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화
원각사가 망하라고 치성드린 이야기
《치성》이라고 하면 종교미신적관념에서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질것을 바라며 부처나 귀신에게 정성을 들여 비는것을 말한다. 옛날에 사람들은 과학적세계관을 가지지 못하다보니 자기의 희망이나 소원을 신령님에게 빌면 이루어질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믿으면서 정성들여 치성물을 마련하여 가지고 부처나 신에게 빌군 하였다.
그런데 《원각사》가 얼른 망하게 해달라고 빌다니…
듣기에도 참 엄청나게 큰 욕심이 엿보이는 소원이라 해야겠다.
때는 우리 나라에 근대문명의 물결이 일던 20세기초에 있은 일이다.
1902년 서울 서대문안에 우리 나라에서 첫 현대적극장으로 되는 《원각사》가 새로 건립되였다.
빨간 벽돌로 지은 2층건물이였는데 둥근 정면에는 유리창문들이 달려있고 입구에는 층층대가 있어 자못 호화로운감을 주는 건축물이였다. 넓은 무대에는 현대적인 극들도 상연할수 있게 돌무대(회전무대)가 설치되였으며 객석도 2천여명의 관객을 수용할수 있는 당시에는 비교적 크고 화려한 극장이였다.
이 극장무대에서 당대의 손꼽히는 명창들인 김창환, 리동백, 송만갑, 염덕준, 김창룡 등을 비롯한 배우집단(협률사)에 의하여 신문화운동의 추세에 맞게 판소리를 창극화하는 예술창조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었다. 이들은 민족고전작품들인 《춘향전》, 《흥보전》 등을 창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한편 《최병두전》을 비롯한 새로운 주제의 창극들도 만들어 상연하였다.
일은 《최병두전》을 상연하는 과정에 일어났다.
《최병두전》은 봉건관료배들의 날강도적인 악행을 폭로한 작품으로서 실재한 사실에 기초하여 창작된것이였다.
당시 강원도에 정가성을 가진 탐관오리가 감사로 새로 부임되여왔다. 아부아첨과 권모술수로 감사자리를 딴 이자는 부임되여오자마자 일확천금의 부자가 되보려고 나라의 재물을 사취하고 백성들의 피땀을 긁어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어느날 정가놈은 제 직권을 리용하여 원주고을에 사는 최병두라는 사람을 아무 리유없이 잡아다가 죄를 들씌워 매질하여 죽이고 재물을 몽땅 빼앗아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창극단에서는 부패무능한 봉건관료들의 포악성과 파렴치한 착취행위를 폭로비판할 목적에서 그것을 소재로 하여 새로운 창극을 만들어 원각사무대에 올렸다. 작품의 실재한 소재내용과 특히는 피해자인 최병두역을 맡아나선 명창 김창환의 진실한 연기형상은 관객들의 격분을 더욱 치솟게 하였다. 상연도중에도 여기저기서 《정감사놈을 때려죽이라!》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작품은 즉시에 강력한 사회적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대중의 요구에 의해 극장의 중요한 상연종목으로 되여 련일 공연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정가족속의 한놈이 서울나들이를 왔다가 소문난 원각사공연을 구경하려 극장에 나타났다. 창극을 보던 놈의 눈알이 휘딱 뒤집혔다. 극중인물의 탐관오리가 다름아닌 제 애비였던것이다.
부랴부랴 되돌아 내려가 원각사창극소식을 전하니 온 집안이 벌둥지 쑤셔놓은듯 하였다. 아무리 왕지네 회쳐먹을 비위를 가진 정가라해도 제놈의 비행이 작품으로 되여 세상에 드러나는데 발편잠이 오랴.
온 정가족속들이 들고일어나 상소요, 항의요 하고 법석대며 창극 《최병두전》의 《상연중지운동》에 나섰다.
허나 아무리 고아대고 행악질을 해봐야 흘러가는 달을 보고 멈춰서라고 짖어대는 꼴이였다. 원각사의 창극무대는 련일 성황리에 막을 올리고있었다.
안달이 난 정가놈의 다음 놀음이 참 꼴불견이였다.
놈은 남들 몰래 온 집안족속들을 몰아대며 제집 후원에 제단을 쌓게 하였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부처님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두손을 싹싹 비비며 《부처님께 비나이다. 원각사가 얼른 망하게 해주옵소서.》라고 치성을 드리군 하였다.
