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음악작품해설
이딸리아가극의 《마지막작곡가》 뿌치니의
마지막가극 《뚜란도뜨》
뿌치니의 대표적인 가극들인 《보엠》은 1896년, 《토스까》는 1900년, 《나비부인》은 1904년에 창작공연되였다. 이 가극들의 창작년도들이 말해주는바와 같이 그는 작품을 쉽게 그리고 빠르게 쓰는 작곡가는 아니였다. 그의 음악창작속도는 완만하였고 그 과정에 작품을 위해 여러가지로 고심하는 일도 많았다.
뿌치니는 주로 호수가의 조용한 곳에서 작곡을 하였는데 마치도 몽유병환자처럼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혼자소리로 계속 중얼거리기도 하고 거의나 음식을 먹지 않고 진한 커피만 물처럼 계속 마시면서 쉬임없이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국적성격의 작품을 쓸 때에는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해당한 나라의 력사와 지리, 문화적배경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기도 하였다. 꾸준한 노력과 탐구로 그가 창작한 가극작품들은 일반대중들은 물론 음악가들속에서도 항상 인기를 모으게 되였다.
뿌치니의 매력적인 외모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늘씬한 키에 얼굴이 잘 생긴 그는 항상 단정하게 옷을 입고 깨끗하게 손질된 코수염을 길렀으며 나이가 들수록 멋쟁이로서의 자기의 면모를 더욱 세련시켰다.
뿌치니는 생전에 게사니사냥에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토록 좋아하던 게사니고기때문에 죽었다.
1922년 이딸리아에서 벨지끄로 가던 그는 어느 한 작은 마을의 식당에서 게사니불고기를 먹다가 게사니뼈에 그만 목구멍을 상했다. 의사가 뼈를 인차 없애버렸지만 그때 생긴 작은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으며 결국은 악성종양으로까지 번져갔다.
그의 병세는 나날이 더 악화되여갔다. 목소리가 완전히 쉬고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도 그는 새로운 가극 《뚜란도뜨》의 작곡에 몰두하였다.
뿌치니는 만약 자기가 이 가극창작을 끝내지 못하고 죽는다면 누가 완성하던지 하여 첫 공연을 할 때에는 《작곡가는 여기까지 썼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죽기 전에 이 가극을 완성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는 끝내 가극 《뚜란도뜨》의 창작을 끝내지 못하였다.
뿌치니의 야심작이며 마지막작품인 가극 《뚜란도뜨》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성의 문앞이다. 군중들이 한 관리가 읽고있는 포고를 듣고있다. 내용인즉 왕녀 뚜란도뜨가 자기의 미모에 끌리여 주변 나라들에서 청혼하러 온 왕자들에게 3가지 수수께끼를 내여 그것을 풀지 못할 때에는 목을 자르고있는데 오늘도 그중의 한사람인 페르샤의 왕자가 처형된다는것이였다.
군중들이 처형장으로 가느라 웅성거리며 지나간다. 여기에 닷탄왕 티무르와 왕자 칼라프가 시녀 리우를 앞세우고 나타난다. 티무르는 싸움에서 패하여 신분을 숨기고 이 베이징으로 왔던것이다. 사람들은 구름사이로 흘러가는 달을 바라보고 멀리에서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왕녀 뚜란도뜨가 궁전의 로대에서 춤추는것도 보인다.
왕자 칼라프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여 왕과 시녀의 만류도 물리치고 자기가 뚜란도뜨의 수수께끼에 도전해보려고 결심한다. 그가 왕궁 문앞에 걸려있는 징을 두드리려고 할 때 처형당하는 페르샤왕자의 《뚜란도뜨》라는 마지막 절규의 웨침이 들려온다. 궁정에서 일하는 3명의 대신들이 나타나서 바보같은 도전은 그만두라고 충고하지만 칼라프는 결심을 더 굳게 가진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여 목을 잘리운 페르샤왕자의 망령이 나타나 죽어서도 왕녀를 그리며 노래한다. 이윽고 형리가 페르샤왕자의 머리를 가지고 등장한다.
리우는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칼라프에게 어서 생각을 그만두라고 노래 《왕자님이여 들어주십시오》를 부른다. 이어 칼라프가 리우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노래 《울지 말아 리우여》를 부른다.
칼라프는 기어이 수수께끼를 풀어 뚜란도뜨를 쟁취하려고 모두의 만류도 듣지 않고 징을 두드리면서 큰소리로 《뚜란도뜨》라고 3번 부르며 왕녀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그것을 본 3명의 대신은 젊은 사람의 무모함을 조소하여 큰소리로 웃는다. 베이징시민들의 대합창이 울리기 시작한다.
3명의 대신들이 뚜란도뜨때문에 이미 13명의 왕자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여 목숨을 잃었다고 말하면서 왕녀의 마음을 녹여서 사랑의 밤을 맞이하라고 노래부른다.
궁전앞의 광장이다. 군중들이 왕자의 수수께끼풀이를 보려고 흥분하여 모여든다. 관리들이 그들을 량쪽으로 정돈하여 세우자 정면 대계단우에 황제가 나타난다.
