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주제가요의 본보기
《수령님의 높은 뜻 붉게 피였네》

 

주체59(1970)년 3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중앙예술단체의 창작가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 내놓을 공연준비를 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한 작곡가에게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고매한 덕성을 주제로 하는 녀성중창곡을 창작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받아안은 믿음은 더없이 영예롭지만 작곡가는 그 과업관철을 위한 첫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다. 녀성중창곡이라고 하면 의례히 생활적이고 발랄하게만 창작해온 그로서는 덕성주제의 중창곡을 짓자고 하니 노래의 상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던것이다.

그해 5월 중순 어느날 녀성중창곡 창작정형을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래식으로만 하려 하지 말고 새로운 녀성중창곡을 개척하겠다는 창조적립장에 서서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덕성을 노래하는 녀성중창곡은 고상하고 품위가 있어야 하므로 그런 선률을 찾아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작곡가는 신심에 넘치여 창작을 다그쳐 련이어 2편의 녀성중창곡을 써냈다.

그런데 그 2편의 노래가 다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첫 노래는 선률이 너무 경박해서 위대한 수령님의 덕성을 노래하는데 손상을 줄수 있고 두번째 노래는 선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면서 사설조로 되여있다고 지적하시였다.

이것은 다 작곡가가 열정이 없이 노래를 지었기때문이라고 그 원인에 대하여 밝혀주신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덕성을 노래하자면 그 누구보다도 수령님의 은혜와 고마움을 심장이 끓도록 느끼고 노래하고싶은 격정에 사로잡혀 밤이나 낮이나 시간가는줄 모르고 창작에 열중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심한 자책을 느낀 작곡가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한없는 사랑속에 나날이 꽃펴나는 농업근로자들의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담은 녀성중창곡을 창작하였다.

녀성중창곡을 완성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창조현장에 나오시여 노래를 들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제야 노래가 제곬으로 들어갔다고, 위대한 수령님의 덕성을 아주 고상한 감정으로 품위있게 형상한것이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잠시 생각을 더듬으시다가 후렴부분이 선률의 폭이 넓지 못하고 잘게 엮어졌다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자기 감정을 다 뽑을수 있도록 선률을 탁 틔워주자고 이르시고는 친히 자신께서 생각하시는 후렴부분선률을 불러주시였다.

작곡가는 흥분속에 그 선률을 채보하여 노래의 후렴부분을 수정완성하였다.

며칠후 다시 형상한 노래를 들어보시고 곡이 좋아졌다고 매우 기뻐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사색에 잠겨계시다가 노래를 다시한번 더 들어보시고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곡은 좋은데 가사가 잘되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가사를 고쳐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후 창작가들이 세번씩이나 수정한 가사를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사를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하겠다고, 가사는 매절마다 사상이 명백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1절에서는 수령님을 높이 모신 우리 인민의 영광을 노래하고 2절에서는 날로 륭성번영하는 사회주의조국을 노래하고 3절에서는 수령님을 천만년 모시고 살아가려는 충성의 결의를 담아야 한다고 그 창작방향까지 가르쳐주시였다.

창작가들이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집체적지혜를 합쳐 밤을 새우며 애썼으나 종시 명가사를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무렵 몸소 창조현장에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내가 가사를 가져왔소.》라고 하시며 자신께서 손수 친필하신 가사를 내놓으시였다.

 

수령님의 높은 뜻 붉게 피였네

 

삼천리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행복의 노래소리 넘쳐흐르네

수령님 모시고 사는 이 행복

인민들은 이 영광 노래부르네

은혜로운 어버이 넓은 품속에

천리마의 조국이 꽃피여났네

 

해마다 농장벌에 만풍년들고

공장엔 로동의 기쁨 넘치네

수령님 이끄시는 주체의 조국

온 세상에 찬란한 빛을 뿌리네

수령님의 높은 뜻 조국강산에

영원한 꽃으로 붉게 피였네

 

끝없는 이 행복을 노래부르며

사람들 화목하게 살아간다네

수령님 높은 은덕 가슴에 안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갑니다

자애로운 어버이품속에 안겨

천만년 길이길이 살아가리라

 

가사를 받아안은 창작가들의 감격은 이를데 없이 컸다.

