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합주곡 《락양》의 창작에 대하여
림주혁
지금까지 윤이상의 실내합주곡 《락양》에 대하여서는 해설글들도 나왔고 또 토론회들에서 론의도 되였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이 작품이 어떤 시대적환경과 어떠한 창작적의도에서 무엇을 중시하여 창작되였는가에 대하여 밝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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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1962년의 평론이 있습니다. 〈조선사람인 윤이상은 현대음악의 분방한 소재를 리용하여 더우기 모험을 하여 독특하나 동양적인 거치른 효과를 내고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동양적인 거치른〉이라는 기묘한 표현입니다. 예술적으로 거칠다는 표현은 정확히 말하여 조선에서는 론의할 여지가 없는 표현입니다. 오히려 극도의 세련이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이것은 작곡가 윤이상이 1960년대에 자기의 음악창작활동에 대하여 쓴 한 평론기사를 놓고 도이췰란드 녀류작가 루이저 린저와 나눈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윤이상의 이 길지 않은 말속에는 실내합주곡 《락양》이 창작되던 시기의 환경, 창작경위와 창작적의도 그리고 그 발전적면모가 집약되여 담겨져있다고 본다.
실내합주곡 《락양》은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의 두번째 단계라고 할수 있는 1962년에 창작되였다.
이 시기는 유럽현대음악계의 많은 작곡가들이 음렬작곡법의 모순을 인정하고 보다 《새로운 음악》의 출로를 찾기 위해 각이한 노력을 기울이고있던 때였다.
특히 리게띠나 뻰떼레쯔끼를 비롯한 작곡가들은 음악의 뚜렷한 표현성을 거부하고 《음렬작곡》방식대신 음의 무의미적인 라렬, 음의 묶음에 의한 음악의 《색채성》을 주장하면서 자기나름대로의 《음향작곡》방식을 내놓았으며 일부 극단적인 작곡가들은 이것을 정당화하고 풍부화시킨다는 미명하에 전기청소기소리와 같은 음악외적인 소리까지 음악창작에 리용하였다.
비문화적이며 비과학적인 추상성의 추구, 그 어떤 개성의 무차별적인 부인을 제창하면서 음악에서 내용과 형식의 직접적표현인 《령감》, 《감성》, 《민족성》 등을 배척하던 이 시기의 음악작품들은 순수한 음악전통의 비참한 파괴를 가져왔으며 사람들이 음악의 개념마저도 의심하게 하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현대음악작곡법을 배우고 또 새로운 음악작품을 창작하려고 탐구의 나날을 보내던 윤이상은 (나는 어디에 있으며 어데로 가야 하는가. 나도 이 사람들처럼 급진적인 작곡을 하여 전위파속에 지반을 닦을것인가 아니면 우리 동아시아적인 음악전통과 결합된 자기의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할것인가.)라는 착잡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민속에서도 윤이상의 창작적리상과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음의 표현방식에 기초한 새로운 자기식의 작곡방식을 탐구완성하는것이였다.
윤이상은 유럽현대음악계에서 12음작곡법에 기초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을수 없었던 당시의 조건에서 여러편의 실험작들을 창작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둔데 토대하여 자기의 창작적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대담한 실천에 달라붙었다.
이러한 환경과 의도에서 나온 첫 작품이 1960년에 창작된 관현악곡 《바라》이다.
윤이상은 이 작품의 창작에서 12음작곡법에 기초하면서도 개별적인 음의 흐름에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연주표현방식들을 조심스럽게 적용하여 독특한 색갈을 살려나갔다. 다시말하여 조선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음의 표현방식들인 롱현, 롱음, 미분음 등을 비브라토와 글리싼도를 비롯한 유럽의 연주방식으로 표현하였으며 하나의 악기소리에서도 전통적인 민족악기의 소리색갈을 살리기 위해 탐구를 거듭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을 놓고 평론가들은 《억제된 조선적인 민족음악이다.》, 《이 작곡가는 모름지기 그 음조에 있어서 조선의 궁중음악과 최근 윤이 블라허와 루터에게서 배운 현대 서양의 작곡기법을 결합시키려고 노력하고있다.…》, 《현대음악의 창작기법도 풍요한것을 가져다줄수 있다는것을 스쳐지나서는 안된다. 즉 조선인 윤이상의 경우처럼 그 기법이 자기 목적이 되는것이 아니고 자연의 음악적직감과 정확한 기법적능력이 결합되는 경우에는 현대음악의 창작기법도 반드시 풍요한것을 가져올수 있는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이것은 윤이상이 자기의 리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창작한 첫 의도작이 거둔 일정한 성과에 대한 평가인것이다.
