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도기사

 

 

력사적인 통일음악축전

뜻깊은 상봉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진행되는 기간 한 오누이가 서로 갈라져 음악을 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들의 상봉의 자리를 몸소 마련해주시였다.

카나다에서 발간되는 해외교포신문 《뉴코리아타임스》 1990년 12월 8일부에는 《청중들을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산가족 누나와 동생의 연주》라는 제목아래 미국 서부지역 조선음악가대표단 첼로연주가 리방은과 평양음악단 피아노연주가 리민섭 오누이가 민족분렬 45년력사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범민족통일음악회에 함께 출연한 모습과 혈육의 정을 나누는 행복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을 실었다.

글은 첫머리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는 조국과 해외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의 기쁨을 주었으나 한편 슬픔도 안겨주었다고 하면서 《그중에서도 평양에 사는 동생인 피아니스트 이민섭의 반주로 미국에 사는 누나인 첼로니스트 이방은녀사가 첼로독주를 했을 때 청중들에게 뜨거운 흥분을 주었으며 동시에 또한 민족의 한과 슬픔을 안겨주었다.》고 썼다.

민족분렬의 슬픔과 통일갈망의 피타는 고발장으로 된 오누이의 상봉에 대한 이야기는 그때로부터 40여년전부터 시작되였다.

오누이의 아버지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남조선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유명한 피아노연주가였으며 안해와 두딸을 둔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미제에 의하여 강요된 전쟁은 이 나라의 모든 가정들과 함께 이 행복한 가정의 꿈과 노래를 산산쪼각이 나게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품을 찾아 북으로 온것처럼 이들의 아버지도 안해와 두딸을 서울에 남겨두고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왔다.

공화국의 품에 안긴 그는 조선로동당의 은혜로운 사랑과 은정속에서 대학의 교수로, 피아노연주가로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웠으며 그 보람차고 행복한 나날 다시 가정을 이루고 아들과 두 딸까지 두게 되였다.

공화국의 훌륭한 교육제도하에서 음악예술인육성에 한생을 바쳐온 그는 훌륭한 피아노연주가로 자라난 아들을 남겨놓고 남녘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안해와 딸, 그처럼 소원하던 통일의 그날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한편 서울에 남은 그의 두 딸은 홀어머니의 눈물겹고 피나는 노력에 의하여 언니는 첼로연주가로, 동생은 바이올린연주가로 자라났다.

당시 미국의 로스안젤스에서 70고령의 어머니와 함께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음악활동을 계속하고있던 언니 리방은은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앞서 아버지가 남기고 간 오랍동생이 평양에서 피아노연주가로 활동한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는 동생과 함께 통일음악회무대에서 연주하고싶은 간절한 소원이 담긴 편지를 범민족통일음악회 북측준비위원회앞으로 보내여왔다.

편지를 받은 일군들은 이 사실을 위대한 장군님께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범민족통일음악회무대에서 오누이가 함께 연주할수 있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음악은 동생이 직접 선정하여 사전에 보내주도록 세심하고 은정깊은 조치까지 취하여주시였다.

동생의 회답편지와 함께 연주할 음악을 받은 누이는 감격과 흥분으로 설레이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며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연습의 나날을 보냈다.

온 민족의 크나큰 기대와 관심속에 통일음악회가 열릴 그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었다.

세계 여러나라들에서 살고있는 동포음악가들과 함께 누이는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동생과 나란히 앉아 연주할 희망을 안고 꿈결에도 그리던 평양에 들어섰다.

평양고려호텔에서는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오누이의 감격적인 상봉이 벌어졌다. 그것은 민족분렬의 아픔을 안고 사는 우리 민족의 모습그대로였고 통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의 축도이기도 하였다.

1990년 10월 20일 드디여 범민족통일음악회의 무대에 통일의 몸이 된 오누이가 손을 잡고 함께 나섰다.

장내에 감격과 기쁨의 파도가 설레이는 가운데 동생의 피아노반주로 누나의 첼로독주 《삼지연의 새벽길》이 연주되였다.

혈육의 뜨거운 정은 부드러운 선률과 화음으로 융합되여 장내를 덮었다. 정녕 그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갈라졌던 혈육을 한품에 안아 통일음악의 무대에 세워준 위대한 장군님의 고마운 품에 대한 찬가였고 그 품에 안겨살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과 념원의 분출이였다.

오누이는 재치있는 연주기법과 째인 안삼불로 작품의 아름다운 서정과 폭넓고 심오한 사상주제적내용을 훌륭히 형상함으로써 관중들에게 위대한 어버이를 령도자로 모시고 사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었다.

오누이는 이어 《노을비낀 바다가》도 훌륭히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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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연주보다도 활을 그어가는 누나와 피아노를 타는 동생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관중들은 모두 격정속에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연주가 끝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올랐고 북에 있는 녀동생들이 무대에 뛰여올라가 언니와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감격적인 상봉이였다.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진행되는 기간 누나는 뜻깊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였다.

그는 아버지가 진정한 조국의 품에 안긴 후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으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음악활동을 하였다는것과 돈한푼 들이지 않고 동생이 피아노연주가로 자라났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근 40년동안 딸을 그리며 남긴 유물까지 받아안게 되였다. 그것은 전후시기에 아버지가 자기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마련해두었던 목걸이였다.

몇해전 아버지는 오래동안 간수해온 그 목걸이를 아들앞에 내놓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걸 끝내 내 손으로 주지 못하겠구나. 네가 이걸 누이한테 전해라. 그날은 꼭 온다. 수령님과 장군님의 품속에서 우리 민족이 행복하게 살게 될 그날을 나는 믿는다.》

누나는 아버지의 유물을 가슴에 안고 목이 메여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르며 우리 겨레가 함께 모여살 통일의 그날을 위하여 한몸 다 바쳐갈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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