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노래의 《진멋》을 익힌 계락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명창치고 그런 평가를 받게 되기까지 피타는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과정에 명창에 대한 일정한 평가기준도 생겨나게 되였다.

지난날 민요가수들의 가창기량에 대한 평가방법에 4계단채점법이라는것이 있었다. 제일 낮은 기량에 대한 평가인 설멋으로부터 올라가면서 겉멋, 속멋, 진멋이 있는데 이것이 4계단채점법의 요점이다.

통속적인 어휘로 민요가수의 수준을 표현한 이 네가지 평가방법이 어떻게 나오고 또 무엇에 기준하였는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먼 옛날 평양 룡악산기슭의 그리 크지 않은 어느 마을에 진씨성을 가진 계락이라는 젊은이가 량친과 함께 살고있었다.

남다른 용모와 랑랑한 목소리를 가진 계락이를 보고 마을사람들은 키가 크고 미끈한 생김새는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았고 무던한 마음씨와 빼여 난 목소리는 꼭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명창이 되려고 꿈꾸어오던 계락에게 어느날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웃 마을 부자집 생일잔치에 룡강에서 왔다는 한 소리군이 장고와 북을 번갈아 치면서 종일 노래를 불러 온 마을의 인기를 모았는데 그것이 그의 마음을 퉁겨놓았던것이다.

소리군의 재간에 넋을 빼앗긴 계락은 그후 만사를 제쳐놓고 노래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룡강소리군이 하던것처럼 해보자고 하니 장고는 고사하고 북도 없었다. 워낙 집안살림이 궁한 처지에 그것을 마련할 길도 바이 없었다.

안타까와 모대기며 생각을 굴리던 계락은 그 룡강소리군을 만나기로 결심하였다. 조용히 어머니에게 말하고 그를 찾아간 계락은 자기의 소원과 형편을 여쭈고 제자로 받아줄것을 청원하였다. 정기 흐르는 눈과 준수한 용모, 열정적인 언행에 탄복한 소리군은 그 청원을 쾌 받아들이였다.

소리군은 계락에게 한달동안 타령 한곡을 공부시킨 다음 집으로 돌아가 자체로 노래를 익히라고 하면서 장고대신 목침 크기만한 마른 나무토막 한개를 내주었다.

계락이 스승이 준 그 나무토막을 손에 물집이 일도록 두드리며 낮에 밤을 이어 노래공부에 전념하였는데 글쎄 그것이 큰 말썽을 일으킬줄이야 …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가난한 집 자식이 타령은 무슨 타령이냐. 거기서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라고 하며 때없이 내리는 아버지의 꾸중도 꾸중이거니와 해뜨고 별지도록 그치지 않고 울리는 아직 익지 않은 생소리와 마른 나무토막 두드리는 소리에 온 동리가 소란하다는 마을사람들의 비발치듯 한 비난이 더 큰 골치거리였다.

무던한 마음씨와 목소리는 자기를 닮았다고 여겨서인지 아들의 노래가락이 싫지 않아 그 소리공부에 은근히 기대까지 가지고  왼심을 써오던 계락의 어머니는 어느날 누구도 듣지 않는데서 마음껏 큰 목소리로 노래를 익히라고 하면서 아들을 룡악산 깊은 골로 들여보냈다.

낮이 어떻게 흐르고 밤이 어떻게 지새는지 모르고 나무토막을 두드리며 얼마나 극성스레 노래를 익히였던지 한여름이 다 지나 가을도 가고 초겨울이 닥쳐올 무렵에는 그 굳은 나무토막이 그만에야 두동강이 났다.

매일 아들의 밥을 날라오던 계락의 어머니는 굳고 잘 마른 나무 한토막을 가져다 주었다. 며칠이 지나 아들을 찾아 산을 오르는 어머니의 귀에는 계락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직심스럽게 타령을 부르며 목청을 닦던 아들의 소리가 멎은 사연인즉 어머니가 가져다 준 나무토막을 두드리면 소리가 탁하고 흥이 나지 않아 자연히 끊어진다는것이였다. 그 나무토막에 소리를 이끌어내는 어떤 비결이 있겠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룡강소리군에게 보냈다.

