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의 작곡가 설명순
김일성상계관인이며 로력영웅, 인민예술가인 설명순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비롯한 사상예술성이 높은 명곡들을 많이 창작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작곡가이다.
설명순은 주체24(1935)년 5월 25일 평양시 동대원구역 신리동(당시 평양부 신리1리)에서 보이라공가정의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하였던 그는 몹시 빈곤한 가정에서 태여난것으로 하여 축음기가 있는 집들에서 울리는 노래소리들을 귀동냥해 들으며 음악에 대한 소박한 꿈을 키웠다.
조국이 해방된 후 그는 평양 제13소학교(당시)와 평양 제4중학교(당시)에 다니며 배움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되였다. 이 시기 그는 학교취주악대에 망라되여 클라리네트연주를 하였으며 교내써클무대들에서 풍금과 피아노를 연주하여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다.
설명순의 음악적재능과 희망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포화속에서 그리고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을 지켜가는 성스러운 군사복무의 나날에 더욱 활짝 꽃펴났다.
주체42(1953)년 1월 인민군대에 입대한 설명순은 곡사포병으로 복무하면서 중대써클책임자가 되여 합창지휘도 하고 화선악기도 만들어 군인들의 전투사기를 힘있게 고무하였다.
전후시기에는 군악소대 대원으로 군사복무를 계속하면서 려단합창을 지휘형상하여 집단군예술경연에서 1등을 하였으며 군인들을 전투정치훈련에로 고무추동하는 군악활동에도 적극 참가하였다.
이처럼 불비 쏟아지는 화선에서와 전후 조국보위초소에서 전투적인 예술선전활동을 벌려오는 나날에 그는 수령과 조국에 대한 결사옹위정신으로 충만된 우리 인민군군인들의 고상한 정신세계와 생활정서를 깊이 체득할수 있었으며 이것은 그의 음악창작을 추동하고 훌륭한 음악예술작품들을 창작할수 있는 무궁무진한 샘으로 되였다.
오늘 우리 인민들과 군인들속에서 사랑을 받고있는 가요 《가마마차 달린다》는 작곡가 설명순이 주체48(1959)년에 창작한 처녀작이였다. 당시 려단군악소대 대원으로 복무중이던 설명순은 전술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오의 뒤를 따라 흥겹게 달리는 가마마차를 보고 창작적충동을 받아 이 노래를 작곡하였다. 그때 그는 24살의 젊은 병사였다.
우리 인민군군인들의 혁명적락관주의와 락천적인 생활모습을 경쾌한 선률에 특색있게 담은 가요 《가마마차 달린다》는 주체49(1960)년 2월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진행된 조선인민군협주단의 공연무대에서 남성합창으로 형상되여 수령님의 높은 치하의 교시를 받았다.
설명순은 주체49(1960)년 4월부터 조선인민군협주단 창작부에 소환되여 전문작곡가로 창작활동을 하게 되였다.
이름없는 한 병사의 재능의 싹을 귀중히 여기고 따뜻이 품어 키워주는 조선로동당의 손길아래 설명순은 이렇게 작곡가로 인생전환을 하게 되였다.
룡남산기슭에 봄빛이 무르녹던 주체52(1963)년 5월 어느날 설명순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만나뵙고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정문에서 설명순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노래 《가마마차 달린다》를 창작한 작곡가라고 못내 반가와하시며 그가 음악창작을 하면서 고심하던 문제들을 일일이 들어주시고 음악을 우리 인민의 비위와 정서에 맞게 창작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어린 나이에 군복을 입고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였으니 공부를 못하였겠다고 하시며 앞으로 음악공부도 하고 좋은 노래들을 많이 지으라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그후 설명순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깊은 관심과 사랑속에 평양음악대학(당시) 작곡학부에서 체계적인 음악창작교육을 받았으며 이때부터 가요창작활동을 줄기차게 벌려 《초병은 수령님께 뜨거운 인사를 드립니다》(1962년), 《초병은 노래하네》(1964년), 《초소에 수령님 오셨네》(1968년), 《젊은 병사 박동무 식당근무 나갔네》(1968년) 등을 비롯하여 군인생활을 반영한 많은 명곡들을 창작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주체음악의 대전성기를 펼치던 1970년대의 나날에 설명순은 그이의 직접적인 지도와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시대정신이 맥박치는 수많은 명곡들을 내놓았다.
