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고전적명작 《진달래》

 

 

불후의 고전적명작 《진달래》는 깊은 사색과 하많은 사연을 담고있는 명곡이다.

주체51(1962)년 9월 14일은 추석날이였다.

어은동군사야영지에서 강철의 령장의 기질과 담력을 굳히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대야같은 둥근달이 밝은 빛을 뿌리는 이날 밤 군사야영생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였다.

우리 나라의 민속명절인 추석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군사야영생들은 이날 그이께서 김정숙어머님의 산소에 찾아가지 못하신데 대하여 더없이 서운한 마음을 터놓았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장군님께서는 내가 오늘 어머님의 산소에 가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오늘은 동무들과 함께 이날을 보내고 군사야영이 끝난 다음에 가보겠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이렇게 동무들과 같이 모여앉아 유난히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추석이야기를 하게 되니 지난날의 잊지 못할 일이 떠오른다고 하시며 《어느 해인가 나는 산소에 가서 어머님분묘앞에 진달래를 심어놓은적이 있었습니다. 진달래는 우리 어머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던 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사연깊은 진달래에 대하여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준엄한 항일의 그날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신 어머님께서 5호물동을 건너 조국땅에 첫 자욱을 찍으셨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며 제일 먼저 품에 안으신 꽃, 조국의 진달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머님께서 꺾어드리시는 진달래꽃을 받아드시고 조국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얼마나 기뻐하시였던가!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시면서 정원에 늘 진달래를 피우시며 지난날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던 김정숙어머님이시였다.…

잠시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는 어머님께서 생전에 그처럼 사랑하시던 꽃을 생각하면서 어머님의 분묘앞에 진달래를 옮겨심었댔는데 다음해에 가보니 꽃이 아주 곱게 피였습니다, 나는 그때에 본 진달래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날부터 나의 가슴속에는 그리운 어머님의 모습과 함께 소박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진달래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소중히 간직되게 되였으며 그것은 언제나 마음속에 따뜻한 정과 그윽한 향취를 안겨주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늘 가슴깊이 간직하고있던 진달래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노래에 담아보겠다고 하시며 조용히 《진달래》를 부르시였다.

 

해빛이 따스해 그리도 곱나

봄소식을 전하며 피는 진달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꽃송이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오가는 비바람 다 맞으며

산허리에 피여난 붉은 진달래

긴긴밤 찬 서리에 피고 또 피여서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때늦은 봄에도 사연을 담아

해빛밝은 강산에 피는 진달래

못 잊을 어머님의 그 모습이런가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고느적한 추석날 밤 야영지에 은은히 울려퍼지는 노래소리는 야영생들을 무한한 사색의 세계에로 이끌어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야영생들의 상기된 얼굴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늘과 같은 명절이나 의의깊은 날에는 지난 시기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고귀한 청춘을 바친 혁명선렬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빛나는 업적과 숭고한 념원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행복이 크면 클수록 이날을 위해 피흘리며 싸우다 쓰러진 선렬들을 잊어서는 안되며 그들처럼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야영생들은 마음속깊이 충성의 맹세를 다지며 경애하는 장군님을 오래도록 우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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