참으로 읽을수록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끝없는 은덕을 노래하는 우리 인민의 절절한 흠모와 충정이 넘쳐나고 평이하면서도 넓은 폭과 깊이를 가진 명구로 엮어진 걸작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새 가사를 붙인 노래를 세번씩이나 반복하여 들어보시고 이전 가사로도 들어보신 다음 의견을 물으시였다.

새 가사가 좋기때문에 노래가 한결 살아난다는 창작가,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그이께서는 그러면 됐다고 하시며 새 가사로 련습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녀성중창 《수령님의 높은 뜻 붉게 피였네》는 주체59(1970)년 11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 경축공연무대에서 관중들의 크나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높이 울려퍼지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후 이 노래에 대하여 《〈수령님의 높은 뜻 붉게 피였네〉는 잘 지은 노래입니다. 그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좋습니다. 노래가 유순하게 흐르면서도 감정을 승화시켜 줍니다. 한번 듣고나면 다시 듣고싶은것이 노래 〈수령님의 높은 뜻 붉게 피였네〉의 특징이라고 말 할수 있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 노래를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흠모하여 칭송하는 덕성주제가요의 본보기, 대 중가요의 기준곡으로 내세워주시였다.

 

 

 

 

 

 

 

2. 해마다 농장벌에 만풍년들고

공장엔 로동의 기쁨 넘치네

수령님 이끄시는 주체의 조국

온 세상에 찬란한 빛을 뿌리네

수령님의 높은 뜻 조국강산에

영원한 꽃으로 붉게 피였네

 

3. 끝없는 이 행복을 노래부르며

사람들 화목하게 살아간다네

수령님 높은 은덕 가슴에 안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갑니다

자애로운 어버이품속에 안겨

천만년 길이길이 살아가리라

 

 

 

 

장마철과 겨울철에만 나오는 노래

 

주체77(1988)년 봄 어느날 창작가들은 노래 《푸른 하늘 펼치고싶어라》를 지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올렸다.

노래를 들어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좋다고 하시면서 여러차례 지도하여 명곡으로 완성시켜주시였다.

그런데 그후 반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노래는 좀처럼 나올줄 몰랐다.

창작가들이 몹시 궁금한 마음속에 그 해를 보내고 맞이한 주체78(1989)년 1월 4일이였다.

창작가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이 뜨겁게 어린 말씀을 전달받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당부문의 일군들에게 노래 《푸른 하늘 펼치고싶어라》도 좋지만 시기적으로 고려할것이 있어 당분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이 노래에 《비야 비야 내리 지 말아》라는 구절이 있는데 눈비가 적게 내려 애를 먹고있는데 그런 노래를 내보내면 인민들이 좋아하지 않을것 같아 내보내지 않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창작가들에게 다른 의견이 없는가고 물어보고 없다면 앞으로도 이 노래는 눈비가 많이 내릴 때, 인민들이 눈비를 기다리지 않을 때에만 내보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노래 한편을 놓으시고도 먼저 인민을 생각하시고 인민들의 요구를 헤아리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그후 방송과 TV에서는 장마철이나 겨울철에만 이 노래가 울려나오고있다.

 

산에도 들에도 비가 오는데

오늘도 머나먼 길 떠나가시네

비야 비야 내리지 말아 사랑어린 그 길에

이 내마음 푸른 하늘 펼치여가고싶어라

 

 

 

《졸작》이 명작으로 된 사연

 

어느날 한 시인이 다른 나라에서 남달리 느낀 생활체험과 깊은 사색속에 창작한 가사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한 일군앞에 내놓았다.