이 시기 그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격조높이 칭송한 송가《강철의 령장 김일성원수》(1971년)를 비롯하여 《장군별》(1972년), 《나는야 녀성중대 특무장》(1972년), 《유격대말파리 달리네》(1978년), 《군항의 저녁》(1979년)을 비롯하여 수십여편의 명곡들을 창작하였다.
이외에도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1972년)중에서 《수령님 품속에서 영생하리라》, 《간호원의 붉은 정성》, 《간호원의 생각은 깊어만 가네》, 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하라》중에서 《홀로 핀 진달래》 등…
작곡가 설명순이 1970년대에 이렇듯 인민들이 사랑하는 명곡들을 줄기차게 창작해낼수 있은것은 그에게 재능의 나래를 달아주시고 창작의 한걸음한걸음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스승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과 크나큰 믿음, 세심한 지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피바다식혁명가극의 새시대를 펼쳐가시던 력사의 나날에 늘 그를 몸가까이에 두시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며 재능의 싹을 틔워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을 창조하던 나날에 그이께서는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들으시면서 잘 썼다고, 특히 《간호원의 붉은 정성》을 높이 평가해주시였으며 《남천강의 노래》를 들으시고는 선률에 담겨진 심중한 오유를 지적하시면서 되게 비판도 주고 원칙적으로 이끌어 창작에서 더 큰 힘을 내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그는 능히 잘못을 깨닫고 좋은 노래를 창작할것이라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창조현장을 현지지도하시는 나날에는 그를 곁에 부르시여 노래선택과 장면음악문제, 관현악편곡과 주제선률의 관통문제에 이르기까지 친히 그의 견해도 물으시고 합평도 해주시며 그의 창작적안목과 식견을 넓혀주시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우리 창작가, 예술인들의 위대한 스승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음악예술의 대화원을 펼쳐가시던 1970년대의 나날에 설명순작곡가의 재능을 꽃펴주시기 위해 바치신 직접적인 지도와 그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와 형상창조 및 보급방향에 대해 주신 가르치심만 하여도 무려 97차에 이른다.
어버이수령님과 함께 천만의 전사, 제자들, 인재들을 키워오신 위대한 정치가이시며 음악의 대거장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슬하에서 재능있는 작곡가로 자라난 설명순은 그 이후 장군님께서 사상이 명백한 노래라고 높이 평가하신 《충성의 대답소리 <알았습니다>》와 생활을 깊이있게 그린 좋은 노래들이라고 평가해주신 《령넘어 오고가는 정》, 《제대군인 그 총각 영웅탄부 되였네》를 비롯한 사상예술성이 높은 명곡들을 창작하여 위대한 장군님께 크나큰 기쁨을 드리였다.
이 나날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과 믿음속에 인민상계관인(1971년 12월), 공훈예술가(1973년 3월), 인민예술가(1978년 9월) 칭호를 수여받았다.
1980년대에 설명순은 위대한 스승의 손길아래 자라난 이름있는 작곡가답게 변함없는 창작적재능과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그가 주체69(1980)년에 작곡한 가요 《당중앙의 불빛》은 인민의 행복을 위해 심혈과 로고의 한밤을 지새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절대적인 신뢰와 흠모의 정을 사색적이면서도 은근하고 경건한 선률에 담아 정서깊게 형상한 명곡으로서 조선중앙방송과 중앙TV의 심야방송음악으로 울려퍼지며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하였다.
설명순은 이 시기 조선인민군협주단 음악창작실 실장, 창작과 과장, 창작부단장으로서 협주단의 작품창작을 조직지휘하는 한편 명곡창작전투를 정력적으로 벌려 경애하는 장군님께 계속 기쁨과 만족을 드리였다.