계락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스승은 웃으며 《설멋은 들었군.》라고 말하고는 한달동안 새로운 타령을 한곡 배워준 다음 집에 가서 익혀오라고 하면서 처음의것과 꼭 같은 나무토막 한개를 또 내주었다. 그러면서 그 나무토막은 보통 나무가 아니라 오동나무이다, 북보다는 못하지만 오동나무라야 울림이 좋아 흥을 돋굴수 있다고 그 리치를 알려주면서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오동나무로 악기를 만들어 리용하여온데 대하여 말해주었다.

계락은 다시 룡악산으로 들어가 새로 배운 타령을 익히느라고 날이 가고 해가 지는줄 몰랐다.

또 한해가 지나 스승을 찾아간 계락이 두동강 난 나무토막을 내놓자 그는 《겉멋은 들었군.》라고 말하며 크게 웃는것이였다.

이번에는 스승이 수심가 한곡을 배워주고 나무토막 한개를 또 주었다.

계락이 사계절이 지나도록 박달나무채까지 갈아대면서 얼마나 장단을 치고 훈련하였던지 그 세번째 나무토막도 또 두동강이 났다.

계락이가 다시 찾아와 부르는 수심가소리를 듣고 난 스승은 《속멋은 들었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룡강기나리》와 《강서메나리》를 배워주었. 물론 그가 떠날 때 나무토막을 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해 두동강 난 네번째 오동나무토막을 안고 나타난 계락을 본 스승은 《진멋이 들었군.》라고 매우 만족해하면서 이제는 더 배워줄것이 없다고 하였다.

계락이 룡악산을 내린것은 그때부터도 여러해가 지난 후였다.

여러해동안 모진 악조건의 무인지경에서 도를 닦은 진계락의 노래소리는 듣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그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올 때면 동리의 남녀로소는 물론 근간 마을사람들까지 다 모여들군 하였다.

그때마다 계락의 동네사람들은 자기 마을이 낳은 소리군을 자랑스레 여기여 《계락이요., 혹은 《계락 한마디 넘기겠소.》라고 소개하군 하였는데 그것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계락》은 《가락》으로, 《계락 한마디 넘기겠소.》는 《가락 한마디 넘기겠소.》로 변하였다고 한다.

계락의 스승인 룡강소리군이 한 평가에서 《설멋》, 《겉멋》, 《속멋》이라는 표현에는 《아직은 부족점이 있다.》는 뜻이 담겨져있다. 가령 《설멋(혹은 겉멋, 속멋)은 있군.》에서 토 《은》은 무엇은 있는데 무엇은 없다는것을 암시해주는것이다.

목침두께만한 오동나무토막 4개를 가느다란 나무채로 두동강이 날  때까지 장단을 치며 소리를 닦아 얻은 《설멋》, 《겉멋》, 《속멋》, 《진멋》, 이것이 옛날 민요가수들의 기량평가에 써오던 4계단채점법이였다.

여기서 설멋이란 아직 민요창법이 설었다는 뜻이고 겉멋이란 창법기교는 원만하지 못하지만 노래를 기본적으로 련결시켜 부를줄 안다는 뜻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속멋은 창법기교들이 기본적으로 원만하다는 뜻으로 볼수 있고 진멋이 들었다는것은 제일 높은 평가로서 창법기교는 물론 모든 연주수법을 개성적으로 적용하여 훌륭한 소리가락을 이루어낼줄 아는 명창급에 이르렀다는 뜻이라고 볼수 있겠다.

1

《담도 좋고 소리도 좋구나》

 

20세기 초엽 황해북도 수안에 박만규라고 하는 민간가수가 있었다.

어느날 그에게 봉산의 장진사라는 부자가 환갑잔치를 차리며 각지의 소리군들을 청해들인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에라, 내 아무리 시골가수라 해도 서울같은 도회지라면 몰라라 황해도땅에서야 쭈물거릴거 있나.)

