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도기사
 

력사적인 통일음악축전 

 

기대와 경탄

 

1990 12, 평양민족음악단을 맞이한 서울은 크나큰 격동으로 설레였으며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참으로 컸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찬란히 개화만발한 공화국의 주체예술의 향취를 남먼저 감수하려는것이 그들의 열렬한 소망이였다.

당시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어떠하였는가에 대하여서는 1990 12 5일부 남조선 《중앙일보》의 기사가 잘 말해주고있다.

신문은 《입장권 매진사태… 항의소동까지》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 일반공개입장권 판매가 8일 오전 10시부터 교보문고, 대한음악사, 종로서적 등 11곳에서 판매됐다. 이날 각 예매처에는 아침 일찍부터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한정판매 입장권이 부족하자 항의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8일 오전 10 15분쯤 서울 종로 1각 교보문고 지하1층〈송년통일전통음악회〉입장권 매매창구앞에서 표를 사려고 시민 1백여명이 표가 일찍 매진된데 불만을 품고 20여분간 거친 항의소동을 벌렸다.

시민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예매한다는 교보문고측의 사전통제로 정문앞에서 기다리다가 10여분이 지나 매표소안에 도착했는데 후문 등으로 미리 들어온 시민 20여명에게 10일 공연분 20매를 판매한 교보문고측이 〈표가 매진됐다.〉고 하자 거칠게 항의했다. 교보측은 시민들이 종업원들과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리자 9일 공연분 43장을 추가로 팔았다.》라고 썼다.

신문 《중앙일보》는 이와 함께 지면 웃단에 표를 미리 팔았다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리해시키고있는 매표소직원의 사진도 냈다. 사진에는 당황해하는 매표소 직원과 웅성거리는 서울시민들의 불만에 찬 얼굴들이 찍혀져있었다.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에 대하여 서울시민들이 얼마나 큰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있었는가에 대하여서는 판문점에서 평양민족음악단을 마중한 남측 성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었다.

서울로 향하는 자동차안에서 《동아일보》사의 한 문화관계자는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 참가하는 평양민족음악단 공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대단히 큽니다. 당국에서는 관람표의 70%를 초대장으로 발급하고 30%만을 일반판매에 돌렸습니다. 일반판매는 1천매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시민들로부터 오는 전화가 굉장히 많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밖에도 남측의 예술인, 기자들을 비롯한 여러 계층들이 북에서 가져온 공연종목들이 다 민족프로로 되여있어 좋다, 소문난 평양민족음악단 공연을 한번 내 눈으로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공연을 보지 못해도 첫 공연부터 굉장한 환영을 받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고 하면서 커다란 흥분과 기대를 표시하였다.

특히 우리 공화국의 주체음악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것으로 하여 평양민족음악단 공연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절정을 이루었다.

우리 예술인들이 남조선의 어느 한 예술기관을 참관할 때 《세계일보》사의 한 기자는 《제가 학창시절에 북에서는 김정일선생님께서 예술을 지도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북의 예술은 세계정상에 올라섰다고들 하였습니다. …평양민족음악단이 공연을 하면 큰 파문을 일으킬것이라는것을 확신할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고 다른 한 사진기자는 《북의 예술은 김정일지도자님께서 이끌어주셔서 온 세상에 황금의 예술로 빛을 뿌리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이제 합동공연을 하게 되면 남쪽의 예술은 졸작이 될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당국의 처사로 이번에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을 실황중계는 하지 못하고 록화중계만 하게 되였어도 어쨌든 이남 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게 될것이라고 말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기대와 관심은 더욱 커갔다.

8일 저녁 남측 《문화부장관》이 차린 만찬회석상에서 《민자당》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로 옮긴 예술영화 《피바다》와 《꽃파는 처녀》는 이미 오래전에 보았고 친애하는 김정일선생님께서 1970년대초에 창조하신 5대혁명가극이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였다는것도 잘 알고있으며 이북의 예술이 《황금의 예술》, 《세계예술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정에 오른 예술》이라고 높이 평가받고있는데 대하여서도 잘 안다고 말하였다.

민족전통음악도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극진한 배려속에 개화발전하고있다는 우리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그는 《민족전통음악도 역시 문학예술을 지도하여주신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 국민의 감정과 시대의 요구에 담아 발전시키시였다고 하니 그것이 참다운 예술, 진짜 국민의 예술로 되지 않을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을 감추지 못하였다.

만찬회장 여기저기에서는 평양에서 진행된 범민족통일음악회때 이미 알려진 북의 민족음악의 눈부신 발전에 비한 남의 전통음악의 제자리걸음과 쇠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 북의 개량악기에 대한 부러움, 독특한 북의 발성법에 대한 찬사 그리고 민족음악발전에 무관심한 당국자들에 대한 저주의 목소리가 도간도간 울려나왔다.

