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좌
조선음악사개관
5. 반일애국의 진보적음악이 창작된 민족수난기
(1905-1945)
박사, 부교수 남상민
1) 민족수난기의 사회력사
일제의 식민지통치(1905-1945)로 망국노의 운명에 처한 우리 인민은 일찌기 류례없는 민족수난의 시기를 겪게 되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항거가 두려워 중세기적인 《무단통치》를 실시하였다.
우리 인민은 조선봉건왕조의 마지막왕인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계기로 주체 8(1919)년 3월 1일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전인민적봉기를 일으키고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일제가 3. 1인민봉기후 《무단통치》로부터 기만적인 《문화통치》로 탈바꿈하였으나 조선의 반일독립투쟁에 대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한 그 투쟁에서의 실패는 우리 인민에게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남기였다.
일제는 조선을 발판으로 하여 아시아전체를 먹어보려고 1930-1940년대 전반기 침략전쟁을 점차 확대하면서 조선인민에 대한 중세기적인 억압과 탄압, 착취와 략탈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으며 조선민족자체를 없애고 동화시키기 위한 조선민족문화말살책동에 광분하였다.
망국의 비운이 드리운 우리 나라에 민족의 구심력, 운명개척의 탁월한 령도자가 없은것으로 하여 반일애국투쟁은 전민족적범위에서 조직화되지 못하였으나 열렬한 애국심을 지닌 진보적문예인들은 음악예술을 통한 반일애국의 계몽운동을 적극 벌려나갔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민족수난기의 진보적음악은 일제식민지통치에 시달리는 우리 인민들의 나라잃은 설음과 울분을 담아 애국애족의 정신, 조국해방에 대한 신심을 북돋아주는 계몽적기능을 가지고 비판적사실주의음악으로 발생발전한 음악이다. 그 바탕에는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끓어오르던 반일애국의 사상이 놓여있었다.
민족수난의 시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주체15(1926)년 10월 17일 주체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하는 공산주의적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였으며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시여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조국해방의 희망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주석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고무되여 이 시기 진보적문예인들의 활동이 더욱 적극화되고 진보적인 음악창조성과가 훨씬 늘어나게 되였으며 그들이 음악을 통하여 진행한 반일애국계몽활동은 인민들이 민족의 넋을 안고 살아가도록 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위대한 주석께서 피어린 항일혈전을 벌리시여 우리 민족은 주체34(1945)년 8월 15일 조국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되였다.
그러나 자기들의 리익만을 내세운 렬강들에 의하여 우리 민족은 북과 남으로 분렬되였다.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통치는 제2차 세계대전후 《전후처리》라는 구실로 강토를 분렬시키고 우리 민족에게 수난을 지속시킨 화근으로 되였다.
2) 민족수난기 진보적음악발전의 주요특징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일반적으로 음악발전의 중요한 계기점은 민족적 및 계급적모순이 첨예화되고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이 앙양되는 시기, 혁명과 건설에서 획기적인 사변으로 충만된 시기, 충격적인 사회력사적변혁이 일어나는 시기와 관련된다.》
민족수난기의 진보적음악은 일제가 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민족을 동화시키기 위하여 책동하면서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노래의 창작과 가창, 보급에 대한 악착한 탄압과 저들의 퇴페음악류포, 조선말사용금지 등 민족문화말살책동에 광분하는 속에서 국내를 중심으로 전문문예인들에 의하여 창조되였다.
민족수난기의 진보적음악은 망국의 비운속에 민족음악발전에 대한 뜻을 품고 새로 자라난 진보적음악가들이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에 항거하여 계몽기가요창작보급과 예술공연, 음악평론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예술활동을 벌리는 과정에 발생발전하게 되였다.
이 시기에는 기악음악보다 가요창작과 노래들을 통한 성악연주활동이 위주로 되였고 1920년대초부터 동요, 예술가요의 창작이 적극화되고 1920년대말경부터는 신민요와 대중가요작품창작이 병행적으로 적극화되여 우리 나라 가요예술의 종류와 음악형식들을 다채롭게 하였다.
·소조식이 도입되고 가요에서는 2/4, 3/4, 4/4박자가, 신민요에서는 6/8, 9/8박자가 위주로 되였다.
·가요들이 절가형식으로 창작되였고 일부 신민요들이 후렴구를 가지였다.
·가요예술이 민족의 비운속에 창조된것으로 하여 애조적인 양상이 지배적인것으로 되였다.
3) 민족수난기 음악발전의 대표적인 성과
‐민족수난기의 음악발전에서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계몽기가요들의 창조이다.
계몽기가요는 그 음악형상적내용과 형식으로부터 예술가요, 동요, 신민요, 대중가요로 구분한다.
예술가요의 대표작: 《봉선화》(1920년 김형준 작사, 홍란파 작곡), 《동무생각(사우)》(1920년대말 리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작별》(1920년대말 김경 작사, 안기영 작곡)
동요의 대표작: 《반달(반월가)》(1924년 윤극영 작사, 작곡), 《고향의 봄》(1920년대 말엽 리원수 작사, 홍란파 작곡), 《고향하늘》(윤복진 작사, 박태준 작곡), 《그리운 강남》(1927년 김석송 작사, 안기영 작곡)
신민요의 대표작: 《노들강변》(1930년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조선팔경가》(1935년경 리응호 작사, 형석기 작곡), 《능수버들》(1935년경 추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대중가요의 대표작: 《황성옛터》(1927년 리응호 작사, 전수린 작곡), 《눈물젖은 두만강》(1935년경 한명천 작사, 리만수 작곡), 《진주라 천리길》 (1930년대 중엽 조령출 작사, 리면상 작곡)
‐음악가들이 자기들의 창조단체를 조직하고 창극, 가극을 공연한것도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수 있다.
창극을 활성화하기 위한 예술단체인 《조선성악연구회》(1933년 3월)가 조직되여 창극 《춘향전》, 《흥부전》, 《배비장전》, 《옥루몽》, 《추풍감별곡》 등 일련의 작품들을 창작공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30년대 후반기부터 가극창작이 시작되여 가극 《견우직녀》(1940년 안기영 작곡), 《콩쥐팥쥐》(1941년 안기영 작곡), 《춘향전》(1942년 리면상 작곡) 등 일련의 작품들이 창조되였다.
‐일제의 야만적인 조선민족문화말살책동속에서도 진보적인 음악가들은 우리 민족의 음악유산을 고수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리였고 소극적으로나마 프로레타리아문학예술활동, 음악예술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