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과업
북과 남에 6.15의 열풍이 차넘치던 어느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문을 몰라하는 그에게 특별과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노래 《우리는 하나》가 창작되였는데 노래가 잘되였다고 하시며 가사에 있는 민족도 하나이고 피줄도 하나이며 뭉치면 하나이고 둘합치면 더 큰 하나라는 표현들은 철학적깊이가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노래 《우리는 하나》를 합창으로 잘 형상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이어 노래의 형상방도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 《우리는 하나》를 잘 형상하여 누구나 다 환희의 감정을 가지고 쉽게 부를수 있는 통속적인 노래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관심속에 노래 《우리는 하나》는 녀성독창과 남성합창으로 훌륭히 형상되여 울려퍼졌으며 그것은 온 겨레의 조국통일의 열망과 의지를 더욱 뜨겁게 하여주었다.
정녕 이 한편의 노래에도 조국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제로 내세우시고 언제나 통일을 위해 마음쓰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애국의 뜻과 현명한 령도의 손길이 어리여있다.
이루어진 평생소원
주체70(1981)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의 전반사업을 돌보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친히 해외동포음악가인 윤이상선생이 작곡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를 록음으로 들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윤이상선생이 작곡한 교향시에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통일을 열렬히 바라는 그의 사상감정이 잘 반영되여있다고 하시면서 교향시연주회를 조직하도록 해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지난날 윤이상선생이 작곡한 노래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도록 하여주시였다.
그의 작품들이 다시 세상에 태여난것을 못내 기뻐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친히 그가 작곡한 가곡들을 들어주시였다. 그러시고 발굴된 가곡들을 가지고 음악회를 진행하도록 해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또다시 베풀어주시였으며 출연할 예술인들과 반주악단까지 선정해주시였다.
록음이 짙어가던 주체72(1983)년 5월 어느날 평양의 모란봉극장에서는 윤이상음악회의 막이 오르게 되였다.
한 해외동포음악가의 가슴속에 불타는 애국의 마음을 그리도 귀중히 여기시며 적극 내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이 있어 그리운 조국땅에서 자기의 음악이 울리기를 바라마지 않던 윤이상선생의 간절한 소망은 드디여 풀리게 되였다.
대를 이어 높이 부를 신념의 노래
주체81(1992)년 1월 12일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해당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여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올해에 진행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서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잘 형상하여 첫 종목으로 부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뜻밖의 말씀을 받아안은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해마다 진행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의 첫 종목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로 공연의 막을 열군 하였는데 노래종목을 바꾸라고 하시였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의문을 풀어주시려는듯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는 혁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나가야 한다는 사상이 반영되여있다고, 특히 3절가사 《이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 싸워서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양춘을 찾아 올제 독립만세를 조선아 불러다오》에는 대를 이어가면서 혁명을 계승완성하여야 한다는 사상이 뚜렷이 반영되여있다고 하시며 노래의 사상예술성에 대하여 설명해주시였다.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외우신 가사를 다시한번 가슴깊이 상기해보았다.
이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 싸워서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양춘을 찾아 올제 독립만세를
조선아 불러다오
일군들은 그제야 위대한 장군님께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의 첫 종목으로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선정하신 의도를 깨닫게 되였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주체혁명위업계승완성의 심오한 뜻을 담은 혁명가요이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아버님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 《지원》의 사상을 가슴깊이 새기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가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강조하신 다음 혁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여야 한다는 사상이 반영되여있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오늘도 혁명을 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고있다고 하시면서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서 첫 종목으로 부르도록 할데 대하여 다시금 언급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80돐을 맞으면서 진행된 제1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첫 종목으로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가 선정되게 되였다.
련환공연 첫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캄보쟈국가수반인 노로돔 시하누크친왕(당시)과 함께 공연을 보시였다.
세계 여러 나라 예술인들과 우리 예술인들이 출연한 공연은 관현악과 합창 《남산의 푸른 소나무》로 막이 올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시하누크에게 감회깊은 어조로 좋은 노래라고 하시면서 대를 이어 혁명을 하여야 한다는 사상이 담겨져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시하누크는 《정말 뜻이 깊은 노래입니다.》라고 감탄하며 노래의 진리성과 생활력에 깊이 공감하였다.
그의 말을 들으시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합창으로 부르니 아주 좋다고, 무대막의 《지원》이라는 글은 우리 아버님께서 지으시였다고 하시며 우리도 《지원》의 뜻대로 싸워 승리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장중하면서도 숭엄한 선률로 하여 관람자들의 심장을 억세게 틀어잡은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무대를 보다 의의깊게 장식하였다.

