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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에 대하여

 

림주혁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창조물들마다에는 그것을 만들어낸 창조자들의 개성이 뚜렷이 반영되여있다. 이러한 개성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일정한 발전단계를 거쳐 형성된다. 특히 발전의 출발점이라고 할수 있는 첫 단계는 개성의 본질적내용을 특징짓는것으로 하여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에 대하여 정확히 밝히는것은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된다고 생각한다.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단계는 《피아노를 위한 5개 소품》, 《7악기를 위한 음악》이 창작된 1950년대 후반기부터 1970년대 중반기까지로 구분하여 볼수 있다.

윤이상의 음악창작활동에서 초기에 대하여 한마디로 총괄한다면 그것은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표현방식에 기초한 자기 식의 독자적이고도 개성적인 작곡방식을 탐구하고 확립한 시기였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면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기로 하겠다.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은 크게 세 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치였다.

우선 첫 단계는 1958년부터 시작하여 《7악기를 위한 음악》과 《피아노를 위한 5개 소품》이 성과적으로 창작공연된 1959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유럽《현대음악》계의 많은 작곡가들은 음렬작곡법의 모순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출로를 찾기 위해 각양각색의 실험들을 진행하고있었다.

특히 리게띠, 뻰데레쯔끼를 비롯한 작곡가들은 수리적이고 표현성이 결여된 《음렬작곡》방식대신에 음의 다발, 음의 묶음에 인한 음악의 색채성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음향작곡》방식을 내놓았으며 일부 극단적인 작곡가들속에서는 이것을 정당화하면서 음악작품창작에 전기청소기소리와 같은 음악외적인 소리까지 리용하였다.

결국 유럽의 극단적인 작곡가들에 의하여 창작된 다양한 실험작들은 모두 전통의 파괴와 추상성의 추구, 개성의 부인을 제창하면서 음악에서 내용과 형식의 직접적표현인 《령감》, 《감성》, 《민족성》 등의 용어들을 배척한것들로서 음악의 개념마저 의심할 정도로 이질화되여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이역땅에서 《현대음악》작곡법을 배우고 또 새로운 음악작품을 창작하려고 한 윤이상으로 하여금 (나는 어디에 있으며 어데로 가야 하는가, 나도 이 사람들처럼 급진적인 작곡을 하여 전위파속에 지반을 닦을것인가 아니면 우리 동아시아적인 음악전통과 결합된 자기의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할것인가)와 같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윤이상은 당시 유럽의 《현대음악》작곡가들이 추구한 극단적인 방법으로가 아니라 자기가 나서자란 동아시아의 음악관에 기초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여 1959년에 열리는 《현대음악축전》에 내놓을 결심을 품고 1958년에 서부도이췰란드 베를린음악대학에서 류학을 마치고 귀국할 준비를 하는 한편 새로운 작곡방식을 탐구하고 개척하기 위해 모든 정력을 바치였다.

이 시기 유럽《현대음악》계에서는 12음작곡법에 기초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인정을 받을수 없었던것만큼 윤이상은 무조적인 유럽의 작곡방식에 의거하여 자기 식의 실험작들을 창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러나 조선의 전통적인 음표현방식에 기초한 새로운 작곡방식을 기어이 개척할 그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윤이상은 12음작곡법에 기초하여 음악작품을 창작하면서도 개별적인 음의 흐름에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연주표현방식들을 조심스럽게 적용하여 독특한 색갈을 살려나갔다. 즉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음표현방식들인 롱현, 롱음, 미분음 등을 비브라토와 글리싼도를 비롯한 유럽의 연주표현방식으로 살려내였으며 악기소리를 하나 내도 전통적인 민족악기의 소리색갈을 살려내기 위해 탐구를 거듭하면서 음악작품을 완성해나갔다.

그는 1959년에 이와 같은 실험적인 의미로 창작완성한 《7악기를 위한 음악》과 《피아노를 위한 5개 소품》을 다름슈타트와 빌토벤에 보내고 귀국할 준비를 서둘렀다.

