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탕인가, 셈탕인가
최기정
우리 나라의 다종다양한 민요가운데는 《탕세기》라는 노래가 있다.
민요 《탕세기》는 지난날 우리 인민들이 온탕이나 한증을 할 때 셈세기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온정가》 또는 《관암세기》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는 온천이 많은 나라이다. 평안남북도, 황해남도, 강원도, 함경북도지방들에 비교적 많이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광천들가운데서 온천은 150여개이다. 유명한 온천으로는 경성온천, 송흥온천, 세천온천, 종달온천, 신천온천, 배천온천, 은천온천, 석탕온천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온천들의 온도는 대부분 35∼100℃이다.
이러한 조건은 일찌기 우리 인민들속에서 온천탕을 리용하여 여러가지 병치료를 하면서 그와 관련된 민요를 창조하여 부르게 하였다.
민요 《탕세기》는 바로 우리 인민들의 이러한 민속생활속에서 창조되여 불리워진 노래이다.
《탕세기》가 온탕을 셈탕으로 헛갈리게 한 민요라는것은 온천의 뜨거운 물속에서 오래 견디기 위하여 서로 승벽내기로 셈세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다나니 온탕이 《탕세기》노래로 차있어 마치도 셈탕이 된듯 함을 표현하였기때문이다.
당시 이러한 온탕을 목격한 어느 한 사람은 《탕세기》노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온탕이나 한증탕에서 부르던 노래를 〈탕세기〉라고 하지만 다르게는 〈관암세기〉라고도 하였다.
수자를 세여나가다가 마감에 〈관암〉하고 끊어주군 하였는데 그래서 〈관암세기〉라고도 부른것 같다.
사람들이 온탕이나 한증탕에 들어가 땀을 많이 내야 자기의 병을 고칠수 있다고 생각한데로부터 뜨거운 물속에서 오래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이 〈탕세기〉이다.
〈탕세기〉는 혼자서 부른것이 아니라 한사람이 열까지 세면서 부르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 스물까지 부르는 식으로 서로 주고받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냥 하나, 둘 하고 세여나간것이 아니라 곡조를 붙여 멋이 나게 불렀는데 이 과정에 민요화되였다.
말이 난 김에 오늘 〈탕세기〉와 관련하여 내가 어렸을 때 적접 목격한 사실을 하나 이야기하겠다. 황해남도 배천지방의 온탕에서 있은 일이다.
황해도지방에는 배천, 연산, 송화, 신천, 삼천, 달천, 종달 등 온천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유명한것이 배천온천이였다. 이 온천은 500여년전부터 알려져있는것으로서 이곳에만도 온천이 솟아나는 곳은 25개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여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날이 없었다. 해주, 평양, 신의주를 비롯한 북쪽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남쪽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불렀기때문에 여러 곳에 불려다니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배천지방의 온탕에도 여러차례 다녀오면서 사람들이 〈탕세기〉를 부르면서 온천욕을 하던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당시 배천에는 온천을 리용하기 위하여 모여드는 사람들을 위한 려관이 따로 있었다. 거기에는 시설이 잘 갖추어진 온탕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려관이 아니라 〈탕세기〉를 듣기 위해서인지 일반공동탕에 모여들었다. 공동탕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공동탕은 남탕, 녀탕으로 되여있었는데 지금처럼 콩크리트담벽으로 막은것이 아니라 널판자로 막았다. 때문에 온탕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도 남탕과 녀탕이 밀페된 상태에서 따로 부른것이 아니라 널판자벽을 사이두고 남녀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흥을 돋구었다. 이렇게 되여 온탕은 그야말로 온탕인지 셈탕인지 모를 정도로 고조를 이루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것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노래가 성하기 마련인것이다. 황해도의 특징적인 노래의 하나로 되고있는 〈탕세기〉가 온탕을 셈탕으로 헛갈리게 한 민요로 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상의 자료를 통하여 우리는 온탕이나 한증을 하면서도 노래를 지어 부른 우리 인민들의 뛰여난 음악적재능의 일단을 잘 엿볼수 있다.
《탕세기》는 한증탕에서도 널리 불리웠다.
우리 나라에서 한증은 오랜 옛날부터 민간에서 병치료방법의 하나로 널리 리용되여왔다. 옛날에는 한증탕안에 나무로 불을 지펴 열을 가한 다음에 그 안에 주로 솔잎이나 잣솔잎 또는 참쑥 같은것을 깔고 한증을 하였다. 온도는 보통 80∼90℃였다.
한증도 역시 뜨거운 열속에서 오래 견디면서 땀을 많이 내는것이 기본료법이였던것만큼 이때에도 《탕세기》를 불렀다. 한증탕에서 부른 《탕세기》는 그 곡조와 부르는 방법이 온탕에서 부른 《탕세기》와 기본적으로 같다.
지금까지 발굴수집된 민요 《탕세기》는 그리 많지 못하지만 대표적인것을 보면 황해남도 배천지방의 《온정가》를 들수 있다.
초하나 둘 서이 너이 다엿일곱여덟 아홉하니 여라문관보살
열하나 둘 서이 너이 다엿일곱여덟 아홉하니 스무나문관보살
스물스물 얽었어두 아기자기 정만 든다
스물에 하나둘 서이너이 다엿일곱여덟아홉하니 서르나문관보살
십오야 밝은 달은 운무중에 잠겼구나 …
노래는 이런 식으로 엮어나가면서 계속 부르게 되여있다.
사설조로 되여있는 노래는 서도지방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있는 《쏠평조》로 되여있으며 선률은 서도지방의 특징적인 음조인 주음과 련결된 2도우의 4도조약 진행음조(《쏠-라-레》)를 중심으로 여러 음조들과의 유기적인 결합속에서 셈세기로 표현되는 선률적특성을 개성적으로 보이고있다.
노래는 창법에서도 4도 조약된 《레》음에서 깊은 롱성이 적용되는것과 같은 서도지방의 특징적인 창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
노래는 처음에 시작된 속도에 비하여 마지막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특성을 가진다. 그것은 사람들이 온탕이나 한증탕의 열속에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급해지면 노래도 자연히 빨리 불렀기때문이다.
이와 같이 민요 《탕세기》는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민요유산의 하나로 우리 인민들속에 알려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