1980년대 전반기에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완성된 노래라고 하시며 친히 제목을 고쳐 주신 가요 《강산에 만발한 꽃송이》(1981년, 본래 제목은 《꽃》)를 비롯하여 《꿈같이 황홀한 창광거리》(1980년), 《향도의 해발아래 빛나는 평양》(1984년) 등을 작곡하였다.
그가 1983년에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평양에 대한 노래를 지을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받고 작곡한 《평양은 나의 심장》은 해와 별 빛나는 주체조국의 수도를 정서깊은 선률에 담아 긍지높이 칭송한 명곡으로서 장군님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심야방송음악으로 울리며 인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후반기에도 그는 《말해주리 병사의 사랑을》(1986년), 《친애하는 그이는 우리와 함께》(1988년), 《조국의 귀중함을 깨달은것은》(1989년)을 비롯한 수십편의 명가요들을 창작함으로써 관록있는 작곡가로서의 모습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1990년대 전반기에 설명순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정치적신임과 배려로 조선인민군 소장의 군사칭호를 받고 조선인민군협주단 단장으로 사업하면서 혁명군가소리 더 높이 울리며 당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드는 길에 충정을 다바치였다.
뜻깊은 1992년의 2월의 명절을 맞으며 그는 가요 《인민은 노래하네 김정일동지》를 창작함으로써 장군님을 삶과 행복의 은인으로, 어버이로 모시고 사는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경모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하여주었다.
이 해에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주체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우리 군대와 인민의 드높은 긍지와 영광, 위대한 령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폭넓게 구가한 송가 《김정일동지는 우리의 최고사령관》을 내놓음으로써 장군님께 충직한 선군시대 나팔수로서의 모습을 더 뚜렷이 보여주었다.
뜻밖에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후 제국주의무리들의 비렬한 봉쇄와 압살책동속에 고난의 행군을 하며 붉은기수호전을 벌리던 준엄한 시기에 그는 《오늘의 7련대 되리라》(1996년), 《수령님은 영원한 태양》(1996년)을 창작하여 어버이수령님을 세월의 끝까지 모시고 따르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철석의 의지와 혁명적량심,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높이 구가하였다.
40여년에 걸치는 설명순의 음악창작에서 최절정을 이룬것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창작이다.
그가 온 나라 인민들의 한결같은 소원과 념원을 담아 주체의 태양송가를 짓게 된데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주체82(1993)년에 설명순작곡가가 불치의 병이라는 치명적인 진단을 받았다는 보고를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유능한 의사들을 동원하여 수술을 하고 귀한 약재들도 우선 보장해주도록 하여주시였으며 치료후 휴양소들에서 안정치료를 받도록 은정깊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이 나날에 설명순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실뿐아니라 온 나라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태양으로 모시고 끝없이 신뢰하는 군민의 절절한 념원과 장군님에 대한 전인민적인 송가를 학수고대하는 군대와 인민들의 열렬한 청원을 받아안게 되였다.
더우기 어느 한 인민군휴양소에서 만난 비행사들이 이름있는 작곡가가 백두산에서 솟은 태양의 송가를 짓지 않고 무얼하는가고 하는 호된 질책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충실한 전사의 의리, 제자의 의무에 대한 자각을 심장에 새겨안고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최전연초소들과 공장과 농촌을 찾아 전사들과 인민들의 절절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그속에서 새롭고 독특한 선률의 싹을 찾고 한음한음을 적어 나갔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일일천추로 념원하여온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는 이렇게 창작되여 주체86(1997)년 2월 15일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당시)의 연주로 온 세상에 첫 고고성을 터치였다.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끈질긴 포위속에서 조국과 민족의 존망을 걸고 고난의 행군의 일대 격전을 치르던 나날에 수천만군민의 심장의 열광으로 높이 울린 위대한 김정일장군 찬가는 백두에서 시작된 수령숭배의 숭고한 혈통을 이어 어떤 역풍이 불어와도 오직 경애하는 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려는 조선의 의지와 신념을 온 세계에 과시한 장엄한 선언이였다.
