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일화
관현악《그네뛰는 처녀》가 우리 식의
관현악으로 완성되기까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편곡은 우리 식으로 하여야 한다.
편곡을 우리 식으로 한다는것은 리듬본위가 아니라 선률본위로 한다는것을 말한다. 명곡에 기초하여 여러가지 기악작품을 편곡할 때 주제선률을 살려나가는것은 우리 식 편곡에서 지켜야 할 일관한 원칙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아름답고 고상한 감정이 정서깊게 울려나오며 힘과 용기가 솟구치게 하는 우리 식 기악음악의 눈부신 발전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이고도 세심한 지도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일찌기 우리 식 기악음악창조의 구상을 무르익혀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요 《그네뛰는 처녀》를 주제로 우리 식 관현악을 창조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주체59(1970)년 1월 20일 그토록 바쁘신속에서도 몸소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관현악련습장에 나오시여 관현악을 들어주시였다. 연주가 끝났으나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가 서양식으로 되였다고, 중간부도 재미없고 종결부도 잘되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관현악을 조용히 끝내지 말고 흥겹고 약동적으로 끝맺도록 고쳐서 내놓을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가 서양식으로 되였다고 하신데는 선률의 각을 떠서 본래선률의 모습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변형시킨데 있었다. 결국 노래의 선률이 자기 모습대로 들려오지 않고 동강나 감정의 일관성을 줄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 우리의 예술은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예술이므로 인민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고 리해할수 있게 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후 1월 25일과 26일 두차례에 걸쳐 전화로 창조정형을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6일 오후에 또다시 촬영소에 나오시여 관현악을 다시 들어주시고 편곡에서 걸리고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약동적이지 못하고 흥취가 나지 않는 문제, 조선장단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문제, 음색이 통일되지 않는 문제, 조선음악의 색갈이 살아나지 못하는 문제와 참고해야 할 작품까지 가르쳐주시였다.
1월 28일 또다시 관현악단을 찾으시여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를 다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직 장단을 잘 살리지 못했다, 장단을 살리려면 관현악곡을 우리 식으로 독특하게 만들어야 하며 민요의 특성을 잘 살려야 한다, 그런 방향에서 편곡을 좀더 고치고 형상을 무르익히며 마지막부분이 아직도 처지는데 더 흥취가 나게 약동적으로 끝내도록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창조집단은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창작전투를 벌려 끝내 민족적정서와 흥취가 나는 관현악을 만들어내게 되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이고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는 우리 식의 관현악으로 완성될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