 활동에 겁을 먹은 적들은 그후부터는 함부로 이 지대에 달려들어 아편과 곡식을 빼앗아가지 못하였다. 때문에 원쑤 일제놈들은 악에 받쳐 우리 부대에 대한 집중《토벌》을 서두르고있었다. 이 지대가 습지로 둘러싸여있고 또 우리 부대가 강한 전투력을 소유하고있으며 령활한 전술로 싸운다는것을 잘 아는 적들은 적은 력량으로는 달려들 생각도 내지 못하고 저들의 력량을 집결하느라고 날뛰였다. 우리 부대가 투도린즈에 다시 돌아왔을 때 현소재지에 둥지를 틀고있던 일만군경놈들이 총출동하여 《토벌》하러 온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칠성하강반일대는 사방 수백리 습지판이여서 잘못행동하다가는 개활지대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피해를 입을수 있었다. 그러나 투도린즈마을의 견고한 성에 의거하여 적을 친다면 대적이 달려들더라도 막아낼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후 우리들은 부락동북쪽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차지하고 전투준비를 갖추라는 지휘부의 명령을 받았다. 우리들은 견고하고 믿음직한 성을 버리고 사방에서 적이 공격해올수 있는 불리한 지대로 옮기는 까닭을 정확히 알지 못하였었다. 사실 견고한 성벽에 의거하여 적을 막는다면 아주 유리할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마을인민들도 그것을 요구하였고 또 그들은 자기들도 유격대와 같이 싸우겠다고 떨쳐나섰다. 그러나 지휘성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심중히 토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적들이 박격포의 엄호밑에 달려드는 조건에서 성벽을 의지해 싸운다면 포탄에 마을사람들이 상할수 있었고 주민가옥들이 파괴될수 있었다. 유격대는 인민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우며 인민에게 사소한 피해라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행동해야 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지휘성원들은 비록 지형이 불리하다는것을 알면서도 우선 인민의 생명재산을 보위하기 위하여 적들을 성밖으로 유인하여 소멸할데 대한 결심을 택하였던것이다. 지휘성원들로부터 이런 사연을 듣게 된 우리들은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지라도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위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새롭게 다지게 되였다. 우리들은 사기충천한 가운데 시간을 최대한으로 리용하여 언덕우에 전호를 파고 무기를 손질하였다. 이윽고 수십대의 자동차와 마차를 몰고 온 적들이 박격포, 적탄통의 엄호밑에 기세등등하여 포위태세를 취하며 달려들었다. 전투는 첫순간부터 아주 가렬하였다. 적들은 박격포, 적탄통과 기관총의 엄호를 받으며 우리가 차지한 릉선에 기여붙으려고 발악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침착하게 적을 접근시켜놓고서는 명중탄을 퍼부어 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히군 하였다. 원쑤들은 무리주검을 내면서도 수적우세를 믿고 계속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포사격과 기관총사격을 강화하면서 미칠듯이 삼면포위태세로 달려들었다. 적들이 포사격의 엄호밑에 집요하게 달려드는 조건에서 방어전을 오래 끈다면 완전히 피동에 빠질수 있었다. 지휘성원들은 적들을 우리가 차지한 릉선뒤에 있는 습지판으로 유인하여 소멸할 작전계획을 세우고 서로 엇바뀌여 엄호하면서 습지를 빨리 건너가서 매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다른 중대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릉선에서 철수하여 무연한 벌판을 내달리였다. 얼마 안가니 넓이 150~200m나 되는 습지가 큰 강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습지판을 건느기 시작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물이 그리 깊지 않은것 같았으나 정작 들어서니 발밑에 감탕이 흐물흐물하여 금시에 허리까지 빠져들어가군 하였다. 재빨리 동작하지 않다가는 상반신까지 빠져들어가서 몸을 움직일수 없게 될것이였다. 우리는 빠져들어가면 서로 끌어내주고 부축하면서 재빨리 습지를 건너 대안의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고 매복하였다. 이윽고 적들을 유인해온 방어대동무들이 습지판을 건넜다. 방어대동무들을 쫓는데만 정신을 팔던 적들은 습지판에 뛰여들어 허우적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기다리고있던 우리는 놈들에게 일제히 명중탄을 퍼부었다. 습지판에 들어섰던 적선두부대놈들은 순식간에 소멸되여 자취도 없이 수렁밑으로 빠져들어가고말았다. 뒤따르던 적들은 이 꼴을 보자 공포에 질려 습지에 들어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서성거리기만 하였다. 원쑤들이 더는 습지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게 되자 우리 지휘성원들은 서성거리는 놈들을 소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였다. 우리들은 습지변두리에 서서 돌아가는 놈들을 모조리 쓸어눕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놈들의 뒤통수에 대고 명중탄을 퍼부었다. 우리는 날이 저물 때까지 싸워 적을 소멸한 후 다시 투도린즈마을로 들어갔다. 인민들은 자기들의 안전을 위하여 적을 유인하여 희생적으로 싸운 우리들을 감격에 넘치여 얼싸안고 돌아갔다. 투도린즈에서 우리의 타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겨우 도망쳐간 원쑤놈들은 다시금 력량을 수습보충하여가지고 기여들었다. 그것은 우리가 얼도린즈에서 활동하고있을 때였다. 놈들은 린근에 주둔한 병력까지 긁어모아가지고 달려들었으나 더욱 섬멸적인 타격을 받고 패주하지 않을수 없었다. 두번에 걸치는 우리의 타격이 얼마나 섬멸적이였던지 적들은 륙지로 달려들어서는 도저히 당해낼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이번에는 공중으로 달려들었다. 놈들은 저들의 비행기를 동원해가지고 련 사흘동안 우리의 림시근거지 쓰광린즈수림에 폭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놈들이 아무리 발악하여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인민들속에서 활동을 강화하였다. 우리들은 놈들의 발악이 심할수록 더욱 용기백배하여 칠성하강반인민들의 리익을 옹호하여 싸웠다. 그리하여 그곳 인민들이 풍작이룬 낟알을 거두어들여 완전히 은페하게 하였다. 그후에 우리는 그곳을 떠나 근거지로 돌아왔다. 포와 비행기 등 원쑤들의 그 어떠한 무기도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우며 인민들과 혈연적련계밑에 활동하면서 그들의 절대적인 지지성원을 받는 우리 인민혁명군의 투쟁을 저지시킬수는 없었다. 인민들은 자기들의 권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며 조국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을 적극 지지원호하였다. 그들은 우리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지성어린 원호물자를 보내주었을뿐만아니라 수시로 적정을 알려주었고 적탄이 비오듯 하는 전호속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더운 물과 밥을 날라다주며 우리와 같이 싸웠었다. 이때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가르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인민의 리익과 그의 권리를 옹호하는것은 혁명을 하는 사람의 첫째가는 의무입니다. 혁명에 나선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인민의 권리를 옹호하는것은 그들의 초보적이며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나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대로 앞으로도 인민의 권리와 리익을 옹호하여 모든것을 바쳐 싸우며 언제 어디서나 인민의 충복답게 그들에게 헌신복무할 결의를 거듭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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