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일화
《력사적인 통일음악축전》
주체79(1990)년 10월 14일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분렬의 력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열리게 되는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 분렬의 장벽을 넘어오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성원들을 뜨겁게 맞이하도록 판문점에 환영의 꽃바다를 펼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음악가들을 환영하는 사업을 통일분위기가 나게 특색있게 조직하도록 가르쳐주시면서 500여명의 시민들과 예술인들, 취주악단으로 환영군중을 조직하여 판문점에 나가서 열광적으로 환영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남조선음악가들이 분계선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동포애의 정을 느낄수 있도록 남녘에 고향을 둔 이름있는 예술인들을 판문점에 내보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배려에 의하여 판문점과 개성시내, 개성역은 온 겨레의 세기적숙원인 조국통일을 소리높이 구가하려는 일념을 안고 달려온 근로자들과 예술인들, 청년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전 11시 리화녀자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를 대표로 하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 17명이 판문점경계선을 넘어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들어서자 군중들은 취주악단의 환영곡에 맞추어 꽃다발을 흔들고 《환영, 환영》, 《조국통일》의 구호를 소리높이 웨치면서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우리 일군들이 남조선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다음 남녘에 고향을 둔 이름있는 예술인들이 그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뜨겁게 포옹하였다.
동포애의 정이 뜨겁게 넘쳐흐르는 가운데 북측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먼저 환영인사말을 하였다.
감격이 크면 말이 적은 법이다.
조국이 분렬되여 45년만에 처음으로 얼싸안은 이 뜻깊은 자리에서 서로가 나눈 인사말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길지 않은 그 말속에서 예로부터 한 나라, 한 강토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우며 화목하게 살아온 민족의 뜨거운 향취를 느꼈으며 북남의 음악인들이 지혜와 열정을 합쳐 음악으로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려는 한결같은 열의를 절감하였다.
이윽하여 북과 남의 예술인들이 서로 팔을 끼고 통일각으로 향하자 군중들은 또다시 취주악단의 환영곡에 맞추어 환호를 올리고 《조국통일》의 구호를 부르면서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가르치심대로 행로를 정한 일군들은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이 개성시내를 거쳐 지나가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의 동포애에 넘치는 뜨거운 환영을 받도록 하였다.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에 대한 환영은 개성역에 들어서면서 더욱 고조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서 나서는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입니다.》
다른 모든 부문이 그러하듯이 조선의 민족음악도 민족의 분렬과 함께 북과 남이 서로 상반되는 길을 걸어왔다.
공화국북반부에서는 조상전례의 유구한 민족문화유산을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과 현대적미감에 맞게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켜 우리 식의 민족음악예술을 찬란히 꽃피워왔다면 남조선에서는 이른바 《전통음악》을 고수한다는 미명하에 과거의것을 덮어놓고 찬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예술형식을 답습하면서 복고주의길로 나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고유한 민족문화예술을 양풍화하면서 모조리 파괴하는 길로 나갔다.
더우기 남조선당국자들은 오래전부터 북에서는 민족적인것을 다 집어던졌다고 허위선전을 하였으며 우리 음악이 《이질화》되였다고 악선전을 하였다.
이러한 인식상착오는 개성을 떠나 평양으로 향한 렬차안에서 있은 점심식사때에 뚜렷이 나타났다.
한자리에 마주앉아 식사를 나누면서도 서로 좀처럼 풀리지 않는것이 남측음악가들의 어성버성한 립장과 자세였다.
동행한 우리 일군들과 예술인들은 서운한 감을 금치 못하며 식사를 끝내였다.
잠시후 렬차안에서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을 위하여 준비한 우리 유치원어린이들의 소품공연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범민족통일음악회 행사일정을 보아주시면서 서울에서 들어오는 남조선음악가일행이 평양으로 오는동안 갑갑하고 따분해하지 않도록 렬차안에서 소품공연을 조직하되 유치원어린이들의 공연을 보여주도록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유치원어린이들의 공연을 조선민족음악의 고유한 형식인 민요를 기본으로 하여 진행하도록 가르쳐주시였으며 어린이들이 공연을 짧은 시일안에 준비해야 하는 실정을 헤아리시여 이름있는 연출가도 보내주시고 연습장소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핌속에서 유치원어린이들의 공연은 매우 짧은 시일안에 준비될수 있었다.