《가사는 좋은것 같은데 총잡은 군인들의 생활과 거리가 좀 먼것 같지 않소. 외교부문의 일군 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할지 몰라도… 내 생각은 이런데 어떻소? 작가동무》

가사를 읽고나서 머리를 가로저으며 하는 일군의 말이였다.

《…》

뜻밖의 의견이고 또 그의 말에도 일정하게 일리가 있어보여 다소 할말이 있었으나 자기 주장을 내놓지 못하고 작가는 잠자코있었다.

일군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총잡은 군인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주제의 노래가 필요하오. 이런 의미에서 놓고 볼 때 이 가사는 졸작이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으나 겸손한 시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옳습니다.》라고 얼버무려 대답하였다.

내 나라가 제일로 좋다는 사상감정, 이것이 어찌 다른 나라에 드나드는 외교부문의 일군들에게만 국한된 사상감정이겠는가, 내 나라가 제일로 좋다는 사상감정이야말로 민족제일주의정신이 강한 우리 인민의 주도적인 사상감정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가사를 반복하여 읽어보며 두고두고 생각해보아야 《졸작》이라는 그 일군의 평가가 옳은것 같지 않았다.

그냥 묻어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한 그는 몇몇 창작가들에게 가사를 내놓고 의견을 물었다.

모두가 특색있는 작품이라고 하면서 어서 빨리 곡을 붙이도록 하라고 고무해주었다.

이렇게 되여 이 가사에 곡이 붙여지게 되였다.

주체80(1991)년 4월 15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4.15경축공연무대에서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가 울리였다.

 

이국의 들가에 피여난 꽃도

내 나라 꽃보다 곱지 못했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벗들이 부어준 한모금 물도

내 고향 샘처럼 달지 못했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노래도 아리랑곡조가 좋아

멀리서도 정답게 불러보았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해와 별 비치여 밝고 정든 곳

내 다시 안길 땐 절을 하였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랄라랄라 랄라라 랄라랄라라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공연이 끝났다.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뜻밖에도 크나큰 감격과 환희에 휩싸이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더없이 만족하신 음성으로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조선민족제일주의가 진한 노래라고,이번 4.15명절을 맞으며 아주 훌륭한 노래가 나왔다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감격에 겨워하는 일군들과 창작가들을 둘러보시며 이 노래는 본토배기와 퇴역장령, 외국출장중에 있는 사람, 다른 나라에 망명한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의 심정에 맞으며 어제도 맞고 오늘의 시대에도 맞는 훌륭한 노래라고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노래는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다 좋아할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강냉이밥에 된장을 먹어도 조선이 제일이라는 감정이 나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한 일군에 의하여 《졸작》의 루명을 쓰고 세월의 이끼속에 영영 묻힐번 하였던 작품이 음악예술의 위대한 천재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예지의 빛발아래 명작의 단상우에 보란듯이 오르게 되였으며 후날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주제가로 빛을 뿌리게 되였다.

 

 

 

《력사적인 통일음악축전》중에서

 

연회상에 깃든 이야기

 

주체79(1990)년 9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범민족통일음악회 준비사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면서 통일음악회 일정에서 페막연회가 가지는 의의를 깊이 헤아리시고 해당 부문의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한달음에 달려와 인사를 올리는 일군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수고한다고 반기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범민족통일음악회 일정에서 페막연회가 절정을 이루는것만큼 이채를 띠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민족적특색이 있으면서도 통일분위기가 나도록 잘 조직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일군들은 페막연회를 어떻게 조직하면 좋겠는가 한마디로 페막연회의 주제를 어떤 각도에서 세워야 하겠는가에 대하여 여러차례 모여 앉아 토의를 거듭하였으나 이렇다할 명안을 찾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페막행사이니 요란스럽게, 폭을 넓게 하여 흔들었다 놓는것이 여운을 남기는 좋은 방도라고만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이러한 심정을 헤아려보시고 범민족통일음악회 페막연회를 민족적특색이 있으면서도 통일분위기가 나도록 할데 대한 명철한 가르치심을 주신것이다.