과시 더럽고 고약한 욕심을 타고 난 정가족속다운 치성놀음이라 하겠다.
《먹는데도 량반, 상놈이 따로 있소?》
근세기 민족기악음악발전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산조의 창시자로 명망높은 김창조(1856-1919)가 전라남도 전주에 있는 예기조합에서 예기들을 가르치고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봉건적신분도덕이 엄히 지켜지던 때라 광대라고 하면 신분적으로 기생들보다도 낮은 층에 속해있어 그들에게 깍듯이 존칭을 써야 하였다. 당대 가야금음악의 굴지의 대가로 사람들속에서 떠받들리던 김창조라 하여도 례외로 될수 없었다.
헌데 김창조의 입에서 기생들의 이름이 아무런 존칭도 없이 마음내키는대로 불리우다못해 《야》, 《자》하는 소리까지 왕왕 튀여나왔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며 가야금을 타느냐. 정신을 가야금에 집중해라.》
《야, 넌 쉰밥먹고 나왔냐. 인상이 왜 그 모양이냐?》
그래도 기생들은 가타부타없이 스승앞에 선 제자인양 하라는대로 싹싹 발라맞추며 돌아친다.
그러니 매일같이 기생들의 치마꼬리에 붙어사는 《기생서방》들의 눈알이 《격분으로》 튀여나올 지경이였다.
《저런 뻔뻔스러운 광대놈을 봤나, 월향이를 제 계집 쌍욕하듯 하네.》
《저놈, 담도 크다. 내 소월에게 손가락질까지 해대?》
비위가 상한 량반들이 입을 모아 삿대질을 해봐야 바위돌에 헛칼질하는 격이였다.
체격도 좋고 몸가짐이 의젓하며 위풍이 출중한데다가 성격 또한 도도하여 촌량반들의 행악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김창조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예술가로서의 높은 긍지와 자존심이 차넘치고있었다. 그래서 량반, 권세가들앞에서도 주눅이 들거나 굽신거릴줄 몰랐고 버젓이 장죽을 입에 물고 담배도 태우군 하였다. 그것이 량반들의 비위를 더욱 건드렸다. 그도 그럴것이 량반들앞에서 상민이 담배대를 문다는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때였으니말이다.
약이 오를대로 오른 량반들 몇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쑥덕공론을 벌렸다.
《저 낯가죽이 곰발통같은 광대놈을 사람들앞에서 혼내우세.》, 《기생년들이 보는 앞에서 납작하게 만들어야 해.》, 《아무렴, 제놈이 가야금으로 소문난 명수라해도 광대팔자야 어디 갈라구, 이제 량반법도를 가르치면 설설 기지 않나 두고보자.》…
어느날 김창조가 지도한 예기조합성원들의 연주가 있었다.
그가 공력을 들인 보람이 있어 예기들의 가야금연주기량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창조는 구경군들앞에 앉아 산조합주를 들으며 흐뭇한 마음으로 장죽을 뻐금뻐금 빨았다. 그러다가 소주종발을 입에 가져가는데 량반 한놈이 달려들어 그릇을 탁 쳐버리고 호통질을 해댔다.
《이놈, 무엄하기 짝이 없다. 쌍놈인 주제에 량반들이 보는 앞에서 감히 술놀음이냐?》
순간 김창조의 얼굴이 모욕과 격분으로 달아올랐다. 량반이든 상놈이든 다같은 인간이거늘, 량반세상이라고 해서 먹고 마시는것까지 차별을 두는것이 아니꼽기 그지없었다. 김창조는 두눈을 부릅뜨고 격한 음성으로 맞받아 큰소리를 쳤다.
《여보시오. 먹는데도 량반, 상놈이 따로 있소?》
불같은 호령소리에 오만하게 나섰던 량반이 정신이 얼떨떨하여 눈만 껌벅거렸다. 괜히 자는 범 건드려서 화를 청한 격이 되고말았다. 북은 칠수록 소리난다고 마주서 다툴수록 망신만 더 커질것 같았다.
짝자꿍을 치던 《기생서방》량반들도 김창조의 굽어들지 않는 강직한 기개와 도도한 위엄앞에 얼굴이 벌겋게들 되여 쩝쩝 입만 다시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