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좌
조선음악사개관
1. 원시, 고대시기의 조선민족음악
박사, 부교수 남상민
1)원시시기에 이루어진 조선민족음악의 시원(백만년이전∼B.C. 3천년전)
지금으로부터 반만년전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에서는 인류문명의 하나인 대동강문화가 발생하였다. 이 대동강문화를 창조한 사람들은 조선민족이였다
조선민족은 당시 유리한 자연지리적환경속에서 조선반도일대에 살고있던 원시인들로부터 발전한 민족이다.
조선민족의 조상들은 백만년전부터 이 땅에서 자기의 창조적로동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며 자기의 문화를 만들어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본래 음악은 자연을 변혁하고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사람들의 로동과정에서 나와 생활속에서 발전하여온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예술이다. 모든 예술이 다 생활속에서 나왔지만 특히 음악은 무용과 함께 직접 로동속에서 나오고 또 로동과정에서 불리워온것으로 하여 그 어느 예술보다도 생활과의 련계가 깊다.》
조선민족음악은 원시시기에 뿌리를 둔것으로서 그 연원이 매우 유구하고 자기 발전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온 음악이다
원시시기에 음악이 발생하게 된것은 인간의 창조적로동이 있었기때문이다
원시시기 우리 조상들은 집단적인 로동과정에 음악의 기본소재로서의 음과 리듬을 체득하게 되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생산활동에서의 성과와 삶의 안녕, 자연을 정복하려는 지향과 념원을 담아 노래를 부르고 악기도 만들어 음악예술의 시원을 열어놓았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원시시기 음악발생의 시점은 구석기시대(5만∼1만 5천년전)로 추정된다
발굴된 당시의 조각품과 같은 유물들에는 사람과 짐승 등의 형상과 자연묘사무늬가 나타나있다.
이것은 원시시기 사람들이 예술적묘사능력을 가지고있었을뿐 아니라 예술적형상을 창조하였다는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음악적형상능력도 가지고 있었다는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된다
원시시기의 음악은 이 시기가 무계급적인 사회였던것만큼 계급성이 없는 음악이였고 집단적가무와 같은 혼합예술형태가 위주로 되여있었으며 그 형식들이 단조롭고 단순한것과 웨침소리에 가까운 말어조의 선률음조, 로동생활과 제천행사(祭天行事)와 관련된 내용이 위주로 되여있은것이 특징이라고 할수 있다
당시의 악기로서는 짐승의 뿔이나 뼈 그리고 나무껍질같은 재료로 만든 관악기들과 북종류의 타악기, 활에서 기원된 공후류의 현악기가 있었을것이라고 보아진다
원시시기의 음악은 비록 소박한것이지만 이 시기에 형성된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향유하여온 자기 식의 고유한것으로서 그것은 우리 민족이 자기의 민족음악예술을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한 귀중한 밑거름이였다고 자부할수 있다.
2) 고대시기의 첫 민족음악유산(B.C. 30세기경∼B.C. 108년까지)
고대시기의 국가로서는 고조선(B.C. 15세기 중엽∼B.C. 219년), 구려(B.C. 15세기 중엽∼B.C. 227년), 진국(B.C. 12 세기경∼A.D. 1세기초엽)이 있었다
고대시기의 음악발전은 조선민족음악의 첫 모체를 마련하고 음악종류의 분화가 시작되면서 음악형상력이 보다 높은것으로 특징지을수 있다
고대시기는 첫 계급사회(노예소유자사회)의 시기로서 이 시기부터 음악은 인민음악과 지배계급의 음악으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인민음악은 광범한 인민대중이 창조하고 향유한것으로서 민족음악발전에서 주도적역할을 하였다. 인민음악에 의하여 집단적가무예술형태로 존재하던 음악은 그 범위가 개인정서생활분야에로 확대되면서 로동가요, 개인서정가요 등의 음악종류와 병창과 같은 연주형식의 분화를 낳았으며 직관적인것이라고 할수 있지만 서정적인 묘사방식으로 형상이 발전하게 되였다
우리 나라의 《열하일기》, 《지봉류설》과 중국의 《고금주》같은 옛 문헌들을 통하여 전해진 고조선의 가요 《공후인》은 고대시기에 발생한 서정가요종류의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다
어느 한 부부가 스스로 강물에 빠져죽던 이야기를 배사공인 남편으로부터 전해들은 려옥(민간의 평범한 음악애호가)이라는 녀인이 공후를 타면서 불렀다고 하는 이 노래는 당대의 불합리한 사회관계와 인정세태생활, 문학 및 음악에서의 서정적묘사형상능력을 가늠해볼수 있게 하여준다
공후(우리 민족의 첫 다현지탄악기)라는 악기를 타면서 불렀다고 하여 《공후인》이라고 하는 이 노래의 유래를 통하여 당시 음악분야에서 조식, 박자와 같은 음악의 기초적요소가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음악생활에 유률악기들이 리용되였으며 음악애호가들이 공인되여있었다는것이 증명된다. 현실적으로 조선의 북부 라선시(당시 선봉군) 서포항 고대유적에서는 새의 다리뼈로 만든 뼈피리가 발굴되였고 고조선에서 복숭아나무껍질을 말아 만든 도피피리가 있었다는 력사자료(《악학궤범》 1493년)도 전해지고있다
한편 원시시기의 집단적가무예술은 고대시기에 와서 국가적성격의 제천행사와 결부되여 년례적으로 진행되면서 농악의 시원을 이루었다.
당시 고대국가들에서는 한해농사의 시작과 마감계절인 봄과 가을에 국가적명절로 하늘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천행사를 벌리고 여러날동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남녀로소 모든 사람들이 즐기였으니 지금의 농악도 여기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것이다
원시시기를 거쳐 이루어진 고대시기 음악발전의 성과들은 중세시기 민족음악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튼튼한 토대로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