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하의 좌표속에
오보에, 하프, 소관현악을 위한 2중협주곡 《견우와 직녀》
프랑크 슈나이더
3. 최초의 륜곽
이 곡은 윤이상의 창작품중에서 첫 협주적작품은 아니고 1972년의 《협주적음형들》로부터 시작되여 소관현악을 위한 《협주적단편》, 첼로협주곡(1975~76), 플류트협주곡(1977)으로 펼쳐지는 일련의 협주곡작품대렬의 뒤를 잇는 곡이다. 이 곡은 1977년초 연주가 흘리거 부부(Heinz und Ursuia Holliger)를 위해 씌여졌고 역시 그들에게 주어져 그해 9월 26일 도이췰란드 베를린필하모니에서 프란시스 트라비스 (Francis Travis)의 지휘로 처음으로 연주되였다. 특기할만한것은 두 연주거장들이 고도의 연주기법적어려움과 각 독주부분의 무한한 음향상의 섬세함을 가능케 했을뿐아니라 그들의 각별한 동반자적연기를 서로의 관련에서나 관현악과의 대치에서나 훌륭히 연출해냈다는 점이다. 독주부분들의 처리는 정말 부지중에 한쌍의 비유체를, 즉 영향이 큰 주변정황속에서 무엇인가를 체험하거나 고통을 겪는 대조적인 주역들의 표현적으로 전개되는 극적인 련계를 나타낸다.
오보에와 하프를 여기서 음량이 큰편이 아닌 악기로 통용시키기 위해 윤이상은 이것들을 음이 약하도록 편성한 《작은》 관현악과 조화시켰다. 즉 현악기외에 각각 두대씩의 플류트, 클라리네트, 화고트 그리고 오보에 한대, 호른 두대, 트럼베트와 트롬본이 각각 한대씩에, 두명의 연주자를 위한 풍부한 타악기들이 그 편성이다. 여기서도 하나의 특유한 무리적움직임이 눈에 띄는데 례하면 금관악기군 같은 개별음향군들이 특히 무리를 지어 특정한 동기적인 형상종목을 가지고 등장하기도 하고 혹은 이들이 독자들과의 협주적인 교대연주속에서 정확히 유발된 대응방식을 나타냄으로써 우리가 쉽게 알수 있는 동조자들이든가, 반대자들이라든가, 중립적인 단역들 등을 그려내기도 하는것이다. 어쨌든 동등한 악기의 형세가 더해주는 인상은 여기서의 초점이 반주를 수반한 빛나는 걸작도, 상례적인 영웅의 숙명을 담은 교향악극도 아니라는것이다. 우리는 가벼운 소설적구조속에 담겨있고 조형적인 장면의 표상력에 의거해있는 하나의 비유적인 음향으로 양식화된 줄거리를 체험하게 되는것이다. 이 협주곡은 단악장이기는 하지만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단계로 나누어진다. 즉 에피소드들의 련속인데 이들은 대략 고전적인 3부분형식구조(빠르게-느리게-빠르게)에 따라 하나의 되풀이 형식을 이룬다. 때로는 대항과 복종사이를 오가는 관현악과의 격렬한 대화속에서, 때로는 《자기들》만을 위한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명상속에서 오보에와 하프가 하나의 음향길을 질주하는데 이 길은 그들을 구체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종종 극심한 《피안》의 지역까지 몰고가는것 처럼 보이나 결국 그들보다 훨씬 세속적인 다른 악기들의 등장과 함께 하나의 예정된 조화를 찾도록 한다.
4. 흡족한 해명
작곡가자신의 여러 표명을 통해 알수 있듯이 그에게는 하나의 추상적인, 순전히 구조구성적인 음악적사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적관념들은 언제나 전의적인 특질에 놓여있어서 대개 원칙적으로 현실과 인간적존재의 모든 계층들을 포괄하는 소리창조적인 인상들이나 기억들, 감정들 혹은 생각들과 결부되여있다. 그러므로 2중협주곡의 명실공히 《이야기하는》 특성도 구체적인 근거에 의한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특정한 소재를 통해 유발된것인지, 물론 이에 대한 대답에 음악의 근본적인 리해가 달려있는것은 아니고 작가로부터 꾀해진 언어성의 인식이 좌우되는것이지만 당연한 의문으로 제기되여야 할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왈터 월프강 슈파러 (Walter-Wolfgang Sparrer) 가 전하듯 조선의 옛이야기에 기초하고있는데 그 이야기는 여러가지 변형속에 전래되고있으며 중국과 같은 다른 동아시아민족들사이에서도 이야기되고있다.
한 가난한 목동과 선녀같이 아름다운 공주가 목동의 간절한 청원끝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공주의 아버지인 임금(또는 그들이 섬기는 하늘의 제왕)은 세속적인데다 신분이 서로 맞지 않기까지 한 그 녀자의 선택에 불같이 노하여 두 사람을 별자리(견우와 직녀)로서 우리가 《우유길》(Milchstraβe)이라 부르는 은하수의 량편으로 갈라 귀양을 보낸다. 형벌을 약간 감하는것으로 1년에 한번씩 은하수의 중간지점에서 만나는것이 두 사람에게 허락된다. 바로 이 《칠석날》(음력 7월7일)에는 모든 까막까치들이 하늘높이 올라 이 련인들을 위해 다리를 놓는데 이 힘겨운 일로 깃털을 잃는다는 이야기에서 처럼 조선에서는 실제로 칠석을 즈음하여 까막까치들이 사라지고 털갈이를 한다고 한다.
