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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서정가요 《공후인》

 

 

중국연변대학 예술학원 교수 김성준

 

고조선의 서정가요 《공후인》은 고대조선의 대표적인 민속가요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대로부터 음악과 무용이 발전하였습니다.》

《공후인》은 B.C. 5∼B.C. 4세기 고조선의 배사공 곽리자고의 안해인 민간음악가 려옥이 고조선사람들속에서 불리워지던 《공무도하가》에 기초(재현)하여 창작한 노래이다.

작품은 조선 고대민속음악예술의 높은 발전수준을 보여주는 서정가요의 하나로서 당시 고조선에서는 물론 이웃나라들에도 널리 보급되였다.

서정가요 《공후인》의 창작경위에 대해서는 진나라 최표의 《고금주》를 비롯하여 송나라 진양의 《악서》 그리고 한치윤의 《해동역사》, 차천로의 《오산설림》,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국내외의 적지 않은 옛 문헌들에 자세히 기록되여 전해지고있다.

그중 진나라 최표의 《고금주》에는 《공후인》의 창작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씌여져있다.

《〈공후인〉은 조선진졸(고조선의 배사공) 곽리자고의 안해 려옥이 지은것이다.

곽리자고가 어느 날 새벽 배를 저어 나루를 건느고있을 때 백수광부(머리 흰 사람)가 미친듯이 병을 들고 사품치는 강물에 뛰여들어 건느기 시작하였다. 그의 안해가 남편의 뒤를 쫓아와 부르면서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고 마침내 물에 빠져죽었다.

이에 백수광부의 안해는 공후를 부둥켜안고 타면서 〈공무도하가〉를 지어 불렀는데 그 소리가 심히 슬프고 애처로왔다. 노래를 마치자 그는 자기도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말았다.

이 광경을 본 곽리자고가 집으로 돌아와 그가 부르던 노래소리를 안해 려옥에게 말하였더니 려옥 역시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곧 공후를 당겨놓고 그 노래소리를 재현하였다. 듣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려옥은 그 노래와 곡조를 이웃에 사는 려용에게 전하였는데 이름을 〈공후인〉이라고 하였다.》(《해동역사》 권22 악지 악가, 악무)

《공후인》의 가사는 4구체의 한시로 되여있으며 그것을 번역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강 건느지 말랬는데

왜 굳이 건느셨소

물에 빠져 죽었으니

님아 이 일 어이하오 [《가요집》1 . (문예출판사. 1983년판, 31페지]

 

이 작품의 창작경위와 보급과정을 밝힌 우의 자료와 기록내용을 통하여 알수 있는것은 첫째로 《공후인》은 배사공 곽리자고의 안해 려옥이 물에 빠져죽은 녀인이 지어 부른 《공무도하가》에 기초(재현)하여 지은 노래라는것, 둘째로 《공후인》의 곡조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게 할 만큼 슬프고도 애절한 선률로 일관되여있다는것, 셋째로 《공후인》은 려옥에 의하여 창작된 이후 이웃에 사는 려용에게 전수되고 그것이 널리 퍼지게 되였다는것, 넷째로 《공후인》의 가사는 물에 빠져죽은 녀인이 부른것으로서 《공무도하가》의 가사라는것, 다섯째로 《공후인》, 《공무도하가》와 같은 서정가요들은 려옥, 려용과 같은 고조선의 우수한 민간음악가들에 의해서 훌륭히 창작되고 전수될수 있었다는것 등이다.

이와 같이 서정가요 《공후인》은 노예소유자사회에서 억압받고 천대받던 사람들의 내면세계와 체험을 강렬한 정서로 표현한 노래이다.

이 노래는 민간의 평범한 녀성음악가 려옥이 《공무도하가》를 재현시켜 창작한 우수한 서정가요로서 그의 비상한 음악적재능에 대하여 잘 알수 있게 한다.

려옥은 고조선사회에서 가난하고 무권리한 진졸(배사공)의 안해였으며 그가 동정을 표시한 물에 빠져 죽은 부부 역시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였다.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참상과 죽은 녀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는 려옥에게 있어서 커다란 충격으로 되였으며 그것은 마침내 《공후인》과 같은 슬프고 애절한 서정가요로 창작되여 울려나왔다.

이러한 사실은 서정가요 《공후인》이 고조선사회에서 압박받고 천대받던 사람들의 불행한 처지와 비극적운명을 그대로 반영한 노래일뿐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행과 슬픔을 자신의 불행과 슬픔으로 여기면서 아름다운 미풍량속을 꽃피워온 고조선인민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진실하게 반영하고있는 노래라는것을 말하여준다.

《공후인》은 당시 고조선은 물론 이웃나라들에도 널리 전파되 [《공후인》은 고대 중국에서 진나라시기에 앞서 삼국의 위, 오, 촉시기에 《공무도하가》로 전해지고있었다.(《통전》권 145 음악잡무곡) ]였을뿐 아니라 후세사람들속에서도 사랑을 받으며 불리워진 세태민요로서 고대 조선의 민속가요유산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고대시기에 벌써 민간의 개별적인 음악가들에 의하여 《공무도하가》, 《공후인》과 같은 서정가요들이 창작보급되고 그것이 《공후》라는 다현악기로 연주되였다는 사실은 고대 조선인민들의 높은 예술적재능과 함께 조선민속음악이 고대로부터 높은 수준에서 발전하여왔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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