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도기사
 

 

남녘땅을 뒤흔든 통일의 노래
 

주체79(1990)년 10월에 있은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이어 서울에서 진행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는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우리 세대에 이룩할 숭고한 사명감으로 심장을 불태워오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깊은 사색과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마련된 통일의 대음악축전이였다.

평양민족음악단이 서울에 나가있은 기간은 5박 6일이라는 매우 짧은 나날이였으나 우리 겨레와 세계인민들에게 준 인상은 매우 깊었다.

 

 

평양민족음악단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조국통일운동사에 하나의 사변으로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통일의 새 아침을 이끌어올 원동력은 우리의 지혜와 의지이며 힘이다.》

오래전부터 북남문화교류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 추진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여오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문화교류가 조국을 통일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며 두텁게 얼어붙은 분렬의 장벽에 구멍을 내는 통일의 돌파구로 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그 의의를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준비하기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반드시 있게 될 서울에서의 우리 예술단의 공연활동을 예견하고계셨으며 그 준비를 위한 사업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계시였다.

주체 61(1972)년 7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창작가, 예술인들에게 혁명가극창조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음악예술이 지닌 사명과 임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고 예술인들을 잘 준비시킬데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음악예술이 조국통일위업에 참답게 이바지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음악예술이 조국통일위업에 이바지하는 예술로 되자면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는 조선민요를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현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키고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판소리, 산조를 비롯한 민족고전음악을 보존하는데만 그치지 말고 필요한 작품들을 력사기록에도 넣으며 조국통일과 관련한 연극도 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문학예술의 영재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천재적인 예지와 탁월한 령도로 우리의 음악예술을 민족적정서가 짙고 현대적미감에 맞으면서도 세계적추세에 앞서나가는 음악예술로 훌륭히 가꾸어주시였다.

하여 우리 음악예술인들은 어느때건 남조선에 나가 공연할수 있게 만단의 준비를 갖출수 있었고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이 서울에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를 열자고 하면서 조선음악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앞으로 편지를 보내오자 선뜻 응할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울에 파견할 예술단의 명칭을 음악회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평양민족음악단》으로 정해주시고 민요와 민족기악곡을 기본으로 공연종목을 편성하며 그에 따라 민족성악과 민족기악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인들로 음악단을 구성하도록 하시였다.

또한 서울에 보낼 음악단 총인원수를 처음에 50명선에서 협의하되 만일 남측이 인원을 줄일것을 고집하면 조절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우리 음악단이 서울로 가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우리 평양민족음악단이 민간급연주단의 발기에 의하여 서울로 들어가는것만큼 남조선당국자들이 반드시 인원수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걸고 늘어질수 있다는것을 예견하시고 내놓으신 명철한 방안이였다.

당시 남조선당국자들은 북남대화에서도 《창구일원화》만을 고집하면서 민간급교류를 한사코 막아나섰다.

남측은 내외의 강력한 항의와 민주력량의 압력에 할수 없이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이 초청한 우리 예술단을 받아들이기로 공개했으나 속심은 어떻게 하나 평양민족음악단의 서울공연을 파탄시키기 위한 구실을 찾기에 골몰하고있었다.

그해 11월말 북남음악실무자들의 접촉이 시작되자 남조선당국자들은 50명의 인원은 받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였다.

남측당국자들의 이 억지스러운 처사에 북남음악가들은 물론 해외의 모든 동포음악가들도 분개하지 않을수 없었다.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는 어디까지나 북과 남 음악예술인들의 합동공연인것만큼 여기에 참가하는 북과 남 예술인들의 인원수가 비례상 맞아야 한다는것은 그 누구에게나 의심할바 없는 리치였다. 남측당국자들은 이 합당한 리치를 부정함으로써 북측의 신경을 자극하고 서울로 향하는 평양민족음악단의 걸음을 막아보려고 꾀하였던것이다.

내외의 모든 사람들은 북남음악교류문제가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는 한편 음악회가 잘 성사될것 같지 않다는 강한 의혹을 표시하면서 인위적으로 북남음악교류를 파탄시키려고 꾀하는 남측당국자들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였다.

북측 실무대표단은 이미 있을수 있는 이러한 정황을 예견하였으므로 사리를 따져가며 남측당국자들의 부당한 처사를 세상에 공개하여 수세에 몰아넣으면서도 그들에게 최대한의 양보와 아량을 보이였다.

내외인사들은 우리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회담을 성사시킨것은 우리의 도덕적인 승리였고 남측당국자들을 피동에 몰아넣은 적극적인 조치였으며 축소된 33명의 인원을 가지고도 능히 남녘땅을 들었다놓을수 있다는 자신심, 주체예술의 위력에 대한 든든한 배심에서부터 나온 주동적인 행동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울공연의 길을 열어주시는 한편 평양민족음악단 성원들의 예술기량을 높이고 정치사상적준비를 튼튼히 하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평양민족음악단을 단순히 노래를 부르고 악기만 연주하는 연주단으로서가 아니라 북남대화의 길을 더 넓히고 조국통일을 앞당기는데 이바지하는 사상전선의 전초병으로서 그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도록 하시였다.

또한 생활상 필요한 모든것을 깊이 헤아려보시고 최상급에서 보장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예술인들이 입고갈 옷과 리용할 소지품들을 최상급으로 마련해주시였고 남조선예술인들에게 줄 도자기, 주류, 당과류와 청량음료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꾸려주시였으며 서울로 떠나는 우리 예술인들을 뜨겁게 고무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주체79(1990)년 12월 7일 아침,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서울로 나가는 평양민족음악단을 환송하는 모임이 평양대극장 앞광장에서 진행되였다.

시내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공화국기발과 꽃다발을 들고 《조국통일》, 《조선은 하나다》라는 구호를 웨치고 출근길을 다그치던 수도시민들도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합세한 환송장소는 삽시에 통일의 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졌다.

먼 나라도 아닌 조국땅 남반부 서울에, 그것도 잠간 녀오게 될 음악단일행을 위하여 이처럼 의의깊은 환송행사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그 영상이 가슴뜨겁게 안겨오고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바라는 시민들의 절절한 념원에 예술인들모두는 눈시울을 적시였다.

사상정신적풍모로부터 의상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구석도 빠진데 없이 그쯘히 갖추어 내세워주시고도 무엇인가 못다주신듯 서울로 떠나는 평양민족음악단의 앞길을 꽃보라를 뿌려 축복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한 그 사랑!

그것은 정녕 평양에 이어 서울에서 진행되는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의 성과를 바라는 어머니의 정다운 눈빛이였고 따사로운 손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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