이 모든것은 문학예술의 영재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품속에서 자란 북의 예술인들에 대한 존중과 끝없는 부러움의 표시였다.

당국자들이건, 문화예술인들이건, 민간인들이건 할것없이 북녘에서 비쳐오는 따뜻한 해빛, 위대한 장군님의 품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우리 공화국의 참신한 주체예술을 얼마나 향유하고싶어하는가 하는것을 가슴깊이 절감한 우리 예술인들은 전통적인 민족음악을 인민의 지향과 요구, 현대적미감에 맞게 찬란히 개화발전시키시였으며 음악을 통하여 민족화합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하여 크나큰 로고를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가슴뜨겁게 우러렀다.

처음 우리 일군들과 창작가들은 서울에서 진행할 공연의 종목구성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생각을 깊이 하고 토론도 많이 하였다. 일부 음악전문가들은 옛 민요보다도 새로운 노래들로 공연종목을 구성하여야 남조선사람들이 새로운것으로 받아들일수 있다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인민들속에 잘 알려지고 인민들이 널리 불러온 민요들로 공연종목을 짜도록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은 첫 시작부터 서울시민들속에서 그처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였던것이다.

평양민족음악단의 민족음악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어떤것인가에 대하여서는 남조선의 한 녀류작가가 《이 겨울 청아한 매화향기여…》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 1990 12 8일부에 낸 글 한토막을 소개하는것이 더 실감이 있을것이다.

《…〈평북녕변가〉, 〈배따라기〉, 〈영천아리랑〉, 〈신고산타령〉, 〈도라지〉, 〈자진난봉가〉, 〈옹헤야〉, 〈박연폭포〉… 등 북에서 온 음악예술인들이 서울에서 부르게 된 이 노래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낯이 익어서 차라리 어떤 슬픔마저 인다. 고달픈 나그네 되여 낯설은 땅을 헤매이다 느닷없이 마주친 가족의 얼굴을 보는듯 가슴 막힌다.

그렇다, 이 겨울, 여기 서울에서 북의 음악인들에 의해 울려퍼질 이 노래들은 이미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귀로 들을수 있는 노래 그 이상의 어떤것, 우리의 심정 저 깊은 곳 그리고 우리의 뿌리 저 아득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 우리 겨레의 근원을 두드리고 일깨워주는 강렬한 몸짓 그자체이다.

평양민족음악단 여러분들이여!

모든 대리석마다 이미 그안에 갖가지 조각상을 품고있듯 우리들의 마음속 거문고에도 이미 당신들이 부를 그 노래들은 청아하게 담겨져있다. 그리고 모든 조각상들이 그들을 석괴속에서 꺼내줄 조각가를 기다리듯 이 겨울 한해의 마지막에 서서 우리들 마음속 거문고에 담긴 그 노래들 역시 당신들의 손을 기다리며 환희를 예감한다.

아아, 이 겨울 한가닥 청아한 매화향기로 우리에게 오시는 당신들이여…

당신들이 뿌리는 노래의 씨앗이 언제 우리속에서 움트고 자라서 우리모두가 너른 곳에서 목놓아 부르게 될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지금 눈감고 당신들의 노래만을 듣고있는것이 아니다. 눈 크게 뜨고 저 엄혹한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가는 당신들의 체온에 의해 녹아내리고있는 분단의 얼음장벽을 보고있다.

그렇다, 분단은 이렇게 하여 우리속에서 이내 과거가 된다.

평양민족음악단은 이렇게 서울시민들의 가슴속에 《통일지진》을 일으키며 공연전부터 그들을 끝없이 격동시키였다.

평양민족음악단의 첫날공연은 그것을 더욱 확증해주었다.

평양민족음악단은 첫 막을 공연의 2부에서 올렸다.

공연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웅성거리던 객석은 숨죽은듯 고요해졌다.

무대에 꽃분홍치마에 흰저고리를 산뜻이 받쳐 입은 평양민족음악단 녀배우의 출연과 함께 눈부신 각광이 비쳐지자 객석에서는 일제히 《야!…》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3 000여명에 가까운 관람자들로 차고넘친 극장객석에는 남조선당국의 《부총리》, 《통일원장관》, 《문화부장관》, 《법무부장관》 등 장, 차관들과 평민당총재(당시) 김대중을 비롯한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 《민자당》최고위원, 여야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서울시민들이 앉아있었다.

민요가수인 우리 녀배우는 그윽한 미소가 어린 눈길로 객석을 향하여 평양민족음악단이 서울시민들에게 보내는 인사의 말을 시작하였다.

《서울시민여러분!

이렇게 꿈과 같이 만나고보니 북받치는 기쁨과 감개 이를데 없습니다.