황제는 왕녀가 엄격하다는것을 칼라프에게 전한다. 드디여 뚜란도뜨가 등장하며 노래 《먼 지난날》을 부른다. 그는 옛날 한 아름다운 왕녀가 자기 나라에 침입해온 닷탄의 군대에 포로되여 불행한 죽음을 당하였으므로 그 복수로 이러한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말하면서 수수께끼를 내기 시작한다.
칼라프는 그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대답은 《희망》, 《혈조》, 《뚜란도뜨》였다. 수수께끼가 풀리여 황제를 비롯한 모두가 기뻐하지만 왕녀 뚜란도뜨만은 자기의 몸을 누구에게도 허락하고싶지 않다고 황제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황제는 언약은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딸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뚜란도뜨는 절망에 잠겨 괴로워한다.
그것을 본 칼라프는 이번에는 자기가 하나의 수수께끼를 내겠다고 하면서 《날이 밝을 때까지 나의 이름을 알아맞힌다면 당신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 그러나 알아내지 못할 때에는 나의 안해가 되여야 한다.》고 말한다.
왕녀 뚜란도뜨는 머리를 숙이고 가문을 알수 없는 이 젊은이의 제기를 받아들인다. 한편 황제는 칼라프에게 《래일은 틀림없이 네가 내 아들로 될것이다.》라고 말한다.
베이징거리에는 이상한 젊은 사람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누구도 잠들수 없다는 포고가 나붙었다. 왕자 칼라프는 《누구도 잘수 없다네》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동틀무렵 해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 왕녀 뚜란도뜨는 자기의 안해로 될것이라고 자신심에 넘친 감정을 나타낸다.
여기로 3명의 대신들이 찾아와 왕자의 기분을 맞추면서 자기들의 생명을 구원해줄것을 바라며 한시라도 빨리 이 거리에서 떠날것을 애원한다. 그리고 금덩어리를 비롯한 재물을 보여주며 그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이때 갑자기 《이름을 알아요.》하는 사람들의 웨침소리가 들리더니 《그 젊은 사람과 이야기하고있는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티무루와 리우를 데리고 온다.
뚜란도뜨는 로인과 처녀를 고문하며 젊은이의 이름을 물었으나 두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완강하게 부정하는 늙은이와는 반대로 처녀 리우는 《그의 이름은 나만이 알고있다. 그렇지만 가슴속 깊이 감추어놓는것이 나의 기쁨이다.》라고 말하며 매를 맞으면서도 왕자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
괴로운 고문을 견디여내는 이상한 힘의 비결을 알수 없어 놀라는 왕녀 뚜란도뜨에게 리우는 《얼음과 같이 찬 당신의 마음도 끝내는 녹아서 그를 사랑하게 될것이예요》라고 노래하면서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에 있다는것을 설명한다. 그리고는 갑자기 옆에 서있는 위병의 단검을 빼앗아 쥐고 주저없이 자기 가슴을 찌른다.
사람들은 이 어린 처녀의 깨끗하고 굳은 지조에 감동을 금치 못한다. 그처럼 모질던 왕녀 뚜란도뜨도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에 휩싸인다.
티무르와 거리사람들은 리우의 죽음을 슬퍼하며 운다. 사람들은 처녀의 시신을 들고 모두 나가며 왕자 칼라프와 왕녀 뚜란도뜨만이 남는다.(여기까지 뿌치니가 작곡하였다.)
왕자는 뚜란도뜨의 얼굴가리개를 벗기고 그와 정열적으로 입을 맞춘다. 난생 처음 당하는 감미로운 맛에 왕녀 뚜란도뜨의 마음도 녹아내린다.
이미 왕녀의 마음을 완전히 걷어쥐였다는것을 느낀 왕자는 자기가 바로 뚜란도뜨가 미워하는 닷탄왕자 칼라프라는것을 밝히며 자기의 생명도 그에게 맡긴다고 말한다.
왕궁앞이다. 황제와 사람들이 서있는 앞에서 왕녀 뚜란도뜨는 왕자의 이름을 알리겠다고 선포한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고있는 속에 뚜란도뜨는 기쁨에 넘쳐 《그대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웨친다. 사람들의 환호속에 막이 내린다.
가극 《뚜란도뜨》는 뿌치니가 죽은 2년후인 1926년 4월 25일 이딸리아의 밀라노시에서 첫 공연의 막을 올렸다. 이날 공연을 지휘한 토스까니니는 리우의 죽음대목까지 지휘하고는 지휘봉을 놓고 가극상연을 끊었다. 그리고 청중들을 향하여 《뿌치니선생이 미완성으로 남긴 가극은 여기서 끝납니다. 바로 여기에서 뿌치니선생이 세상을 떠났던것입니다.》라고 엄숙히 선언하고 깊은 애도속에 극장을 나섰다. 청중들도 모두 뿌치니의 죽음을 슬퍼하며 묵묵히 극장을 떠나갔다.
이것은 이딸리아가극력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였다.
물론 그 다음 공연때부터는 가극 《뚜란도뜨》의 전부가 다 상연되였다.
그러나 바로 뿌치니가 세상을 떠난 그때로부터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던 이딸리아가극의 력사도 서서히 끝나가기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