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현대음악사에서
윤이상음악의 위치
박사 리창구
유럽현대음악사에서 윤이상의 음악은 잡다한 서유럽전위음악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자체의 깊고 억센 뿌리를 가지고 대지에 튼튼히 박혀있는 거목처럼 흔들림 없이 확고한것으로 하여 특징적이다. 윤이상음악은 유럽현대음악사에서 개성적이고도 전통적인 양식으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을뿐아니라 유럽현대음악에 활기를 주고 문제성을 던져준 특출한 역할을 하였다.
윤이상음악이 튼튼히 뿌리박고있는 대지는 바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음악적토양이며 동아시아적인 사고방식과 그에 따르는 음악미학관이다. 이것으로 하여 윤이상음악은 서유럽전위음악의 각양각색의 양식속에서 자기의 뚜렷한 색갈을 유지하여 왔을뿐아니라 시기시기 음악사회계의 음악흐름과 지향에 만족한 해답을 주었고 선도적역할을 수행하였다.
윤이상음악의 철학미학적바탕은 도이다. 윤이상음악의 철학적바탕으로 되고있는 도는 1천여년전에 종교 및 철학으로 발생하여 오랜 세월 우리 나라에서 민간종교로 전해져왔으며 그 과정에 사람들속에서 주술, 의식, 풍습 등 민간생활에 이러저러하게 반영되여 관습화되여왔다.
이 도의 사상은 윤이상음악의 민족성을 특징짓는 정신적바탕으로, 음악적사유방식의 기초로, 어법의 주요원리로 작용하였다. 그 중요한 내용은 음과 양의 대립과 통일이며 정중동,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 등으로 특징지을수 있다. 그리고 그 음악관에 있어서도 그의 음악은 우주의 무한한 공간에 흐르는 무수한 음향의 끊임없는 흐름에서 선택된 음향의 구성이라는것이다. 따라서 윤이상음악의 작품들은 시작과 끝이 없이 그 시작이 음향의 무한한 흐름의 련속이라면 그 끝은 미래에로 무한히 흘러갈 음향의 절단이라고 말할수 있다.
윤이상음악은 작곡가의 이러한 미학관과 음향관에 기초하여 독특한 기법을 창조하였으며 그것으로써 여러가지 내용을 담은 풍부한 음악의 세계를 펼쳐나가고있다.
그러면 윤이상음악의 중요한 기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주요음의 기법이다. 이 주요음이라는것은 유럽음악에서와 달리 음자체가 음악적의미를 가지고 활력있게 흐르는 우리 나라 전통음악의 음향적특성을 구현한것으로서 음악의 흐름에서 주위의 음을 묶고 복종시켜 음악적선을 전개시켜나가는 중심적인 음이다. 이것은 윤이상음악의 민족적특징을 이루는 음악전개의 원리라고 말할수 있다. 이러한 주요음들은 동시에 여러개가 울릴수 있으며 이것을 주요음향이라고 한다.
윤이상음악의 이러한 기법과 그의 음악관, 음향관으로 하여 그의 음악은 유럽현대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으며 그 발전에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있다.
유럽현대음악사에서 윤이상음악은 음악의 기법과 양식의 변화발전에서 지도적지위를 유지하여 왔으며 음악의 개념자체를 의문시할 정도로 비음악적으로 변질되여가던 유럽전위음악에서 고유한 의미에서의 음악을 구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있다.
윤이상이 유럽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하던 1950년대 후반기로 말하면 유럽현대음악계가 12음기법에 의한 음렬작곡법으로 일색화되였던 시기였다. 이 시기 유럽현대음악계에서 12음기법, 음렬작법을 쓰지 않는 작곡가는 작곡가로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이 기법이 온 유럽땅을 휩쓸고있었다.
윤이상도 유럽음악계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창작활동을 벌리자면 이 기법을 통달하고 이 기법에서 자기의 지위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다름슈타트에서 열린 여름철 현대음악강습에서 《7악기를 위한 음악》이라는 작품을 창작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은 당시 유럽음악계에서 대단히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것은 이 작품에서 12음기법이 높은 수준에서 활용되였을뿐아니라 앞으로 윤이상음악의 독특한 개성적인 양식 즉 음악에서 조선적인 색채와 음향이 농후한, 유럽음악에서는 볼수 없는 새로운 양식의 중요한 요소들이 발견되였기때문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윤이상음악은 유럽현대음악계에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였으며 자기의 독자적인 양식을 개척하고 발전시켜나가게 될 길을 열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실내관현악을 위한 《락양》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 특히 대관현악을 위한 《례악》에서 윤이상음악은 자기의 확고한 양식을 확립할수 있었다.
