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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드뷔씨에 의한 인상주의음악의 발생

 

리석훈

 

인상주의음악은 19세기말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아쉴 드뷔씨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인상주의음악의 발생은 1892년에 드뷔씨가 창작한 관현악곡 《목신의 오후에로의 전주곡》의 출현으로부터 보고있다.

《목신의 오후에로의 전주곡》은 관현악적인 수법과 음악형상수단들의 활용에서 새로운 음악양식적특성을 전면적으로 보여주고있는것으로 하여 당시 작곡가의 개성적면모를 크게 드러내보이면서 유럽음악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프랑스 인상주의미술에서 나온것으로서 드뷔씨의 음악이 인상주의미술의 기법적특성과 류사하다는 뜻에서 씌여진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인상주의음악이 미술에서부터 발생하였다고 보는것은 그릇된 견해이다.

인상주의음악의 발생은 당시 유럽음악발전의 복잡한 환경속에서 새로운 음악리념을 추구하고 음악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려는 작곡가들의 지향과 노력의 결과라고 볼수 있다.

인상주의음악의 발생요인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고찰해볼수 있다.

인상주의음악은 우선 프랑스적인 음악을 창작하기 위한 드뷔씨의 창작적지향으로부터 발생되였다.

인상주의음악은 후기랑만주의시기에 음악의 고전주의적인 전개원리에서 벗어나 음악리념과 양식에 있어서 새로운것을 추구한것으로 특징지어지지만 그 발생은 전적으로 프랑스사람의 성격과 기질에 맞는 음악을 창작하기 위한 작곡가의 의도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음악이 일찌기 발전한 나라이며 수도 빠리는 유럽문화의 중심지의 하나로서 오랜 력사적전통을 가지고있었다.

프랑스음악은 중세기로부터 문예부흥기와 바로크시대까지의 오랜 력사적기간에 유럽음악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그것으로써 자기의 음악적지위를 크게 과시하였다.

랑만주의시대에 이르러서도 프랑스음악은 베를리오즈, 구노, 쌩-상스, 프랑크, 포레, 비제 등 이름있는 작곡가들의 창작활동에 의하여 프랑스적인 우아하고 정교한 음악적특성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랑만주의시대의 프랑스음악은 그 형식에 있어서 도이췰란드, 오스트리아의 고전주의적인 전통에 의거하고있었다. 다시 말하여 윈고전주의 시기에 형성된 음악형식과 전개원리를 바탕으로 하고있었다.

프랑스사람들은 음악적감정표현에서 전통적으로 부드럽고 감미로우면서도 자연스러운것을 추구하였으며 극적이고 서사적인것보다는 서정적이고 화려한것을 좋아하였다.

작곡가 드뷔씨는 창작초기부터 자기 민족의 이 고유한 감정정서에 맞는 음악을 창작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그 실현을 위한 구상을 무르익혀왔으며 그 과정에 고전주의시기에 형성된 도이췰란드,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음악구조에 의해 나타나는 감정표현이 프랑스사람의 기질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그는 음악수학과 같은 규칙적이고 틀에 매인 쏘나타형식이나 와그너의 음악극과 같이 장황하고 복잡한 형식들은 프랑스사람의 성격에 맞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것이며 이러한 딱딱하고 지루한 형식들에 의거해서는 진정한 프랑스적인 감정을 살릴수 없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드뷔씨는 한때 로씨야 작곡가 챠이꼽스끼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부인의 집에 피아노반주자로 초빙되여 로씨야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로씨야 작곡가들이 도이췰란드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나 로씨야적인 개성을 가지고있음을 느끼고 프랑스음악도 도이췰란드의 영향에서 벗어나야겠다는것을 결심하게 되였다.

바로 그것을 실현하는데서 드뷔씨가 확신을 가질수 있었던것은 자기가 추구하고 구상하는 모든것이 도이췰란드, 오스트리아의 고전랑만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히 프랑스적인것이라는데 있었다.

이처럼 드뷔씨는 자기 민족의 고유한 감정정서를 구현함에 있어서 프랑스의 다른 작곡가들이 하였던것과는 달리 새로운 음악적사고방식에 기초한 프랑스적인 음악의 혁신적인것을 추구하였으며 이것은 《인상주의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사조를 발생케 한 중요한 요인으로 되였던것이다.

인상주의음악은 다음으로 프랑스인상주의미술과 상징주의시문학의 일정한 수법과 특징들을 음악에 받아들인 결과에 발생하였다.

프랑스사람의 정서와 특질을 반영한 음악, 즉 감미롭고 정교한 음악창작을 추구한 드뷔씨에게 있어서 프랑스인상주의미술과 상징주의시문학은 흥미있는 소재로 되였다.

프랑스 제2제국이 붕괴되고 제3의 공화정치가 시작된 1870년대부터 프랑스예술은 새로운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현상이 인상주의미술과 상징주의시문학의 출현이였다.

인상주의미술과 상징주의시문학은 다같이 과거 수십년간 철학, 문학, 예술을 지배하여온 사실주의를 반대하고 리상주의를 추구하여 발생한 새로운 문학예술사조였다.

