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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음악사개관

7. 전시음악의 창조로 음악사의 새로운 구획이 지어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주체39(1950). 6‐주체42(1953). 7

 박사, 부교수 남상민

 

1)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음악예술발전의 환경

1950 6 25일 미제와 그 주구들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침략자들의 무분별한 무력침공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민은 자주독립국가의 슬기로운 인민으로서의 영예를 고수하느냐 아니면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노예로 되느냐 하는 생사존망의 엄혹한 사태에 직면하게 되였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엄혹한 시각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39(1950) 6 26일 력사적인 방송연설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에서 지체없이 전전선에 걸쳐 놈들의 무력침공을 좌절시키며 미제와 그 주구들을 우리 조국강토에서 쓸어버리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총궐기할것을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에게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적호소를 심장으로 받들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원쑤격멸의 정의의 항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전선과 후방에서 대중적영웅주의와 무비의 희생성을 발휘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미제는 이 침략전쟁에 15개 추종국가군대, 남조선괴뢰군과 일본군국주의자들을 끌어들여 우리 공화국의 모든것을 무참히 파괴하고 우리 인민을 가장 악랄하고 야수적인 방법으로 학살하면서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으나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자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결사의 각오를 안고 산악같이 일떠선 우리 군대와 인민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주체42(1953) 7 27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여 영웅조선의 기상을 온 세상에 힘있게 과시하였으며 력사상 처음으로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늘 조선인민이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해방전쟁을 진행하고있는 이때 우리 작가,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중대한 임무가 부과되여있습니다. 우리의 작가, 예술가들은 인간정신의 기사로서 자기들의 작품에 우리 인민의 숭고한 애국심과 견결한 투지와 종국적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뚜렷이 표현하여야 하며 자기들의 작품이 싸우는 우리 인민의 강력한 무기로 되게 하며 그들을 최후의 승리에로 고무하는 거대한 힘으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과 후방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는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우리 음악예술이 전쟁승리에 이바지하도록 전시음악예술의 기본임무와 전투적이며 영웅적인 음악예술창조에서 나서는 미학실천적문제들을 환히 밝혀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군대와 인민의 영웅적투쟁과 고상한 사상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전쟁승리에 이바지한 음악‐《전시음악》이 창조되게 되였다.

 

2)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음악예술발전의 주요특징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의 모든 음악예술활동도 전시체제로 개편되였고 가렬한 전시의 환경속에서도 음악예술은 당과 국가의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국해방전쟁시기 음악창작과 음악예술공연, 군중음악예술, 음악교육 등 음악예술분야의 모든 활동이 매우 활발히, 새로운 면모를 띠고 적극적으로 진행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과 후방에서의 소편대형식의 다양한 연예공작대활동이 중심으로 진행되였고 총포탄이 우박치는 가렬처절한 환경속에서 수많은 음악작품들이 창작되였으며 각종 군중예술축전과 대외공연활동이 중단없이 계속되였다.

전시음악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의 열렬한 애국주의와 대중적영웅주의, 무비의 용감성과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 승리에 대한 신심으로 차넘치는 락천적인 사상감정과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면서 커다란 창작적 및 창조적성과를 이룩하였다.

전시음악은 전반적으로 밝고 락관적인 정서로 일관되였으며 전투적이고 진공적인 행진곡풍의 음악과 신심에 차넘치는 대중적인 서정성과 비장성, 락천성과 해학성이 담긴 음악들이 위주로 되였다.

 

3) 전시음악창조에서 이룩된 대표적인 성과

‐ 예술공연활동이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되였다.

전쟁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공연활동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교시를 받들고 우리 예술인들은 전쟁의 엄혹한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와 음악들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원쑤격멸의 항전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베를린)과 중국,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에 대한 순회공연 등 대외공연활동을 적극 벌려 싸우는 조선인민에 대한 국제적련대성을 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가요는 전시음악창작에서 가장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의 중요한 사상정신적, 문화정서적수단으로 되였다.