민족적특색이 있으면서도 통일분위기가 나는 연회상!

이것은 범민족통일음악회행사의 총적주제에도 맞으며 민족적특색과 자주적평화통일로선에도 적절 명처방이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연회장 한가운데 조선지도를 형상한 대연회탁을 만들어놓고 그 우에 지방별에 따르는 특산물들과 과일, 청량음료들을 놓을데 대한 묘안을 내놓으시고 연회에서 통일의 축포가 터져오르는것을 상징하는 의식을 하며 《민요를 따라 삼천리》음악회를 진행할데 대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민요를 따라 삼천리》음악회에서는 북과 남, 해외동포음악가들이 자유롭게 출연하여 각 도의 특색있는 민요들을 부르게 함으로써 연회분위기가 민족의 통일열망과 의지로 충만되게 할데 대하여서도 세심히 일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는 일군들의 눈앞에는 페막연회의 규모와 순차, 그 실행을 위한 방법론적문제들까지 환히 안겨들었다.

일군들은 신심에 넘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성대한 《통일잔치상》을 마련하는 사업을 하나하나 다그쳐나갔다.

연회장정면에 범민족통일음악회 마크를 부각하여 내걸고 《민요를 따라 삼천리》라는 글발 을 드리웠으며 그 좌우측에 《삼천리금수강산 내 조국을 노래하자!》, 《겨레여 통일의 노래 높이 부르자!》라는 구호를 게시하였다. 그리고 연회장 중심에 조선지도로 형상된 대연회탁을 전개하여놓고 그 우에 꽃으로 《통일잔치상》이라는 글을 장식하였으며 지방별 특산물과 과일, 청량음료들을 차려놓았다.

주체79(1990)년 10월 23일 저녁 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 자리잡은 청년중앙회관에서는 범민족통일음악회의 성과적진행을 축하하는 성대한 페막연회가 진행되였다.

연회에서는 먼저 연설이 있었다.

연설자는 내외의 동료들과 예술계인사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성대히 열렸던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성공에로 이끌어 민족의 대예술축전으로 빛나게 장식한 기쁨과 긍지를 안고 연회에 참가한 북과 남, 해외동포예술인들에게 열렬한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우리는 이번 범민족통일음악회를 통하여 통일의 길에서 무엇보다도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예술인들이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뛰여넘어 서로 화합하고 단합해야 한다는 귀중한 진리를 재확인하고 통일애국음악세력의 단합을 실현하여 통일민족음악운동을 확대발전시켜나감으로써 조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적극 기여할것을 결의하였습니다.

모두다 범민족통일음악회 대행진에 합류하여 조국통일운동의 선도자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해나갑시다.》

이어 《통일축배가》가 주악되는 가운데 참가자모두가 통일축배를 들었다.

출신도별로 연회상을 마주한 참가자들은 일시에 환성을 올렸다.

함경북도의 특산물인 회령백살구, 군감자, 감자떡으로부터 시작하여 함경남도의 사과, 찰떡, 털게, 낙지순대, 량강도의 량강술, 백두산샘물, 들쭉시롭, 평안남도의 노치떡, 녹두지짐, 송편, 설기떡, 자강도의 강계포도술, 인풍술, 과줄, 황해남북도의 찰떡, 오곡밥, 강원도의 금강샘물, 감, 대게, 경기도의 개성약밥, 인삼정과, 개성고려인삼술, 충청남북도의 깍두기, 경상남북도의 소고기매운탕, 콩나물, 전라남북도의 새끼돼지찜, 죽실밥, 제주도의 해삼탕, 고사리채, 울릉도의 게를 비롯한 수산물들 그밖의 사과, 배, 귤, 수박, 등 과일들과 다양한 청량음료, 주류들이 이채롭게 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가르치심대로 차려진 연회상은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다 오른 《통일잔치상》이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잔치와 연회상을 마주해보았으나 이처럼 희한한 잔치상을 본일이 없는 연회참가자들은 의미가 깊은 연회상앞에서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였다.