특히 인상주의미술은 그 양식에 있어서 프랑스사실주의미술과 완전히 상반되는 도전적인것으로 나타났다.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말 프랑스미술계의 이른바 《전위화가》들의 작품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빠리예술원은 비정통적인 화가들인 모레, 드가, 피싸로, 씨슬레이, 르노와르 등의 작품들을 비방하였다. 이때 그에 대한 평을 쓰게 된 르로이라는 한 평론가는 모레의 작품 《해돋이의 인상》을 비꼬아 이들을 인상주의자라고 하면서 비평하였는데 이것이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나오게 된 계기가 되였다.

처음에는 부정의 뜻으로 쓰인 용어였지만 화가들은 오히려 이러한 비평과 용어를 긍정적인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기들을 인상주의자라고 자처하였다.

인상주의화가들은 빠리예술원이 공식처럼 내세우던 모든 랑만주의전통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들은 기존화풍의 성격인 사물의 정확한 묘사를 부정하고 사물에 대한 예술가의 순간적인 느낌을 화폭에 담으려고 하였다.

이들의 회화양식의 특징은 빛의 강조와 희미한 경계선, 복잡하게 얽힌 색조와 감정,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형식들을 들수 있다. 그중에서도 기본형상수단은 빛이였다.

이러한 인상주의회화양식이 인상주의음악의 발생에 영향을 주었던것이다.

인상주의음악의 대표자인 드뷔씨는 1890년대에 빠리의 인상주의화가들과 많이 교제하였다.

이 시기 서양음악의 토대를 이루고있던 기존음악규칙과 전통적인 양식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드뷔씨에게 있어서 그들의 인상주의회화양식은 매우 흥미있는 소재로 느껴졌다.

드뷔씨는 인상주의회화의 특징적인 수법의 하나인 스쳐가는듯 한 느낌과 안개처럼 희미한 분위기를 음악으로 펼쳐보이는데 관심을 돌렸다.

그는 한낮의 해빛이 주는 나른한 느낌과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은 류동적인 느낌,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만져지지 않는 모호한 성질, 끊임없이 변하는 비고정적인 성질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데 힘을 넣었다.

드뷔씨는 인상주의미술의 특징적인 수법들을 음악에 효과있게 살려 쓰는 과정에 기존음악의 전통과 기법에서 벗어날수 있었으며 자기가 추구하던 프랑스적인 감미로운 세계, 꿈을 꾸는듯 한 미묘한 세계의 독특한 정서를 펼쳐보일수 있었다.

프랑스사람의 정서적특질을 음악작품에 구현하려는 드뷔씨에게 도움으로 된것은 또한 프랑스 상징주의시문학이였다.

이전에 프랑스의 작곡가 쌩-상스는 프랑스적인 독특한 시적억양속에서 민족의 향취와 정서가 짙은 감미로운 선률을 훌륭히 구사해냈다.

바로 드뷔씨도 그러했다고 말할수 있다.

당시 프랑스문학계에 크게 두드러졌던 상징주의시는 이전의 시와는 달리 감상적인 억양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있었다.

상징주의시문학의 대표자들인 베를레느, 보들레르, 말라르메는 자기들의 작품에서 단지 사상만을 나타낸것이 아니라 시적억양에서 어떠한 영상을 불러일으키려는것을 지향하였다. 이들의 시에서 언어는 고도로 섬세한 감각을 도출해내는 상징적인것으로 되여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상징주의시를 놓고 시라기보다 《언어의 음악》이라고 하였다.

드뷔씨는 1870년대에 상징주의시인들과 많이 접촉하게 되였는데 그때 감성과 리상만을 추구하는 극히 귀족적인 이들의 시에서 프랑스적인 정교하고 감미로운 세계를 느끼게 되였던것이다.

하여 상징주의시는 감정보다 감각을 중시한 드뷔씨의 예술양식을 결정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인상주의음악의 발생에 영향을 준것은 이외에도 자유로운 형식감이나 새로운 선률양식을 안겨준 동아시아음악의 신비한 느낌이나 에스빠냐 민속무곡과 같은 이국적인 음악정서이다.

19세기말 빠리에서는 《이국취미》가 류행되고있었다.

당시 빠리는 문학, 미술, 음악 등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들의 문명을 크게 자랑하고있었지만 일부 문화인들속에서는 유럽문화에 권태감을 느끼고 오히려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다른 대륙 나라들의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에서 신기하고 참신한 주제를 찾으려는 경향이 싹터났다.

이국의 문화에서 일종의 《리상향》을 찾으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류행처럼 급속히 번져져 음악에까지 파급되였다.

1899년 빠리에서 열린 제1차 만국박람회에서 드뷔씨를 비롯한 음악가들이 큰 감명을 받아 자기들의 음악속에 그러한 울림을 재현하려고 한것은 그 뚜렷한 증거로 된다.

이처럼 인상주의음악은 유럽음악발전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던 19세기말 20세기 초엽의 복잡다단한 격류속에서 프랑스적인 음악창작을 지향하여 발생하였다.

하지만 인상주의음악은 그 발생의 초기부터 당시 프랑스예술계를 크게 휩쓴 자연주의적인 예술조류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럽고전주의음악의 우수한 전통과 인민음악적인 요소들을 잘 살리면서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지 못한데로부터 몇몇 전문가들을 제외한 대중적인 호평과 인기를 얻지 못한채 사멸되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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