바로 이렇게 제출된 실험적인 음악작품들은 그후 그자신도 놀라리만큼 유럽《현대음악》계의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당시 평론가들은 윤이상의 음악작품을 놓고 《억제된 조선적인 민족음악이다.》, 《이 작곡가는 모름지기 그 음조에 있어서 조선의 궁정음악과 최근 윤이 블라허와 루퍼에게서 배운 현대 서양의 작곡기법을 결합시키려고 노력하고있다.…》, 《현대음악의 창작기법도 풍요한것을 가져다줄수 있다는것을 스쳐지나서는 안된다. 즉 조선인 윤이상의 경우처럼 그 기법이 자기 목적이 되는것이 아니고 자연의 음악적직감과 정확한 기법적능력이 결합되는 경우에는 현대음악의 창작기법도 반드시 풍만한것을 가져올수 있는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이처럼 당시의 실험작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성과들은 음렬작곡법이 배제되고 리게띠와 뻰데레쯔끼에 의하여 음향작곡방식이 대두하면서 일부 작곡가들이 각이한 색채실험의 미명하에 음악외적인 소리까지 리용하던 유럽《현대음악》계에 매우 의미있는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윤이상자신으로 하여금 유럽에서 계속 음악창작활동을 벌릴 결심을 가지게 하였다.

결과 이때부터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에서 보다 적극적인 음악창작단계라고 할수 있는 두번째 단계가 시작되였다.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의 두번째 단계는 관현악곡 《바라》를 창작하던 1960년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 《가사》를 창작한 1963년을 전후로 하여 구분된다.

유럽《현대음악》계에 자기의 실험작들을 발표하여 성과를 거두고 본격적인 음악창작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있어서 선차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요소적으로 조심스럽게 적용하던 조선의 전통적인 음의 표현방식에 기초한 작곡방식을 완성하는것이였다. 다시말하여 조선민족의 오랜 문화전통의 우수성을 유럽《현대음악》과 결합시켜 자기 식의 독자적인 음악양식을 확립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윤이상은 이 시기에 음악작품들을 창작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그 주제와 내용을 보다 명백히 표현하였다. 즉 창작의 첫 단계에서는 실험적인 의미로 특별한 주제나 내용이 없이 몇개 악기를 위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였다면 창작의 두번째 단계에서는 조선의 전통적인 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표제화하고 내용에서도 그것을 기본으로 취급하고 또 그러한것들을 표제화하였다.

이것은 이 시기에 창작된 음악작품들인 관현악곡 《바라》,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 《가사》, 플류트와 피아노를 위한 곡 《가락》,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 《노래》 등의 표제를 놓고도 잘 알수 있다.

이 표제들은 아는바와 같이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생활속에서 리용되고 쓰이던 악기나 고유한 음악언어로서 윤이상이 이 시기에 무엇에 중점을 두고 음악창작활동을 벌려나갔는가를 웅변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윤이상은 음악창작의 이 두번째 단계에서 그 주제와 내용에서뿐아니라 작곡방식에서도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음의 표현방식에 기초한 독자적인 기법을 완성해나갔다.

이에 대하여 말한다면 연주방식을 비롯하여 많은 측면에서 이야기할수 있겠으나 그의 음악에서 질적특성을 규정짓는 《주요음》기법을 놓고 구체적으로 보기로 하겠다.

윤이상은 이 시기 초기음악창작의 첫 단계에서와는 달리 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음》들을 작품창작에 적극 적용하였다.

윤이상이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개별음의 특성을 구체화하여 표현한것이 바로 《주요음》기법이다.

그는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에서 표현의 생동한 의미성을 가지고 굴곡있게 형상되는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개별음의 특성을 유럽의 연주방식과 악상기호로 표현하였으며 형상적의미로 개성화된 《주요음》들을 하나로 련결시켜 완결된 음악형상을 창조하였다.

특히 그의 초기음악창작의 두번째 단계에서 주목되는것은 유럽《현대음악》계의 작곡가들이 배제한 음형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것이다.

윤이상의 음악에서 《주요음향》은 형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집약적으로 안고있는 음형화된 《주요음》들의 조직체이다. 다시말하여 형상적내용과 정서적인 의미로 음형화된 《주요음》들의 모임인것이다.

윤이상은 이러한 음형화된 《주요음향》의 선적흐름을 정서표현의 기본요소로 선정하고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반복하여 음악작품을 창작하였다.

그 실례를 1963년에 창작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 《가락》의 첫 부분을 놓고 보기로 한다.

 

악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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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첫 부분에서 길게 강조되여 울리는것이 《주요음》들이다.

