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조선민요를 대표하고 조선민족을 상징하는

민요 《아리랑》

 

부교수 윤수동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민요 〈아리랑〉에서는 아름답고 유순한 선률로써 조선사람의 넋을 잘 살려냈기때문에 선률만 들어도 민족수난에 찬 력사가 되새겨지고 향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조선민요를 대표하고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민요 《아리랑》이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든 노래인가를 정확히 아는것은 자못 중요하다.

자료에 의하면 민요 《아리랑》은 1926년에 우리 나라 영화개척자의 한 사람이였던 라운규가 만든 무성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새롭게 편작되여 나온 노래이다.

당시 조선을 강점하였던 일제침략자들은 이 시기에 만주침략을 목적으로 우리 나라를 자기들의 공고한 후방기지,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하여 애국적인민들을 무자비하게 체포, 구금, 학살하는 한편 우리 인민의 자주의식을 거세말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문예인들은 우리 인민들에게 애국의 넋과 민족자주의식을 간직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 소설, 영화, 연극, 음악 등 수많은 문예작품을 창작하였다.

민요 《아리랑》은 바로 이러한 사회력사적환경속에서 나오게 되였다.

무성영화 《아리랑》의 줄거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고학을 하고있던 주인공 영진은 3.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모진 고문끝에 정신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진의 가정은 친일주구인 지주 정상민의 소작살이를 하면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있었다.

정상민의 집에는 오기호라는 이름을 가진 마름이 있었는데 그는 오래전부터 영진의 누이동생인 영희에게 눈독을 들이고있었다.

한편 영희는 집에 자주 찾아와 오빠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오빠의 동무인 윤형구와 알게 되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어느해 가을날 마을사람들은 풍악을 울리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지주집에서는 일제경찰놈들을 불러들여 술판을 벌린다.

이때 조용한 집에 홀로 있는 영희를 본 오기호는 자기의 정욕을 채우려고 그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영희는 완강히 저항한다.

그 시각 영희의 비명소리를 듣고 윤형구가 달려와 오기호와 격투를 벌린다. 주인공 영진이도 뒤따라 오기는 하였으나 그는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환각에 빠지게 된다.

잠시 환각에서 깨여난 영진이는 윤형구가 오기호와 필사적으로 싸우는것을 보고 손에 쥐고있던 낫으로 오기호를 죽여버린다.

영진이는 오기호를 죽인 죄로 하여 일제경찰놈에게 체포되여 가면서 마을사람들에게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나는 지금 이 조선에서 태여났기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져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가는 길은 죽음에로의 길이 아니라 재생에로의 길입니다.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내가 사랑하던 〈아리랑〉을 불러주십시오.》라고 말한다. 바로 이 이야기의 마지막대목에서 노래 《아리랑》이 울린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체로 이상과 같다.

영화 《아리랑》은 나오자마자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대목에서 영진이가 한 말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우리 인민이 겪던 불행과 고통, 민족적울분을 진실하게 대변하였다고 볼수 있다.

영화는 1926년 10월 1일 서울에 있는 단성사라고 부르는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였다. 이날 영화에서 《아리랑》을 부른 사람은 우리 인민들속에 영화배우로 널리 알려져있던 인민배우 김련실(1912~1998.) 이였다.

성악가수도 아닌 그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한것은 라운규 자신이였다.

이날 김련실이 부른 영화의 주제가 《아리랑》의 가사와 선률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악보

 

image

 

2. 청청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인 말도 많다

 

3. 문전옥담은 어디에 가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이냐

 

(이 악보는 1985년 1월에 김련실의 집에서 그가 직접 부른 노래를 채보한것이다.)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노래의 1절 가사는 오늘의 민요 《아리랑》과 거의 같고 선률은 음조에서 약간 다를뿐 전반적인 선률진행방향과 선률선은 같다.

조선민요를 대표하고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민요 《아리랑》은 이렇게 무성영화의 주제가로 나오게 되였다.

민요 《아리랑》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지게 되였고 점차 오늘의 현대적미감에 맞게 수정보충되고 세련되여 훌륭하게 완성되였다.

민요 《아리랑》은 아름답고 유순하면서도 조선사람의 민족적감정과 넋을 잘 살려냈기때문에 선률만 들어도 민족수난에 찬 력사가 되새겨지고 향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는것으로 하여 오늘도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로 세계적인 명곡으로 되고있다.