이렇게 생각한 박만규는 주저없이 자그마한 괴나리보짐을 둘러메고 장진사가 산다는 봉산군 노루메를 향해 길을 떠났다.

이틀길을 걸어 그곳에 도착하고보니 소리판을 벌린지 3일째 되는 마지막날이였다. 그런데 이날의 무대는 이미 서울에서 초청하여온 리동백, 김창룡, 류추성 등의 명창들에게 제공되여있었고 마감장식은 국창으로 이름이 난 리동백의 《박타령》으로 판을 막는다는것이였다.

소리판은 벌써 서울에서 온 판소리명창들이 타고 앉아 한창 분위기를 올리는지라 누구하나 먼길을 달려온 수안의 시골가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이러다간 신발창 닳아빠진 값도 못하겠는걸.)

바싹 조바심이 동한 박만규는 소리판을 주관하는 소개군의 옆구리를 찔러대며 한마디 부르게 해달라고 여러번 청해보았으나 그는 소리판절정의 흥을 깨지 말라는듯 눈만 찔 흘기군 하였다.

그럴즈음에 마감판인 리동백의 《박타령》이 관중의 절찬속에 끝나가고있었다. 때를 놓칠세라 박만규는 소리판에 훌쩍 뛰여들었다.

《수안서 온 서도명창 박만규올시다. 이왕지사 장진사어른의 청을 듣고 먼길을 왔으니 소리한마디 해보고 갑시다요.

주접을 모르는 박만규가 소개군을 제쳐놓고 제잡담 자기 소개에 인사까지 개여올리며 나서는 통에 장내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으하하하…》

《거문고 인놈 춤추니까 칼쓴 놈도 춤춘다더니 저 량반 소리할줄이나 알면서 나서는가.

《글쎄, 둥둥하면 배뱅이굿판인가 하는 모양이지. 제가 무슨 박수무당이나 된다고, 하하하…》

오고가는 말마다 국창들판에 뛰여든 시골가수를 어처구니없어하는 소리들뿐이였다.

《웃음통들을 아끼고들 계시라요. 어험, 그럼 주인어른이 승낙하신줄로 알고 나도 <박타령>을 부르겠소이다.

박만규는 능청스레 곡목소개까지 하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시리렁 슬근 톱질이로구나 어유화 당겨주소

치마끈을 꽉 졸라매고 시리렁 슬근 당기여라

 

박만규가 부르는 《박타령》은 시작부터 남도의 《박타령》과 달랐다. 그는 방금 리동백이가 불렀던 판소리 《흥보가》중의 《박타령》을 본래의 남도판소리풍으로가 아니라 서도민요조로 구수하게 엮어나가는것이였다.

남도판소리군들의 기본창법으로 된 탁성으로 불리우던 《박타령》을 유순하고 류창한 서도민요창법으로 재치있게 엮어나가는 그의 노래는 독특한 맛과 멋으로 하여 단번에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더우기 흥부내외가 터뜨린 박통에서 쏟아지는 비단필을 두손에 들고 얼씨구 절씨구 춤추며 노래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흥취나는 발림까지 곁들여대는 통에 청중들도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며 돌아갔다.

서울에서 온 명창들도 박만규의 소리가 새롭고 기교도 능란한데 아예 탄복하고말았다.

주인인 장진사는 하도 능청스럽고 재간 좋은 박만규를 보며 《그 량반 담도 좋고 소리도 좋구나.》하고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이날의 소리판은 박만규의 서도식 《박타령》으로 하여 더욱 흥겨운 절정을 이룬 속에 판을 막았다.

2

《아까운 모가 다 밟혔구나》

 

가수를 양성지도하는데서 신재효(18121884. 판소리대본에 대한 개작 및 윤색정리와 창작, 가수후비양성 등 적극적인 예술활동으로 판소리양식의 발전에 기여한 예술가)가 내세운 요구성은 매우 엄격하고 높았다. 그는 특히 연기동작 하나를 놓고서도 가수가 생활의 진실을 떠나 멋을 부리거나 내용과 모순되게 형상하는데 대해서는 추호도 양보하지 않았다.