이 시기 가요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친히 《조국의 품》 《축복의 노래》를 지으심으로써 우리 인민들이 력사상 처음으로 조국은 곧 수령이며 조국의 품은 수령의 품이라는 가장 숭고한 사상정신세계를 체험하게 한 노래,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과 안녕을 삼가 축원하는 흠모의 노래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받아안게 된것이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을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격조높이 노래한 《우리의 최고사령관》, 우리 인민군대의 대중적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을 행진곡풍으로 형상한 《조국보위의 노래》, 《진군 또 진군》, 《강철의 대오는 전진한다》, 원쑤격멸의 불타는 적개심을 격정적이고 비장하게 형상한 《결전의 길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열렬한 애국심을 풍만한 서정속에 노래한 《전호속의 나의 노래》, 《문경고개》, 《내 고향의 정든 집》, 인민군대와 인민들의 슬기로운 투쟁모습과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 락천적성격의 선률형상으로 노래한 《자동차운전사의 노래》, 《아무도 몰라》, 《샘물터에서》, 전선원호에 떨쳐나선 후방인민들의 투쟁모습을 기교가 높고 류창한 선률로 울려준 《압록강2천리》, 인민군용사들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민요풍의 선률로 형상한 《매봉산의 노래》 등은 대표적인 전시가요의 일부이다.

‐전문적인 성악안삼블의 한 형태로 존재해오던 중창음악이 이 시기에 보다 대중적인 성격을 띠고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합창음악창작도 계속 적극화되였다.

특징적인것으로 볼수 있는것은 전시중창음악들이 경쾌하고 락천적인 양상으로, 합창음악들이 행진곡적인 양상으로 형상된것이다. 중창이나 합창곡들은 대체로 전시가요들을 편곡한것이였다. 합창곡들중에는 단악장으로 된 교성곡 《백두산서곡》, 《보천보홰불》, 《조선은 싸운다》, 4악장으로 된 교성곡 《조국의 고지》와 같은 작품들도 있었다.

‐ 기악부문에서도 새로운 전진이 이룩되였다.

국립예술극장의 《고전악단》이 《국립고전예술극장》으로 개편되고 처음으로 민족관현악단이 조직됨으로써 민족기악발전의 토대가 더욱 튼튼히 다져지게 되였다.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모란봉지하극장이 꾸려져 창극과 가극들이 준엄한 전시의 환경속에서도 계속 발전하게 되였다. 전쟁 이전 시기의 작품을 예술적으로 더욱 세련시켜 개작한 창극 《리순신장군》, 단막가극들인 《우물가에서》, 《앞마을 뒤마을》, 《진격의 노래》는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양악기악분야에서도 전시의 현실을 반영한 교향시 《승리를 위하여》를 비롯하여 《돌격대조선》, 《승리》가 창작되였다.

그리고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가요와 민요들을 편곡한 관현악작품들이 창작되였다.

‐ 인민군군인들과 광범한 인민들속에서의 군중예술활동도 매우 활발히 진행되였다.

전시군중음악활동에서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인민군군인들이 벌린 화선음악활동이다.

인민군 각 부대들마다에 군악대가 조직되고 중대, 소대별로 예술소조들이 조직운영되였다. 인민군군인들은 가렬한 전투의 쉴참에 불에 타다 남은 나무와 각종 탄피 등을 리용하여 만든 단소, 저대, 가야금을 비롯한 민족악기들과 바이올린과 같은 양악기로 예술소조활동을 힘있게 벌렸다.

후방의 인민들속에서도 군중예술활동이 활발하였다.

주체42(1953) 5. 1절을 기념하여 조직된 전국예술소조축전에 모두 10만명의 전문예술인들과 예술소조원들이 참가하였다는 사실만을 놓고보아도 생사를 판가리하는 준엄한 전쟁시기에도 우리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의 군중예술활동이 중단됨이 없이 필승의 신념과 보다 앙양된 열의속에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되였다는것을 잘 말하여준다.

이처럼 력사에서는 순간이라고도 할수 있는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음악예술은 자기의 뚜렷한 면모와 양식적특성을 가지고 발전함으로써 음악사적으로 하나의 새롭고 독자적인 구획을 지어놓게 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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