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좌
조선음악사개관
6. 주체음악예술발전의 새로운 국면이 열린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
[주체34(1945). 8 - 주체39(1950). 6]
박사, 부교수 남상민
1)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 음악예술발전의 사회력사적환경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20여성상의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여 주체34(1945)년 8월 15일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심으로써 우리 인민앞에는 자유로운 민주주의적발전과 민족문화재건의 밝고 넓은 길이 열려졌다.
나라는 해방되였으나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일제의 식민지통치의 후과가 남아있었으며 우리 인민은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민족분렬의 불행과 고통을 겪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북반부에서 일제의 식민지잔재를 청산하고 제반민주개혁을 비롯한 민주건설의 과업들을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우리 인민은 나라의 주인으로 되였고 우리 나라는 주체36(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과 더불어 사회주의혁명의 길로 나갈수 있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우리 인민의 혁명적열의, 애국적로력투쟁에 의하여 정치, 경제, 문화,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가 이룩되였으며 조국의 완전한 통일독립을 위한 투쟁이 힘차게 전개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음악은 민족적특성을 살리면서 혁명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음악은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에 맞고 새 조국건설에 일떠선 우리 인민의 혁명적지향에 맞아야 하며 민족적해방을 이룩하고 새 생활창조에 일떠선 우리 인민의 환희와 기쁨, 긍지와 자부심, 혁명적열정을 반영한 참말로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음악으로 되여야 합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된 민주조선에 건설하여야 할 음악예술은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밝히시고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 새 조국건설에 일떠선 우리 인민의 혁명적지향에 맞는 음악예술로, 그들을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음악예술로 발전시키는것을 음악예술발전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하여주시였으며 새 조국건설을 이끄시는 그처럼 분망하신 속에서도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
2)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 음악예술발전의 주요특징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해방된 조국에서는 음악예술건설이 조선로동당과 국가의 중요한 사업으로 진행되여 성악과 기악, 가극 등 모든 분야에서 전면적이며 균형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당과 국가의 통일적지도밑에 중앙과 지방에 각급 예술단체들이 조직운영되고 근로하는 인민들이 나라의 음악발전에서 중심적역할을 하게 되였다.
새 조선의 음악예술은 일제식민지잔재를 완전히 숙청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며 새 조국건설과 사회주의혁명의 길로 힘차게 전진하는 혁명투쟁에 이바지하는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음악예술로 발전하여 전례없는 창작, 창조성과들을 이룩하였다.
새 조선의 음악예술에는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이 전면적으로 구현되였고 해방된 조국에서 나라의 주인이 되여 건국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환희와 격동, 새 생활에 대한 랑만과 밝은 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였다.
3) 해방된 새 조선의 음악예술발전에서 이룩된 대표적인 성과
- 가요분야에서는 항일혁명가요의 빛나는 전통을 직접 계승한 참다운 인민의 노래들이 새 조선의 대표적인 음악종류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반만년 우리 민족사에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해방의 은인, 절세의 애국자, 민족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와 열화같은 칭송의 마음을 담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창작된것은 해방후 새 조선의 음악예술발전에서 이룩한 가장 특출한 성과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따라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에 힘차게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드높은 애국적열의와 혁명적이며 창조적인 지향을 반영한 《애국가》가 창작되였다.
그밖에 《승리의 5월》, 《산업건국의 노래》, 《밭갈이노래》, 《남녀평등권의 노래》를 비롯하여 제반민주개혁의 벅찬 현실을 반영한 노래들과 《바다의 노래》, 《벼가을 하러 갈 때》, 《산으로 바다로 가자》, 《새봄의 노래》 등과 같이 민주건설로 들끓는 공화국북반부의 자랑차고 격동적인 현실과 인민들의 투쟁열의와 아름답고 고상한 정서세계를 반영한 서정적인 예술가요들도 적극 창작되였다.
- 합창음악분야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이룩되였다.
해방전까지만 하여도 전문합창단체가 없이 일부 음악애호가들에 의해 소규모적으로 드문히 연주되던 합창음악은 해방후 국립합창단을 비롯한 많은 예술단체들이 조직되여 창작, 창조활동을 활발히 벌림으로써 그 새로운 발전이 믿음직하게 담보되였다.
교성곡 《압록강》, 《력사의 성산》, 《법성포배노래》, 《방아타령》 등 항일혁명전통주제의 합창곡과 민요합창곡들이 창작된것은 그 대표적성과이다.
‐ 일제의 악랄한 민족문화말살책동으로 말미암아 침체되고 그 존재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던 우리 나라 창극은 해방후 조선고전악연구소, 국립예술극장의 창설로 현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조건과 가능성을 가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흥부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박긴다리》, 《량반과 종》 등과 같은 창극작품들이 창작공연될수 있었다.
‐ 해방후 국립가극단을 비롯한 전문예술단체들이 조직되고 가극예술발전을 위한 조건이 마련됨으로써 《심청전》, 《견우직녀》, 《춘향전》, 《꽃신》, 《온달》 등 인민설화에 기초한 가극작품들과 《행복의 길》, 《양산촌》, 《눈내리는 산》, 《마을의 경사》 등 현실주제의 가극작품들도 창작보급될수 있었다.
‐ 해방후 민족기악과 양악기악은 새로운 발전의 길을 걷게 되였다.
특히 민족기악분야에서 전통적인 민족악곡유산들을 복구하고 민족악기연주가대렬을 늘이는데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고 교향악분야에서는 새로 조직된 국립교향악단이 2관편성으로 확대되는 등 그 연주활동을 활발히 벌려나갈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였다.
- 음악예술인들이 우리 인민들을 새 생활창조에로 힘있게 고무하는 공연활동을 광범히 진행하였다.
국가적인 전문연주단체들을 중심으로 하여 극장무대에서의 공연활동, 기동적인 이동공연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였고 민족사상 처음으로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딸들로 조직된 우리 예술단이 조국의 명예를 걸고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진출하고 세계청년학생축전들에도 참가하여 새 조선의 모습과 음악예술의 우수성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 광범한 인민대중의 음악생활에서도 전변이 일어나 군중예술소조를 통한 음악활동이 생활화되고 군중예술축전도 정상적으로 조직진행되였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