윤이상이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다 곡을 붙일 때 거기에 응집된 사건들이나 그림같이 아름다운 한쌍을 주요관점으로 하지 않았다는것은 말할것도 없다. 그는 그런 자극을 음악적으로 좀더 합당하고 좀더 우화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해석을 가하고 표현해내기 위하여 《교향시》의 승화된 형식에서 의례 그러듯이 리상적인 본체와 기본적인 갈등구조, 시적선희점 그리고 몇몇 삽화적항목들을 리용하였다. 여기서 관현악이 유익하거나 방해적인 주변상황을 이루어내는 가운데 두 연주자가 전혀 착오없이 《갈대 피리를 부는》 목동과 《하프를 뜯는》 공주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독주협주곡분야에서 개별적인 성분들과 집합적인 성분들의 충돌로 이루어진 앞과 같은 힘의 평행사변형이 드물지 않다는 사실만큼이나 자명하다.
5 . 음진행과 음형
이 협주곡은 금관악기4대의 딱딱하면서 음조가 강해지고 날카롭게 찢어지는 화음과 함께 시작된다. 높은 음역에 간격이 좁은 3도로 구성된 이 소리는 신호처럼 작용하는데 이는 곧 궁중의 준엄하고 가차없는 의례들로 빚어지는 분위기를 표현한다. 하프독주는 단락을 짓는 짧은 항변과 충동적인 알페지오로 개인적인 력동성을 강조하기는 하나 동시에 어떤 지배적인 기운에 대한 협착한 속박에 중점이 주어지기도 한다. 반복에서 이미 대비성이 약화되여 결국 하프는 서서히 등장하는 목관, 현, 타악기들을 부드럽게 주위로 모을수 있게 된다. 이때 저 멀리의 정적으로부터 속삭이듯 오보에의 부드럽게 부르는 소리가 다가와 하프에 거의 격정적인 인사를 보낸다. 이제 지금까지의 요소들이 자유로이 변형되며 이어지는 속에 관현악의 주류가 하나의 변형된, 두드러지게 저항적인 처신을 하는데 불청객에 대한 경계로 간주된다. 금관은 불협화적인 거동을 하고 목관은 절규하며 현은 격렬한 트릴과 글리싼도로 완고한 저항을 나타낸다. 그러나 총연주가 다성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보에는 가까이 다가와 하프의 보호에 힘입어 필요한 자리를 얻어낸다.
60소절에서 첫 큰단락의 둘째 부분이 시작되는데 도입부분과 마찬가지로 다시 대략 같은 길이를 가지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이제 한결 친밀한 분위기속에서 실로 실내악적인 모양으로 오보에가 규모가 큰, 강렬한 표현의 목가적인 애모의 음진행을 시작하는데 이는 하프로부터 오히려 수줍게 머뭇거리며 받아들여지는 대신에 현악기들로부터는 좀더 활발하게 받아들여지며 점점 더 공간을 장악해가며 지지를 받는다. 92소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단계에 가서야 하프가 오보에의 커가는 재촉에 한껏 능동적으로 대하며 동시에 목관악기들로 하여금 자기편을 보강하도록 한다. 간간이 몇번쯤, 보다 완고하고 침울한 관악기의 참견이 있은 후 두 독주악기들은 드디여 한데 어울리는데 그들이 선택한 몇몇 악기들을 수반하고 마치 행복의 구름우에 있는것처럼 부드러운 감촉속에서 조용히, 서서히 높이 오르며 둥실둥실 떠다닌다.
이로써 협주곡은 두번째 큰 단락으로 넘어가는데 이 단락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연장된 에피소드로서 136소절부터는 거의 독주자에게만 맡겨지다싶이 한다. 음향적으로 특이한 면을 많이 보여주는 그들의 무척 정다운 대화는 우선은 관현악 오보에의, 다음엔 타악기 몇대가 따르는 첼로독주의 동반(보호하며, 혹은 감시하며?)속에 진행된다. 윤이상은 그 동반자들을 《궁정의 동조자들》로서, 특히 관현악 오보에를 봉황으로서 풀이낸것 같다.
어쨌든 187소절에서 다시 동적으로 변하는 셋째 단락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상황으로 접어든다. 독주자들이 침묵하는 반면에 관현악파트들은 력동적이고도 맹렬한 분출의 소리상을 빚어낸다. 다시 등장한 오보에와 하프는 흥분해있고 무엇에 쫓기는듯 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실제로 어쩐지 기뻐서 어찌할바를 모르는듯 한 금관과 관악기들과 현악기들의 철썩거리는 날개침은 은하수의 천상적분위기속에서의 그들의 《도락》을 생각나게 한다. 하프의 까덴짜, 즉 고독한 독백이 있은 후 255~278소절 사이에 총연주가 마치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건에 대해 개가를 올리듯 하나의 꽉 째인, 단단히 휘여잡는, 떠들썩한 간주곡을 울리게 된다.
우선 여기에는 제시부에서 사용되였던 소재들이 재수용되여 변화무쌍하게 가공되여있다. 한쌍의 련인은 다시한번 단둘만이 있을수있는 기회를 가지는데 리별의 쓰라리고 한스러운 파국과 동작들로 가득찬 연약한 2중주속에 펼쳐진다. 348소절부터 시작되는 관현악의 강한 투입들이 이 작은 화폭을 깨뜨리지만 동시에 그들을 추억과 새로운 희망사이를 오가는 상상의 대화로서 존속케 한다.
376소절부터 시작되는 에필로그에서는 이 협주곡 도입부에서의 상황이 재현되는것 같다. 그러나 긴장관계는 하나의 다른 질서속에서, 즉 다음에 이어지는 공간들속에서 해체되여 평화로움이 가능하게 되고 울리는 힘의 평형이 실현된다.
(다음호에 이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