보는바와 같이 《주요음》은 길게 강조되는 순간에는 물론 짧게 강조될 때에도 다양한 력도적명암과 악상기호에 의하여 굴곡있는 음향효과를 나타내고있다.

이것이 바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기의 생명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굴곡있게 흘러가는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음의 흐름을 다양한 연주기호와 악상기호로 표현한 《주요음》인것이다.

또한 윤이상은 곡에서 개별적인 《주요음》을 무의미하게 추상적으로 라렬한것이 아니라 음형화한 《주요음향》선으로 목적의식성있게 형상하였다.

곡의 첫 《주요음향》선은 10번째 소절까지이다.

여기에서 《c》, 《e》, 《d》, 《eimage》, 《g》음들은 모두 《주요음》들로서 곡선적인 선적흐름을 이루고있다.

윤이상은 곡의 첫 부분에서 이 《주요음향》선을 다양한 형태로 두번에 걸쳐 반복시키였다.

첫 반복은 11번째 소절부터 시작하여 옥타브차이를 주어 진행방향을 변형시킴으로써 이루어지고있다.

다음 반복은 곡의 17번째 소절부터인데 이 부분에서 《주요음향》선의 첫 두 음을 5도 낮추어 색채적으로 반복하고 19번째 소절에서부터는 첫 《주요음향》선의 음들을 옥타브차이를 주어 거의나 그대로 반복시켰다.

윤이상은 이러한 《주요음향》선의 반복을 통하여 음악적정서의 흐름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보장하여 당시 유럽《현대음악》계의 작곡가들이 걷고있던 극단한 추상성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이것은 윤이상이 초기음악창작의 두번째 단계에서 벌써 자기 식의 독자적인 작곡방식대로 음악작품을 창작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즉 《주요음향》기법이 이 단계에서 완성되여 음악작품창작에 적용되였던것이다.

이와 같이 윤이상은 초기음악창작의 두번째 단계에서 자기 식의 독자적인 작곡방식을 완성하여 유럽《현대음악》계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자기의 음악양식을 확립하였다.

다음으로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의 세번째 단계는 대관현악곡 《례악》이 창작된 1966년을 전후로 하고있다.

이 단계에 들어와 윤이상은 이전의 성과들과 경험들을 다시 검증하고 확정적으로 음악작품창작에 적용하였으며 그것을 보다 큰 규모로 확대발전시킴으로써 자신의 독자적인 작곡방식의 면모를 더욱 뚜렷이 나타내였다.

우선 이 시기에 음악작품을 창작함에 있어서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생활에 기초한 주제나 내용의 폭을 이전 단계에서와는 달리 보다 확대시켜나갔다.

실례로 초기음악창작의 두번째 단계에서 음악작품들의 주제와 내용은 《바라》, 《가락》, 《가사》 등의 표제에서 보는바와 같이 개별적이면서도 규모가 작은것이였다면 세번째 단계에서는 《영상》》, 《례악》, 《남무》 등의 표제에서 알수 있는바와 같이 다면적이면서도 규모가 큰것들로 선택되였다.

여기에서 《영상》이나 《례악》, 《남무》 등의 주제나 내용이 다면적이라는것은 립체화된 하나의 음악적화폭이라는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실례는 많은 곡들에서 찾아볼수 있으나 특히 플류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곡 《영상》이 그 대표적인 음악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이 곡은 윤이상이 강서고분벽화에 그려진 네마리의 짐승을 보고 거기에서 령감을 얻어 창작한 곡으로서 작품에서는 네마리의 짐승이 하나로 얽히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면서 부단히 움직이는것을 립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주제와 내용에서의 확대는 바로 그가 이미 확립한 독자적이고도 개성적인 작곡방식에 의하여 성립될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여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의 두번째 단계에서 그 표현력과 의미성이 뚜렷해진 《주요음》들과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색갈을 살려내는 독특한 연주방식이 있었기에 이러한 창작적성과가 이루어졌던것이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윤이상은 초기음악창작에서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표현방식에 기초한 자기 식의 독자적이고도 개성적인 작곡방식을 전면적으로 확립하였으며 이 과정에 이룩된 성과들과 경험들은 첼로협주곡을 비롯한 협주곡작품들에 《인간성에로 돌아가자》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한 중기나 교향곡과 같은 큰 규모의 음악작품들에 반전, 반핵, 평등의 평화애호적인 의지를 보다 통속적인 음악형식에 담아 표현하려 하였던 후기음악창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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