우리 시대의 《자장가》
주체69(1980)년 8월 하순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만수대예술단 작곡가들을 부르시였다.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동안의 창작정형을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우리도 《자장가》를 새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창작가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못 긴장되여있는 작곡가들을 정다운 눈길로 바라보시며 17세기와 18세기에도 《자장가》가 있었는데 왜 우리 시대라고 《자장가》가 필요없겠는가, 20세기의 《자장가》 즉 우리 시대의 《자장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우리 시대의 《자장가》!
이는 정녕 어버이장군님께서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를 맞으며 혁명의 미래인 우리의 새 세대들과 어머니들에게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은정깊은 사랑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후렴이 없는 한절짜리의 짧은 노래, 명곡을 만들자면 명가사를 만들어야 하며 가사는 정치성을 강조하지 말고 어머니의 심정에서 쓸데 대한 문제 등 《자장가》를 시대의 명곡으로 창작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영예로운 과업을 받아안은 작곡가들은 그날부터 창작전투를 힘있게 벌리였다.
한 작곡가는 자기 식대로 가사를 써보았다.
자장자장 아가야
잠 잘 자거라
꿈나라로 가려마
내 사랑 아가야
그리고는 어머니들이 쉽게 부를수 있는 평이한 선률을 붙이였다.
며칠후 여러 작곡가들이 지은 노래가운데서 한곡을 골랐는데 뜻밖에도 그 노래가 선택되였다.
그러나 노래합평회에서는 노래의 선률이 어느 다른 나라의 《자장가》와 비슷하다는 의견, 노래가사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토론을 거듭하던 과정에 이 노래를 위대한 장군님께 올리기로 합의되였다.
《자장가》를 친히 록음으로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수대예술단에서 새로 창작한 노래 《자장가》를 들어보았는데 아주 훌륭하게 작곡하였다고 분에 넘치게도 높은 평가의 말씀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사색에 잠겨계시다가 새로 창작한 노래 《자장가》를 어느 한 나라의 《자장가》의 선률과 대비해보았는데 비슷한데가 없다고 하시면서 작곡가가 묘하면서도 특색있게 선률을 잘 뽑았다고, 노래 《자장가》를 지은 작곡가에게 작곡을 아주 잘하였다는것을 전달해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전달받은 작곡가는 너무도 뜻밖이여서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렇게 의견이 많던 《자장가》가 이렇게 높이 평가되다니?!
노래를 지은 작곡가도 속수무책으로 앉아있었는데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른 나라의 노래를 찾아서 여러번 대조하여 보셨다니 이게 어디 될 말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사에서 제기되였던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명백한 해명을 주시였다.
가사를 다시한번 훑어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작가동맹의 일부 동무들이 새로 작곡한 노래 《자장가》의 가사에 있는 《꿈나라로 가려마》라는 대목에 대하여 오늘 사회주의락원에서 《꿈나라로 가려마》라는 가사를 쓸수 있는가고 하면서 의견을 제기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작품을 대하면 특색있는 작품이 나올수 없다고 일깨워주신 다음 《꿈나라로 가려마》라는 말은 빨리 단잠에 들라는 뜻이므로 나쁠것이 없다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노래 《자장가》를 작곡은 특색있게 잘하였는데 반주는 좀 빈약해졌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완전한 관현악편성으로 다시 록음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창작가들은 《자장가》를 시대적명곡으로 더 훌륭하게 완성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과 의도를 명백히 파악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로 하여 당시 반주에 참가할 인원문제도 제기되였지만 그보다는 아기를 잠재우는 간단한 노래이니 실내악적인 소편성으로 반주편곡을 해도 일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반주문제를 소홀히 하였던것이다. 창작가들은 깊은 자책속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록음준비를 다그쳤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자장가》를 관현악으로 편성하면서 허밍과 《아》 정도는 넣을수 있지만 노래를 넣으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노래는 처음에 형상하였던 록음을 그대로 살리며 죽관악기를 빼고 그 대신 엘렉톤과 플류트, 클라리네트를 보충하고 허밍을 더 효과적으로 쓸데 대하여 다시금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노래만으로도 들어보시고 노래없이 관현악으로도 들어보시며 《자장가》의 선률이 진짜 좋은가를 확인해보시였다.
그러던 그해 11월 30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수대예술단 창작가들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시고 아직도 조화롭지 못한 허밍처리를 잘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우리 시대, 로동당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좋은 《자장가》가 나왔다고 기쁨과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자장가》를 고요한 밤시간에 많이 내보낼데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고 보천보전자악단에서 다시 형상하여 부르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참으로 세상에는 자장가들이 많지만 로동당시대에 창작된 우리의 《자장가》처럼 의의깊고 뜻깊게 창작된 자장가는 없으며 이 땅에 어머니들과 아기들을 위한 노래가 많지만 이처럼 한 나라 령도자의 뜨거운 어버이사랑속에 탄생하여 널리 불리워진 노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