어느날 한 녀가수가 신재효의 지도밑에 노래련습을 하고있었다.

제자는 《잦은 농부가》를 고운 목소리에 담아 열정적으로 불렀다.

 

어화 어화여루 상사듸여

여보소 농부들 말듣소 어화 농부들 말들어

 

건드러지고 원색적인 색채가 짙은 남도고유의 선률가락이 가수의 풍만한 성음을 통하여 굴곡있게 오르내리며 구성지게 흘러나왔다.

노래소리와 함께 일망무제한 논판에 푸른 주단이 펼쳐지고 산들바람에 흐느적이는 새파란 벼모들이며 정성담아 모를 심어가는 농민들의 흥겨운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듯 하였다.

신재효는 맞은켠에 단정히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녀가수의 소리를 음미하며 손바닥으로 무릎장단을 쳐주고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하여도 목소리는 좋으나 창법원리를 터득하지 못하여 무척 애를 먹었던 제자였다. 고생끝에 락이 온다더니 노래부르는 법을 리치를 따져 가르치고 애쓴 보람이 있어 이젠 제법 소리도 구성지게 뽑아내고 형상도 재치있게 꾸며나가게 된 제자를 두고 신재효는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는 흡족한 미소가 어린 얼굴을 장단가락에 맞춰 좌우로 흔들며 소리의 흥을 돋구어주었다.

 

                              

다 되였네 다 되여

서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네

제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로다

어화 어화여루 상사듸여

 

제자도 스승의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흥이 나는듯싶었다. 그는 가벼운 어깨춤에 맞춰 점차 앞으로 몇걸음 살짝살짝 옮겨걸으며 건들어지게 소리를 뽑아냈다.

이때 무릎장단을 치던 스승의 두손이 뚝 멎어버렸다. 부릅뜬 신재효의 두눈에는 방금전까지 어려있던 미소가 말끔히 가셔지고 엄한 질책이 비껴있었다.

제자는 앞으로 옮겨딛던 걸음과 노래를 멈추고 의아쩍은 눈으로 스승을 쳐다보았다. 꾸중을 기다리며 속으로 짚어보았으나 무엇이 잘못되였는지 가늠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승의 질책어린 눈길이 자기의 발밑을 보고있는것이 아닌가. 제자는 황급히 제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치마자락밑으로 외씨같은 버선의 앞코가 약간 나와있을뿐이였다.

(무슨 까닭일가?)

제자는 긴장과 의문이 잔뜩 실린 눈으로 스승과 제발을 번갈아보며 어리둥절해 서있었다.

이윽하여 스승의 입에서는 《아까운 모가 다 밟혔구나.》하는 탄식의 소리가 새여나왔다.

순간 제자는 얼굴이 확 붉어지며 몸둘바를 몰랐다.

모내는 노래를 부르면서 발을 살짝살짝 앞으로 옮겨짚은것이 결국 꽂아놓은 모를 짓밟아놓는것으로 되였던것이다.

제자를 엄하게 바라보던 신재효가 계속하여 말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발림은 실지 생활에서처럼 되여야 하네. 헌데 농부들의 땀이 스며있는 모를 짓밟으면서 <농부가>를 부른들 어찌 <농부가>의 진멋을 낼수 있으며 곡식을 가꾸는 농군들의 생활과 심정을 옳게 노래한다고 할수 있겠나. 농군들이 보면 크게 실망할거네.

제자의 가슴속에는 부끄러움과 함께 잘못을 제때에 바로잡아준 스승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차올랐다.

제자는 스승에게 고개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는 마음을 다잡고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는 구성진 노래가락에 맞추어 흥겨운 어깨춤을 감칠맛이 나게 곁들어가며 발걸음을 옆으로 움직여갔다.

날아갈듯 말듯 한 가벼운 발림으로 노래의 내용에 알맞는 연기형상을 찾아 익혀가는 제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신재효의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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