이후에도 설명순은 선군시대 작곡가의 높은 긍지와 영예를 안고 창작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려 《우리를 건드리는자 죽음을 면치 못한다》(1997년), 《장군님 모셨던 그날을 못 잊어》(1998년), 《롱구경기 좋구나》(1998년), 《우리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1999 년) 를 비롯하여 시대의 숨결이 맥박치는 많은 노래들을 창작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12월 어느날 그를 부르시여 다정히 손을 잡으시고 앓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며 동무는 좋은 곡을 많이 쓴 작곡가이며 민족의 재부라는 최대의 평가를 안겨주시였다.
참으로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는 혁명전사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심원한 음악세계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속에 안겼기에 설명순은 이름없던 병사음악가로부터 온 나라 인민이 다 알고 사랑하는 이름있는 작곡가로 성장할수 있었으며 민족의 재부라는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평가를 받아안을수 있었던것이다.
설명순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높은 창작실천으로 받들어온 작곡가이다.
그의 가요작품들은 주제령역이 매우 넓고 종류와 양상이 다양하면서도 선률적특색과 개성이 뚜렷한것이 특징이다.
흔히 작곡가들을 보면 송가풍의 노래 또는 행진곡풍의 노래창작에 특기가 있다든가 민요풍의 노래나 서정가요풍의 노래를 잘 쓰는 등 자기의 창작적개성을 가진다. 그러나 설명순은 다양한 가요종류들을 다 쓰면서도 사상예술성이 높은 명곡들을 많이 내놓았다고 할수 있다.
그의 기본특기가 발휘된것이라고 할수 있는 송가명곡들만 보더라도 그 매개 작품들이 다 자기 얼굴이 뚜렷하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 《김정일동지는 우리의 최고사령관》 등은 장중하고 폭넓으면서도 경건하고 숭엄한 송가적특성과 밝고 씩씩하며 박력있는 행진곡적 성격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있는가 하면 《초병은 수령님께 뜨거운 인사를 드립니다》, 《당중앙의 불빛》, 《평양은 나의 심장》 등은 사색적이고 경건하며 절절한 정서가 짙은 서정적인 송가들이며 《친애하는 그이는 우리와 함께》는 밝고 환희적이면서도 약동적이고 행진곡적인 품격이 있는 작품이다.
설명순은 생활적인 노래창작에도 솜씨가 있는 작곡가이다.
그가 창작한 가요 《보람찬 병사시절》, 《말해주리 병사의 사랑을》, 《조국은 병사들을 잊지 않으리》, 《령넘어 오고가는 정》 등 수많은 노래들은 혁명적군인정신이 맥박치는 병사들의 다양한 생활과 군민의 뜨거운 마음을 통속적으로 담은것으로 하여 군인들과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불리우고있다.
설명순은 민요풍의 노래나 해학적인 성격의 노래창작에서도 짝지지 않는다.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민요풍의 노래들인 《백두산명승가》, 《노래하세 대홍단》, 《우리의 농촌은 도시를 닮아가요》,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가》 등과 해학적인 성격이 짙은 《기쁨 절로 노래 절로 웃음도 절로》(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중에서) 등이 그 뚜렷한 실증으로 된다.
설명순은 주체음악예술발전에 기여한 특출한 공로로 김일성상 (1987년)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주체92(2003)년 11월 14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과 배려속에 봉화예술극장에서는 《설명순음악회》가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로작곡가의 공로를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그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으며 주체94(2005)년 5월 생일 70돐을 맞는 설명순에게 사랑의 생일상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한생 혁명의 군복을 입고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드는 길에 충정을 다해온 선군시대 로작곡가의 음악창작의 거세찬 열정은 오늘도 변함없이 타올라 새 세대 창작가, 예술인들의 심장마다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장엄한 대고조진군에서 시대의 나팔수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다해나갈 의지를 더욱 굳게 다져주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