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일야방성대곡》사건의 내막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말은 《이날에 목놓아 우노라》는 뜻이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에 의하여 망국적인 《을사5조약》이 강압적으로 날조되였을 때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황성신문》사 사장 장지연이 망국의 슬픔을 참지 못하여 이 사실을 세상에 고발하려고 하였다.
이것을 눈치챈 을사5적중의 한놈인 내부대신 리지용이 장지연을 찾아와 성주군수의 자리를 줄테니 신문에 격렬한 론조의 글을 내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회유하였다.
그러자 장지연은 이 사실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입을 다물면 세상사람들이 조선과 일본이 합의하여 《조약》이 체결된것으로 잘못 알수 있다고 단호하게 뿌리쳤다.
장지연은 술을 잔뜩 마시고 흐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론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써서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부에 발표하여 온 나라에 통곡을 호소하였다. 그는 사전원고검열도 받지 않고 보통날의 3 000부를 훨씬 넘는 10 000부를 인쇄하여 경향각지에 배포하였다.
이를 접한 온 민족은 분노의 치를 떨며 대성통곡하였다.
이에 질겁한 일제는 장지연을 비롯한 신문사일군들을 구금하고 신문을 페간시키였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와 압력에 못이겨 신문은 복간되고 장지연은 석방되였다.
이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일야방성대곡》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