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령전에 드린 《도이췰란드진혼곡》
브람스는 1860년대에 들어와 더욱더 불타는 열정을 안고 훌륭한 작품들을 련이어 발표하여 도이췰란드음악계에서 자기의 지위를 확고히 하게 되였다.
이 시기 그는 윈합창단의 악장으로도 선출되였다. 하지만 그는 창작에 몰두할 시간적여유를 가질수 없게 되자 악장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작곡에만 전심할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브람스는 누이 엘리제로부터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게 되였으며 만사를 제쳐놓고 부랴부랴 고향으로 달려갔다.
브람스가 방안에 들어섰을 때 엘리제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있는 어머니의 침상곁에 앉아 울먹거렸고 아버지는 시름이 가득 실린 눈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다.
《어머니, 요한네스가 왔습니다.》
브람스는 어머니의 손목을 부여잡고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희미한 의식속에서도 아들의 목소리를 가려들은 어머니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요한네스, 너 용케도 왔구나, 바쁠텐데… 널 보지 못하고 죽는줄 알았는데…》
《어머니, 아버지, 이 불효막심한 자식을 욕많이 해주십시오. 제 일만 일이라면서 가정에 무관심한 이 자식을… 이렇게 어머니가 중태에 빠진걸 알았더라면 만사를 불구하고 왔을겁니다. 저의 평생의 소원은 가난에 쪼들려 고생만 해온 아버지, 어머니가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도록 해드리고싶은것이였습니다.》
《고맙다, 얘야, 네 말만 들어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네가 보내준 돈으로 새집도 사고 걱정없이 살고있다. 너까지 이렇게 만나보았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엄격한 모습만 보이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에 비낀 그 미소가 되려 브람스에게 서글픔을 더해주는것이였다.
《아버지, 의사는 뭐라고 합니까?》
《심장이 약해서 그렇다는구나. 네가 보내준 돈으로 좋은 약도 실컷 써보았다. 그리고 너까지 만나보았으니 이제는 여한이 없을게다.》
어머니와의 영원한 리별은 이제 브람스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현실적인것으로 되였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이렇게 만나볼수 있는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였다.
브람스는 운명직전에 이른 어머니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주문을 외우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머니, 저는 사람들로부터 도이췰란드에서 제일가는 음악가라는 말을 듣기보다는 도이췰란드에서 제일가는 효자라는 말을 듣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도 썼고 청춘남녀들의 사랑에 대한 곡도 썼지만 근면하고 인자한 어머니를 노래한 곡은 단 한편도 쓴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제가 어머니의 아들, 효성이 지극한 작곡가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참말로 저는 어머니에게, 아니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게 죄를 지은 아들, 작곡가입니다. 저는 이 세상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노래를 꼭 지어 저의 죄를 씻으려고 합니다.》
《요한네스, 내 아들아!》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모아 아들의 손을 꼭 그러쥔채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어머니, 어머니!》
브람스는 입가에 알릴듯말듯 미소를 지은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어머니의 시신을 흔들며 목놓아 부르고 또 불렀으나 인자한 그 눈빛을 다시는 볼수 없었다.
(아직은 더 살아계실 나이에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고생속에서 한생을 살아온 어머니가 이제는 락을 볼가한 시기에 이렇게 가신단말인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알프스산에 올라 아름답고 거창한 산악풍경을 구경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되고말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브람스는 이날 밤 어머니를 일찌기 잃은 비통함과 애석함으로 잠을 이룰수 없었다.
브람스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있는 엘리제에게 종이를 가져오게 하고는 그우에 5선을 그어놓고 일사천리로 펜을 달리였다.
《어머니, 이것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노래입니다.》
브람스는 어머니의 령전에서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가 저를 위안한것처럼
오늘은 제가 어머니의 령혼을 위안합니다
오, 슬픔의 눈물이여
…
이 가곡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도이췰란드진혼곡》(1868년)이다.
이 가곡은 다른 음악가들이 작곡한 《진혼곡》들보다 더 애절하고 가슴을 저리게 하는것으로 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추도곡으로 쓰고있다.
《도이췰란드진혼곡》으로 하여 브람스는 재능있는 작곡가로 더 유명해졌으며 도이췰란드음악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