윤이상은 자기의 노력이 결코 헛된것이 아니며 그 의도가 전혀 불가능한것이 아니라는것을 판단한 기초우에서 동아시아의 정서적색채를 살릴수 있는 음악작품창작에 열정을 기울이였다.
바로 그 과정에 완성된 작품이 실내합주곡 《락양》이다.
이 곡은 옛 왕궁의 음악을 그대로 묘사할 목적으로 창작된 윤이상의 초기음악창작단계에서의 대표작이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내용들에 근거하여 실내합주곡 《락양》에 대하여 한마디로 정립한다면 작품은 윤이상의 독자적인 창작방식인 《주요음향》작곡법에 기초하여 동아시아의 정서적색채를 진하게 살린 특색있는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윤이상은 초기음악창작의 첫 단계에서 작품들의 표제를 《피아노를 위한 5개소품》, 《7악기를 위한 음악》, 현악4중주곡 제3번 등과 같이 붙이면서 그러한 작품들에 주제나 내용을 부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음악창작의 보다 적극적인 단계라고 할수 있는 두번째 단계에서는 그 의미가 새로와지기 시작하였다.
아는바와 같이 이 시기 윤이상에게 있어서 기본목적은 지금까지 요소적으로 조심스럽게 적용하던 조선의 전통적인 음의 표현방식에 기초한 자기식의 작곡방식을 완성하는것이였다. 다시말하여 조선민족의 오랜 문화전통의 우수성을 유럽현대음악과 결합시켜 자기 식의 독자적인 음악양식을 확립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윤이상은 이 시기에 음악작품을 창작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주제나 내용을 표제적으로 보다 명백히 하였다.
실내합주곡의 표제 《락양》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작품의 표제 《락양》은 지역을 가리키는것이며 음악적정서는 옛 왕실의 궁중음악을 련상시킨다. 이로부터 실내합주곡 《락양》은 윤이상의 민족적감정에 그 바탕을 두고 그 의미나 의도에 있어서 민족적인 맛을 유럽현대음악의 작곡방식으로 표현한 특색있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실내합주곡 《락양》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여있다.
제1악장에서는 온화한 정서로 락양의 옛 왕궁을 련상시키고있다면 제2악장에서는 대조적으로 보다 활동적인 정서로 궁중생활을 펼쳐보이고있는듯싶다. 제3악장에서는 제1악장과의 정서적통일을 이루듯 비교적 온화한 정서속에 옛 왕궁의 아악이 울리는듯 한 형상이 펼쳐진다.
실내합주곡 《락양》이 창작되여 연주되던 1964년 당시 여러 평론매체들은 《이것은 12음기법자체를 위하여 작곡된 음악은 아니고 그자체의 내부에 강렬한 표현적요구가 있음을 알리는 음악이다. 모든 음향적대담성마다 엄격한 형식적인 규률속에 고대조선의 궁중음악에 의거한데로부터 생기는 음악전통과의 결합만을 들을수 있게 한것이 아니라 짧게 숨쉬는 제1악장에서부터 장식성이 풍부한 제2악장을 거쳐 극적으로 절박한 마지막악장에로의 고조는 완전히 매력적이다. 표현력과 예술형식의 재치있는 일치를 보이고있는것이다.》, 《이 곡에 의해 우리들의 음악감각의 근저에 있는 무엇인가가 뒤흔들리는듯 한 느낌을 받는다.》와 같이 크게 호평하였다.
이처럼 윤이상의 실내합주곡 《락양》은 음향작곡방식이 대두하면서 일부 작곡가들이 각이한 색채실험의 미명하에 음악외적인 소리까지 리용하던 유럽현대음악계에 매우 의미있는 문제를 시사하여주었으며 민족성과 전통성을 배제한 유럽《전위》음악계에서 민족의 전통음악에 기초한 《주요음향》기법을 창조하여 유럽현대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작곡가자신의 창작적의도가 현실적으로 적용된 대표적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