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기

 

주체음악과의 만남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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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62(1973)년에 진행된 《국립평양만수대예술단》의 첫 일본방문공연!

고급학교시절(15살)에 본 이 공연이 그후 나의 인생을 결정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끓어번지게 한 만수대예술단의 공연을 보고 미래의 성악가나 무용가로 그리고 기악연주가로 나설것을 꿈꾼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가.

나는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가 펼치는 사상예술적으로 완벽하고 인생철학이 가득찬 황홀한 무대에 흥분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였고 《내 조국 한없이 좋아라》, 《번영하라 조국이여》의 선률이 귀전에서 떨어지지 않아 음악창작에로의 첫 결심을 품게 되였으며 이를 계기로 오늘까지의 나의 창작생활이 이어져왔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전문음악교육을 받지 못한 내가 오늘 주체의 해외예술의 전당인 금강산가극단에서 음악활동을 해올수 있었던것은 중학교와 고급학교, 대학시절의 여러 계기들마다에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신 고마운 스승들의 가르침과 그리고 문예동과 금강산가극단에서 활동하는 선대분들과 동료들의 따뜻한 지도가 있었기때문이다.

그가운데서도 금강산가극단에서 창작사업을 시작한 내가 해마다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면서 많은 창작가들의 지도를 수없이 받게 된 나날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물과 같은 나날이였으며 나의 창작의 나래를 펼쳐준 귀중한 순간순간들이였다.

풍파사나운 이역땅 일본에서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해외에서 주체예술의 화원을 펼쳐나가는 금강산가극단의 전도유망한 젊은 창작가가 왔다면서 친자식처럼 반가이 맞이해주고 음악창작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손잡아 이끌어준 그 고마움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뿐만아니라 작곡가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안무가, 작가, 연출가들과의 만남속에서 새겨진 그들의 창작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구체적인 형상작업에 깃든 진지한 모습은 오늘도 나의 귀중한 창작적밑천으로, 재산으로 되고있다.

오늘 재일동포사회를 둘러싼 환경은 날마다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있으며 발전하는 시대의 흐름은 그에 맞는 새로운 음악작품을 요구하고있다.

일반적으로 음악은 인간생활의 가장 친근한 예술이며 그 어느 예술형태보다도 민족성이 진하게 반영되는 예술이라고 말할수 있다.

음악이 가지는 생활력과 위력으로 하여 조국에서는 음악으로 혁명과 건설을 다그쳐나가고있으며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밑에 주체음악은 비약적발전을 이룩해가고있다.

이번 제2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에 참가하여 조국의 이름있는 예술단체인 은하수관현악단의 《태양절음악회》와 가극 《홍루몽》 그리고 국립교향악단의 연주회를 보면서 주체예술의 위대한 생활력을 다시한번 온몸으로 느끼게 되였다.

또한 강성대국의 창창한 앞날을 약속해주는 내 조국의 벅찬 현실을 목격하고 그 투쟁현장들에서 직접 공연활동을 벌리면서 나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사품쳐 흘렀다.

(우리도 오늘 시련을 헤쳐나가고있는 동포들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며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권을 확대하는데 이바지하는 음악창작과 활동을 더 왕성히 벌려 새 세기 음악운동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각계층 동포들의 다양화되는 지향과 생활감정 그리고 민족적정서에 맞는 주체적이며 민족적인 음악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결심이며 우리 문예동 음악부성원들모두의 맹세이다.

문예동 음악부는 동포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우리의 노래가 울려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가요창작에 각별한 힘을 기울임과 동시에 새 세대 젊은 음악가들을 많이 찾아내고 선대동포음악가들이 개척하고 발전시켜온 애족애국의 음악활동을 계속 크게 꽃피우기 위해 더욱 분발해나갈것이다.

 (문예동중앙 음악부장,금강산가극단 문예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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