우리 평양민족음악단 배우들은 우리들이 떠나오는 길가에 달려나와 눈물을 머금고 당부하던 평양시민들과 북녘형제들의 절절한 통일소망을 여러분들에게 전하면서 그립고 보고싶던 서울시민들과 남녘동포들에게 뜨거운 혈육의 정을 담아 진심으로 되는 동포애적인사를 드립니다.

박수!…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올랐다.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을 보면서 박수를 크게 치지 않도록 사전에 침을 놓은 남조선당국자들이였다. 그러나 우리 음악단의 첫 인사말에 눈굽을 적시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크게 박수를 치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마디마디 혈육의 정, 동포애의 정이 흐르고 민족의 통일념원이 맥박치는 길지 않은 이 인사말에도 사실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사실 일군들은 공연의 첫 인사말을 공식적인것으로 례하면 우리 공화국의 예술의 위력이라든가, 평양민족음악단의 대외예술활동경력같은것을 내용으로 하여 만들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울에 나가서 하게 될 평양민족음악단의 첫 공연 인사말을 민족적감정, 통일감정, 분렬의 비극같은 말로 감상적인것으로 해야 감동을 줄수 있다는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일군들은 남조선의 고위급당국자들까지도 눈시울을 적시며 박수를 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위대한 장군님의 예지로운 선견지명과 남녘겨레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하여 다시금 가슴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녀가수의 인사말은 계속되였다.

그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1990년은 삼천리를 휩쓰는 통일열풍이 7천만겨레의 가슴가슴을 세차게 흔들어준 뜻깊은 한해였음을 상기시킨 다음 《우리 북녘예술인들의 노래는 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평양민족음악단은 온 겨레가 함께 울고 웃으며 환호할 통일의 그날을 그려보면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어 서로 다른 색갈의 민족옷을 입은 5명의 민요가수들이 무대에 나와 우리 민족의 노래인 민요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관중들의 심장을 완전히 틀어잡은 공연은 한종목에만도 평균 7~8분동안이나 이어지는 박수갈채속에 파묻히군 하였다.

무대에 녀성민요 3중창 《신고산타령》이 올랐을 때였다.

이번에는 녀배우들이 모두 꼭같은 감색치마에 흰저고리와 남색조끼를 입고나섰다.

 

신고산이 우르릉

그 무슨 소린가 하였더니

 

락천적인 양상의 이 노래는 소해금, 대해금, 양금, 가야금, 단소, 저대 등이 어울린 민족기악합주에 맞추어 흥취나게 불리워졌다.

2절과 3절사이에 간주가 울릴 때 3명의 젊은 녀가수들이 기악에 맞추어 흥겨운 춤률동을 펼치자 객석에서는 또다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신고산타령》이 끝났을 때 객석에서는 저 세명의 가수들이 쌍둥이가 아닌가, 어쩌면 생김새도 키도 목소리도 동작까지도 저렇게 신통히 같을수 있는가 라고 주고받는 찬사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려나왔다.

민요3중창이 끝나자 관중들은 요란한 박수속에 련속 재청을 요구하였다.

이어 무대에 오른 녀성민요독창 《평북녕변가》와 《바다의 노래》가 끝났을 때에도 관중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와 《재청!》, 《재청!》하는 환호로 극장안은 부글부글 끓었다.

녀성민요가수가 재청에 호응하여 민요 《해당화》를 부르자 흥분으로 하여 격동된  관중들은 공연도중이라는것도 잊은듯 그 목소리는 해당화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면서 환성을 올렸고 노래가 끝나자 무대에까지 뛰여올라와 꽃다발을 주면서 가수를 붙안고 볼을 비비였으며 그가 퇴장하자 다시 무대로 불러내려고 야단이였다. 관중들은 감시의 눈초리가 여기저기에 있다는것도 잊은듯싶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리성을 잃은듯 하였다.

가야금독주와 병창 《옹헤야》와 서도명창으로 널리 알려진 고령의 남성가수의 독창 《배따라기》와 《산천가》도 대인기를 끌었으며 옥류금과 단소독주 등 모든 종목들이 대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남성저음독창가수가 《통일의 길》과 《통일아 통일아》를 은은한 목소리로 부르자 관중들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고 재청을 요구하였다. 더는 갈라져 살수 없는 민족의 숙원을 담아 가수가 《통일, 통일, 통일아 어서 오려마》라고 격정을 터뜨리자 수많은 관중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목청껏 환호하였다.

새로운 종목이 시작되고 바뀔 때마다 극장이 깨여져나갈듯이 울린 우뢰같은 박수소리!

그것은 비단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성과를 축하하는 단순한 박수가 아니였다.

그것은 정녕 민족의 넋을 깊이 새겨주고 뜨거운 혈육의 정을 가슴가득 부어주신 애민애족의 화신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남녘겨레모두의 다함없는 흠모와 감사의 분출이였고 장군님을 통일의 광장에 높이 모시고 터칠 기쁨과 격정, 《통일만세!》의 우렁찬 환호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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