당시 윤이상음악의 새로운 양식이 확립되게 된것은 그럴만한 객관적인 조건이 있었는데 그 조건하에서 윤이상음악은 주요음과 주요음향에 의한 민족적인 양식으로 하여 그 개성이 매우 강했고 유럽작곡계에 충격적인 자극을 주었던것이다.
당시에는 12음기법의 성행이 최고도에 도달하여 그 종말에 이르렀으며 그 기법의 발전이 더는 나아갈 길이 없을 정도에 이르렀을뿐아니라 그 기법의 지나친 수리적인 론리성으로 인한 약점이 점차 드러나게 되였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에게서 《12개의 단순히 라렬된 음들의 특징없는 다양성》, 또는 《정신적고향을 잃은 전후 세대의 체제에로의 도피》라고까지 평가되여 그 인기가 저락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12음기법에서 벗어나 작곡법의 새로운 길을 암중모색하게 되였다. 이 시기 새로운 작곡법을 모색하여 나온 가장 대표적인 경향의 하나가 이른바 《음향작곡법》 또는 《음색작곡법》이였다.
이 시기 유럽의 일부 전위적인 작곡가들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나타났는데 례컨대 리게띠 작곡 《환영》, 《분위기》, 뻰데레쯔끼 작곡 《다형》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직립적으로 서있는 음향》이 창조되였다. 이것은 작곡가 윤이상으로 하여금 이미 이전에 숙련하였던 옛 악절법의 론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전개의 질서를 확립하게 하는데서 큰 영향을 주었다.
윤이상음악은 바로 이러한 음향작곡법, 음색작곡법의 영향을 받아 그와 류사한 음악양식을 개척해나갔다. 그러므로 유럽사람들은 윤이상의 음악양식을 음향작곡법으로 리해하고 받아들였으며 윤이상을 음향작곡법의 대표적인 작곡가의 한사람으로 평가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윤이상음악은 리게띠나 뻰데레쯔끼가 시도한 음향작곡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자적인 양식이며 그 보다 우월한 작곡법으로서 유럽현대음악에서 뛰여났으며 유럽사람들을 경탄시켰다.
윤이상음악이 유럽현대음악작곡가들 례컨대 우에서 지적한 리게띠나 뻰데레쯔끼의 음향작곡법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그들과는 달리 우리 나라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음향적특성을 구현한 민족적구체성을 띠고있으며 민족적인 색갈과 민족적인 향취에 기초한 민족적인 피가 흐르고 정신이 살아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조국과 민족이라는 개념은 안중에도 없고 국적도 민족별도 없는 이른바 《세계적인 음악》의 구실밑에 현실에서 도피하고 자기 민족과 인민을 외면하는 유럽전위음악에 큰 충격을 주고 현대주의음악의 앞날에 대한 큰 문제성을 던져주었다. 이것은 유럽현대음악계에서 오직 윤이상음악에서만 볼수 있는것이다.
한편 윤이상의 음악은 우에서도 언급되였지만 음향작곡법일반이 그러한것처럼 옛날의 악절법에서 벗어나 종래의 형식구성원칙을 타파하였다. 이러한것으로 하여 유럽현대음악계에서는 윤이상음악을 당시(1960~1970년대초)에 널리 성행하였던 이른바 《개방된 형식》, 《열려진 형식》과 한계렬에서 고찰하기도 하였는데 윤이상음악은 이러한 음악과도 역시 근본적으로 구별되는것이다.
죤 케이지를 비롯한 일부 작곡가들이 실험적으로 작곡하여 일정하게 성공을 거둔 《우연성의 음악》에서의 《개방형식》이라는것은 음악의 완결성과 결정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곡가의 작곡활동을 연주가의 연주활동에까지 포함시키는 음악이며 작품의 형식구조에 있어서도 시작과 끝이 없는 비결정적인것이다.
작곡가에 의하여 작곡된 음악작품이 연주가들이 연주할 때마다 우연적인 계기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음악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리 윤이상음악은 철저히 결정성을 띠고있어 작곡가의 창작적의도가 처음부터 완전히 반영되고있으며 그 형식구조에 있어서도 무한한 음향흐름의 한 단편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에는 음악발전의 질서와 구성이 뚜렷하고 결정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윤이상자신도 《우연성의 음악이라는 의미에서의 <열려진>, <개방된> 형식들을… 한번도 써본적이 없다.》고 밝히였다. 이러한 사실은 연주가의 연주활동을 작곡활동에 포함시킨다는 미명하에 작곡이라는 예술적작업의 탐구적 및 창조적세계를 제한시키고 더 나아가서 작곡이라는 예술자체를 없애버리게 되며 음악에서의 무질서를 조성시키는 작곡방식으로부터 음악본래의 의미를 고수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윤이상음악은 지나간 약 30여년간 유럽전위음악의 잡다한 양식들속에서도 그의 확고한 민족성과 전통성으로 하여 자체발전의 커다란 변화과정을 겪어오면서도 그 민족적이며 전통적인 근본기초를 허물지 않고 꾸준히 이어오면서 유럽전위음악의 지도적인 지위를 유지하여왔다.
