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의 산》의 유래
우리 선조들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백두산을 《조종의 산》이라 부르며 숭상하였다.
《조종의 산》이라는 말에서 《조종》을 한자로 표기하면 《할아버지 조》, 《마루 종》이며 따라서 뜻으로 해석하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산》으로 된다.
선조들이 백두산을 《조종의 산》으로 불러온 유래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 유래에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져있기때문이다.
옛 기록으로 본 《조종의 산》에 대한 의미는 크게 세가지로 갈라볼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백두산을 《조종의 산》이라고 부르며 숭상하여온것은 백두산을 우리 나라 모든 산의 조상이라고 여긴데서 유래된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옛 문헌들에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있다.
《아방강역고》에서는 《백두산은 동북의 모든 산의 조상이다.》라고 하였으며 《동국지리지》에서는 《금강산은… 백두산의 남쪽가지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약파만록》에서는 《묘향산은… 백두산의 한 지맥이다.》라고 하였고 《지리산은… 백두산지맥이 흘러내려 이루어진 산으로서 그 이름도 일명 〈두류산〉이라고 하였는데 그 지맥이 바다에까지 뻗어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료를 통하여 조상들이 우리 강토가 하나의 백두산줄기로 이루어져있다는 긍지를 담아 백두산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산》이라는 뜻에서 《조종의 산》이라 숭상하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선조들이 백두산을 《조종의 산》이라고 부르며 숭상하여온것은 다음으로 백두산을 우리 나라 모든 산천정기의 발원지라고 여긴데서 유래된것이다.
선조들은 예로부터 명당자리를 잡는데서 산을 주산, 종산, 조산으로 갈라보았다.
주산은 명당자리뒤에 있는 산이고 종산은 주산이 있는 산줄기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높은 산이며 조산은 주산이 있는 산줄기에서 가장 먼곳에 있는 높은 산이다.
종산은 일명 주산의 작은 조산이라는 뜻에서 《소조산》이라고도 하며 조산은 주산의 큰 조상이라는 뜻에서 《태조산》이라고도 한다.
지난날 풍수쟁이들은 우리 나라에서 좋은 명당자리들을 찾기 위하여 백두산에 올라가서 백두산의 정기가 흘러내리는 지맥을 따라 살피군 하였다고 한다.
선조들이 백두산을 《조종의 산》이라고 부르며 숭상하여온것은 또한 백두산을 우리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진산중의 진산이라고 여긴데서 유래된것이다.
진산이란 지난날 선조들이 마을이나 고을, 도읍지나 나라 등의 북쪽에 위치하고있는 큰 산을 숭상의 대상으로 정해놓고 불러온 산을 말한다. 선조들은 이러한 산들이 마을과 고을, 도읍지를 돌봐주고 나라에서 일어나는 란리나 액을 눌러버리고 안녕을 지켜준다고 믿고 숭상하면서 제사를 지내여왔다.
대대로 조상들은 우리 나라를 지켜주는 나라의 진산은 백두산이라고 숭상하면서 제사를 지내왔다. 이에 대하여 《태백일사》에는 《대체로 백두산은 아득한 황막속에 벋치고 앉아있어 가로는 천리에 뻗쳐있고 높이는 200리로 솟아있다. 그 위용이 웅장하고 험하며 꿈틀거리는듯 하여 배달천국의 진산이 되였다.》라고 쓰고있다.
《국조보감》에서는 리조 21대왕인 영조43(1767)년에 백두산을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는 진산이라고 숭상하면서 다시 제사를 년례로 지냈다는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여있다.
지난날 선조들이 백두산을 진산으로 숭상하면서 제사를 지내왔다는것은 운흥군의 운흥사당과 대홍단군의 천왕당, 삼지연군의 허항령국사당 등의 터를 통하여서도 잘 알수 있다.
이밖에 백두산을 《조종의 산》이라 일러오며 숭상한것은 민족의 원시조가 태여난 민족의 발상지로 숭상하여온데서도 유래되였다고 한다.
《조종의 산》 백두산은 오늘 백두산3대장군의 불멸의 혁명력사와 투쟁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의 성산인것으로 하여 그 이름 세계에 찬연히 빛나고있는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