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와 세계공개성(1)
(1987년
9월 일본 오사까에서 열린 제8차국제학술토론회 기조보고)
명예철학박사, 교수 윤이상
존경하는 여러분!
이번 우리들이 취급하려고 하는 주제는 광범위할뿐아니라 력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주제라고 할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주제가 일찌기 여론의 관심을 끌었던적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문화라는 개념은 여러 측면을 포괄합니다. 이 측면들을 짤막한 론술에서 모두 남김없이 다룬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들가운데서 저는 아시아적전통에 뿌리를 두고있고 유럽에서 공부한 뒤 직업을 가지고있는 예술가로서 저의 관심을 끄는 측면에 국한하여 다루려고 합니다. 저는 소비품의 생산, 사회적생활조건의 물질적확보, 개선 및 재생산과 관련된 분야, 즉 오늘날 넓은 의미에서 산업생산에 속하는것들은 거의 모두 고려대상에서 제외시킬 생각입니다. 이러한 산업적생산은 이를테면 기술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의 발견과 같은 특정한 문화적성과물들을 전제로 하며 그자체가 커다란 요인으로서 갈수록 확대되는 규모로 결정적영향력을 행사하고있고 심지어 유럽문화권밖에 있는 사회의 문화에 대해 파괴적작용을 하고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그자체가 문화창조의 요소인것은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제가 고찰범위를 한정시키는것은 전적으로 자의적인것만은 아니고 《문화》와 《문명》의 개념을 분리시켜온 전통에(물론 이 전통도 력사적으로 문제성이 없지는 않지만) 립각한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문화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은 인간로동의 산물들가운데서 어떤 상징적내용을 지니는것들, 그리고 이것들이 존재할수 있었던것은 결국 어떤 위협적인 세계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인간, 자신의 력사적, 사회적삶에 인간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있었기때문에 존재하게 된 그러한 산물들을 가리키게 될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예로부터 인류가 고도의 관념적상상력에 의하여 표상물들에 감각적, 상징적표현을 부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현세에 영원히 계속된다고 하는 사고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알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감각적현상들을 리상화하려는 욕구를 지녀왔고 또 미를 추구해왔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지역마다 다르게 발전해왔고 서로 다른 결과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리하여 유럽에서의 사고방식이나 문화관과 유럽밖의 지역, 가령 저의 경우 동아시아에서의 그것들은 서로 엄청난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 두 문화권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현저한 차이들가운데 하나로서 가령 유럽의 문화를 특징지어온 현상, 즉 문화창조활동이 작품이라는 개념과 결부되는 현상을 지적할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동아시아적전통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와 련관되는 현상으로서 유럽의 예술이 리념을 지향하고 예술가는 이 리념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서양에서 《아름다움》은 고대 그리스시대이래 리념의 감각적현상에 결부되여왔고 작품활동이라는 범주가 자연에까지 확장, 적용되여왔습니다.
이와는 달리 동아시아적미학관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정신이 우주전체를 포함한 고도의 《직감적감동》에 의하여 생겨난다고 봅니다. 이에 의하여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화가 발전하게 되였습니다. 유럽의 예술은 합리성과 밀착된 관계로 언제나 새로 얻은 인식에 표현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또 이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합목적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지배함으로써 기존의 관념들이 더욱더 가속적으로 변화하게 되였으며 이에 따라 각 시대양식의 교체속도도 빨라져갔고 급기야 예술은 사회적으로 양식을 형성하는 힘을 잃게 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헤겔(Hegel)은 예술의 종말을 예고하였고 당시 유럽의 랑만주의예술에서 이 종말을 보았던것입니다. 한편 예술이 객관적구속력을 상실해감과 동시에 주관적으로는 예술적자유에 관한 감정이 성장발전하게 되였습니다. 그와 함께 예술작품은 단지 미적향유의 대상으로 되였고 작품속에서 표현된 예술가개인의 인격에 관련된 문제들로, 아무런 의무감도 지우지 않는 수용자의 단순한 지적호기심의 만족대상으로 변하게 되였습니다.
동아시아의 경우 이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여기서는 양식상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으며 예술종류와 기법들도 수백년을 두고 변화없이 전해져내려오고있습니다. 이에 비교해볼 때 유럽에서 예술창작의 위기설이 론의되고있는것은 현실형상화의 상징창조적이고 구속력있는 세계관과 형식들을 산생해내는 활동으로서의 예술적창작이 력사적으로 지녀왔던 책임, 그리고 여전히 지니고있는 그러한 책임을 점점 더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하게 되였기때문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아시아의 예술에서 특징적인 점은 력사적으로 변천해가는 현실에 대한 반영의 요소가 결여되여있고 또 인간적인 개성을 취급하는 면에서는 무관심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문화전통의 상대관계에 미래를 위한 풍부한 가능성이 있다는것을 저는 뒤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날 이른바 공업적선진국가들의 실태를 고찰해볼 때 그 발전된 기술에 의하여 문화창조의 풍부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위기의 목소리가 높아가고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론의하는것도 바로 이 위기의식의 한 증거로 됩니다. 문화창조활동의 의욕은 외부로부터 자주 방해를 받습니다. 국가는 문화창조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보호와 지원에 대하여서는 정치적, 경제적곤난성으로 하여 매우 소극적입니다. 문화는 소비품생산의 팽창과 그에 따르는 보다 새로운것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에 의하여 질식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물질적으로 풍부해지고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졌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정신적인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있습니다. 정신적안정이 없이는 창조적활동이란 있을수 없는것입니다. 예술이 대중적의의를 잃게 된 점에 대해서는 예술자체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수 없습니다. 예술자체가 우에서 말한바와 같은 상태에서 자체를 수호하기에는 무력하였기때문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예술의 생명이 다해가는 하나의 징후를 보고있습니다. 창조의 힘은 단순한 구조적가능성 즉 산업발전의 물결을 타고 내용이 없고 책임이 없는 표면적, 실험적상황에까지 넓혀집니다. 예술의 개념속에 들어있는 필연성과 자유와의 통일은 창조의 자유라는 측면으로 환원되고마는것입니다. 이 경우 전대미문의 새로운것이라는 사고방식은 넓은 의미에서 문화적산물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중요한 기준으로 되였습니다. 예술은 의미의 발견이라든지 사회적인 의사소통에 기여하는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압박과 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해가는듯이 보입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의 령역이 사회적현실의 령역에서 분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유럽밖의 문화권에서는 아직 다른 전통들이 살아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전통들도 작품개념에 얽매인 유럽의 합목적적사유가 서양세계의 울타리를 벗어나 퍼져나가는 정도에 비례하여 위협받고 파괴될 국면에 이르게 되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