영화의 주제가인 《아리랑》은 서울 단성사에서 변사, 연주가, 작곡가로 있던 김영환(필명 서정인)에 의하여 편작되였다.

모름지기 처음 이 영화를 만든 라운규자신도 영화의 주제가를 어떻게 만들겠는가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였을것이다.

라운규는 김영환에게 영화의 내용에 맞게 주제곡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라운규의 부탁을 받고 김영환은 자기가 알고있는 《아리랑》들가운데서 리상준(1884~1947)이 채보하여 1914년에 출판한 《조선속곡집》에 수록되여 있는 《아리랑》을 선택하여 그것을 당시의 시대적미감에 맞게 편작하였다.

그것은 《조선속곡집》에 수록되여있는 《아리랑》과 새로 편작된 《아리랑》의 선률이 거의 같기때문이였다.

두 《아리랑》의 선률을 악보를 통하여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악보

 

image

 

 

악보에서 보는바와 같이 원곡은 6/8박자로서 선률음조는 단조롭고 지방적색채가 진하지 않다.

김영환은 원곡의 6/8박자를 3/4박자로 바꾸고 조식, 선률진행방향과 선률선은 그대로 살려주면서도 가요선률형식에 맞게 일부 음정과 리듬을 조금씩 변화시켜 노래를 완성하였다.

새롭게 편작된 《아리랑》은 원곡에 철저히 기초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들의 민족적감정과 정서에도 맞았고 또 영화의 사상주제적내용에도 맞았으며 중요하게는 우리 인민들의 나라없는 설음과 원한의 감정이 그대로 반영되여있는것으로 하여 만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였다.

이 노래는 삽시에 전국 각지로 퍼지게 되였다.

새로 편작된 《아리랑》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아리랑》들과 구별되는 일련의 특성을 가지고있다.

우선 민요 《아리랑》은 구전으로가 아니라 작곡가에 의하여 편작되였다.

그 이전 시기에 나온 《아리랑》들은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입을 거치는 과정에 창조되고 완성된 노래라면 새로 편작한 《아리랑》은 직업적인 작곡가에 의하여 창작된 노래로서 처음부터 개성적면모를 뚜렷이 갖추고있다.

《아리랑》은 가사내용에서 우리 민족의 수난에 찬 력사가 짙게 안겨온다. 구전으로 전해온 《아리랑》들에는 당시 사람들이 자기들의 세태생활과정에 느끼는 심정을 노래에 담아 불렀지만 새로 편작한 《아리랑》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설음과 울분, 일제에 대한 분노와 항거의 감정이 담겨져있다.

민요 《아리랑》은 선률에서 민족적인것과 현대적인것이 결합되여있다.

노래는 구전으로 내려오던 선률에 철저히 기초하면서도 현대가요에서 쓰이는 표현수단과 수법을 재치있게 적용하여 편작함으로써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우리 민족의 감정정서를 잘 살려주고있다.

민요 《아리랑》은 또한 페쇄적인 지방적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 이전 시기의 각 지방의 《아리랑》들은 지방적색채가 진한것으로 하여 해당 지방에서는 많이 불리워졌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그리 불리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 편작한 《아리랑》은 구전으로 내려온 《아리랑》들과는 달리 누구나 한번 듣고 부르면 인차 따라 부를수 있게 되여있다.

다음으로 민요 《아리랑》은 우리 나라 음악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민요 《아리랑》이 나오게 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자기 민족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명곡을 가지게 되였으며 각 지방의 《아리랑》들은 전통적인 노래로 고착되고 그에 기초하여 다양하고 새로운 《아리랑》들을 창작할수 있게 되였다.

참으로 민요 《아리랑》은 조선민요를 대표하고 조선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로 아리랑민족의 수난에 찬 력사와 끝없이 룡성번영해가고있는 김일성민족의 밝은 앞날을 찬란한 현실로 실증해주는 력사의 증견자라고 할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선조들이 남겨놓은 귀중한 민요유산들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시대적미감에 맞게 더욱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강성부흥아리랑》과 같은 선군시대가 요구하는 민요풍의 노래들을 더 많이 창작해 나갈것이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