유럽전위적인 작곡가들의 작품들에서 《실험》의 미명하에 만들어진 음향작곡법, 우연성의 작곡원칙들을 비롯한 각종 작곡법들은 그 자유주의적산만성으로 하여 별의별 《실험》들이 다 나타나고있어 1960~1970년대 유럽현대음악계를 매우 소란스럽게 하였다. 이 시기에는 지어 무대장면적인 음악외적요소들이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에 도입되였는가 하면 전기청소기소리같은 소음들까지도 음악에 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음향들은 기괴한것이거나 부조리한것에 이르기까지 무엇인가를 과장할 목적에로 음악을 변질시켰다. 그러한 결과 작곡가의 주관을 무시하는 경향이 극도에 이르러 작곡가의 개성적의도, 작품에 반영되는 주관적측면을 완전히 포기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음악에서 인간성을 찾아볼 여지도 없게 되였다.
유럽음악계에서 청중들은 음악에서의 인간성, 인간미를 갈구하였다. 《인간성에로 되돌아가자》 이것이 당시 유럽현대음악앞에 나선 절박한 요구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 윤이상음악은 음악에서 전통성을 유지하고 민족성을 살렸으며 음악의 고유한 인간성을 고수하였던것이다. 이미 1966년에 창작발표한 관현악곡 《례악》이 성공을 거두게 된것도 바로 유럽전위음악의 세계에서 다른 모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기 작곡지향에 따라 음향작곡법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다른 작품들에서 시들어가고 없어져가던 그 점을 확고히 고수하였기때문이다.
음악에서 인간성의 상실, 고유한 의미에서의 음악의 파괴, 이것은 1960~1970년대 유럽현대음악을 위기에 처하게 하였다. 이 위기에서 현대주의음악을 구원한것이 바로 윤이상음악이다.
윤이상은 주장하기를 《음악에는 인간의 피와 정신이 통하고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으며 또 《나에게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역시 인간으로서의 본래 모습, 현대적인 및 예술가로서의 자각, 그런 면이 점점 강해졌다.》고 말하였다.
윤이상의 이러한 주장과 관점은 그의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들, 1980년대 작품들에 원숙한 높이에서 구현되여있다.
이미 1970년대에 바이올린협주곡을 비롯한 일련의 협주곡들에서 나타나고있던 자유에 대한 인간의 지향, 인간의 해방과 억압과 착취에 대한 항거의 정신이 반영되기 시작하였지만 1980년대의 5개 교향곡을 비롯한 모든 작품들에는 반전, 반핵과 세계의 평화, 인류의 행복,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수억만 민중에 대한 뜨거운 동정에 기초한 심오한 정신세계가 반영되여있다. 따라서 그 음악도 인간성, 인간적감정, 인정미가 깊이 흐르고있으며 인간의 리해에 더욱더 접근하고있다. 이에 따라 윤이상음악은 그 음악적수단의 사용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는 불협화음으로부터 협화음에로, 비선률성으로부터 풍부한 선률성에로, 순전한 무조로부터 조성의 회복 등과 같은 음악적수단들의 완화현상으로도 나타났다.
이것은 윤이상음악이 복잡하고 착잡한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적현실에서의 정신적안정을 보여주었으며 사회의 선진적인 력량, 인류량심의 지향에 대한 정신적인 지지로 될뿐아니라 유럽전위음악세계의 일부 젊은 세대들이 나가고있는 분별없는 급진적인 창작경향에 대한 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조국땅을 멀리 떠나 조국과 민족을 그리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한 로작곡가의 이러한 풍부한 창작적체험과 경험은 전후 유럽전위음악이 수십년을 두고 모대기고 모색하던 세계 현대주의음악이 나갈 길은 오직 자기 민족에 발을 붙이고 자기 조국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두는데 있으며 언제나 민중과 함께 나가는 길이라는 심중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상의 모든 사실을 요약하면 유럽현대음악사에서 윤이상음악의 위치는 첫째로, 방황하는 유럽현대주의음악에 동방 특히는 조선민족의 음악적요소에서 갈 길을 찾게 하여준 지도적인 지위에 있으며 둘째로, 위기에 놓인 유럽현대주의음악에서 고유한 의미로서 음악적가치를 고수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있다는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