이윽고 민족옷차림을 한 귀여운 어린이가 나와서 먼저 인사말을 하였다.
《언제면 오시려나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통일음악회에 오시는 남녘의 음악가 할아버지, 할머니, 꿈에도 보고싶고 만나고싶었던 우리 꽃봉오리들, 꿈아닌 오늘 이렇게 만나고보니 친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난것처럼 반가운데 웬일인지 눈물이 자꾸자꾸 나옵니다.》
어린이의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 박수소리를 타고 민족기악중주 《양산도》로부터 공연이 시작되였다.
순간 렬차안은 놀라움과 경탄으로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북에서는 민족적인것은 다 집어던졌다고 하였는데 전문예술인도 아닌 어린이들, 유치원꼬마들이 조선의 민요들을 높은 수준에서 형상하고있으니 그 순간 남측음악가들의 심정을 더 말해 무엇하랴.
이어 어린 소녀가 나와 해방전에 창작된 가요 《그리운 강남》을 부르자 놀라움과 경탄은 어느덧 감동의 눈물로 변하였다.
남측 음악인들모두가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따라부르기 시작하였다.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 땅에도 봄이 오는데 우리 민족은 어이하여 하나의 강토에서 근 반세기가 되도록 헤여져 살아야 한단말인가.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노래는 끝났으나 남조선음악가들모두가 마음속에 넘쳐나는 그 심정을 다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재청을 요구하였다.
이렇듯 끝없이 고조되는 격정속에 남중창 《조선의 자랑》, 《어린 동무 노래부르자》, 가야금독주 《도라지》가 련이어 연주되자 북과 남의 예술인들은 모두다 한데 어울려 장단을 쳐가며 울고웃으니 그야말로 잔치집을 방불케 하였다.
더우기 녀중창 《반달》, 《똥그랑 뗑》, 민요제창 《가을하는 제비야》, 《조선의 꽃》을 부를 때에는 장고에 맞추어 모두가 장단을 치며 열정을 다하여 노래를 부르니 중창이 합창으로 변하여 렬차안을 뒤흔들어놓았다.
민요뿐이 아니였다.
손풍금독주 《통일렬차 달린다》를 연주할 때에는 박수를 치며 더욱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이어 녀중창 《고향의 봄》이 끝나자 소개를 맡은 어린이가 나왔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오늘의 이 기쁨을 안고 하루빨리 통일된 조국에서 함께 살자고 말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선창하자 합창을 하는 우리 어린이들은 물론 북남음악가들모두가 소리내여 흐느껴 울었다.
40분간 예견하였다가 1시간나마 진행된 유치원어린이들의 소품공연은 결국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난 공연이였다.
유치원어린이들의 소품공연이 끝나자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단장은 무대로 나와 어린이들의 공연성과를 축하하여 기념사진을 찍으며 격동된 심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러자 남측 음악가들과 기자들모두가 떨쳐일어나 어린이들을 품에 안고 볼을 비비며 유치원교양원들과 우리 일군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울수 있었는가, 이 어린이들을 특별히 따로 키우는가고 연방 물어보았다.
교양원들이 우리의 어린이보육교양제도에 대하여 해설해주면서 전국의 모든 유치원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정서적으로 자라나도록 나라에서 교육교양체계를 세워주었다는것과 이 어린이들은 선생님들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동안 준비하였을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남조선음악가들과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남조선 《중앙일보》사 기자는 《이북의 어린이들이 정말 노래를 잘합니다.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할 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야!〉하는 소리밖에 나오는것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을 남쪽에 데리고 가서 공연시키면 이남에서 이북의 참교육에 대하여 잘 알게 될것입니다.》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의 한 연주가는 《이북에서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얼마나 훌륭히 하고있는가를 저 어린이들의 노래를 듣고도 잘 알수 있습니다.》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일군들과 예술인들은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번에 평양으로 오는 렬차에서 유치원어린이들의 공연을 진행하도록 하신것이 얼마나 현명한 가르치심이였는가 하는것을 온몸으로 뜨겁게 느끼였다.
참으로 이날 렬차안에서 진행된 유치원어린이들의 공연은 남조선음악가들의 오해를 가시고 우리 공화국의 주체적음악예술발전방침의 정당성을 뚜렷이 실증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