연회장에 민족의 향기와 혈육의 정이 넘쳐나고 통일의 열기가 뜨겁게 굽이치는 가운데 《민요를 따라 삼천리》음악회가 시작되였다.

평안도의 유명한 민요 《양산도》로부터 시작하여 강원도의 《신고산타령》, 제주도의 《오돌독》, 량강도의 《풍구타령》, 충청도의 《흥타령》을 비롯한 조선민요들은 산좋고 물맑은 삼천리금수강산 우리 조국의 아름다움과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생활을 훌륭하게 형상한것으로 하여 참가자들의 대절찬을 받았다.

음악회 1부가 끝나자 북과 남, 해외동포예술인들이 서로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하 였다. 미국에서 온 재미음악가도, 귀밑머리가 희여져가는 재쏘음악가도, 카나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온 동포음악가들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춤을 추고 또 추었다.

장내에 통일념원이 더욱 세차게 타오르는 속에 음악회 2부가 계속되였다.

전라도의 《까투리타령》, 경상도의 《경상도아리랑》, 함경도의 유명한 《돈돌라리》, 황해도의 《긴난봉가》, 경기도의 《노들강변》을 비롯한 우리의 민요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참가자들의 마음을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워온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부풀어오르게 하고 끊어진 민족의 노래를 다시 이을 통일의 그날에로 이끌어갔다.

음악회가 끝나자 또다시 춤판이 벌어졌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밤은 깊어갔다.

범민족통일음악회 준비위원회 위원장이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하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는 먼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통일잔치상》의 의의는 참으로 크다고 강조하면서 이번에 우리는 유구한 우리 민족음악의 얼을 꿋꿋이 지키고 민족음악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진지한 론의를 하였으며 우리의 민족음악예술이 조국통일의 튼튼한 디딤돌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일치하게 재확인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범민족통일음악회에서 다진 결의대로 통일음악대행진에 적극 합류하여 조국통일운동의 기수로서의 사명을 다해나가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그는 또한 북과 남, 해외동포음악가들이 처음으로 함께 모여 조국통일을 힘차게 노래한 뜻깊은 범민족통일음악회를 길이 추억하기 위하여 기념수표를 남길것을 제의하였다.

그리하여 범민족통일음악회 개막모임때 게양하였던 기발에 공동운영위원회 성원들과 북과 남, 해외동포음악단 단장들과 음악가들이 차례로 뜻깊은 기념수표를 하였다.

이날 건강이 좋지 않은것으로 하여 잠간 참가할것이라고 예견하였다가 연회장의 분위기에 감동되여 마지막까지 참가한 윤이상은 감격이 크면 말이 필요없다고 오늘밤은 참으로 즐겁고 감격스러운 밤이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북남은 지척이면서도 천리로 되여있었으나 이번에 서로 만나 리해하고 동포애의 정을 나눔으로써 천리가 아니라 정말로 지척으로 되였습니다. 나는 우리 조국이 하루빨리 통일되여 끝없이 번창하고 더욱 위대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였다.

남조선 《중앙일보사》기자는 연회를 정말 화려하게 잘 차렸다, 이러한 희한한 연회도 있는가, 정말 조직사업도 잘하고 사람들을 유쾌하게 놀게 하였다, 조직사업도, 행사조직도 북이 참으로 잘한다고 하면서 솔직히 말해서 이젠 이남으로 가고싶지 않다고 자기의 흥분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성원들과 재카나다조선음악가대표단을 비롯하여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한 모 음악가들은 자기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담아 오늘같은 훌륭한 연회를 마려해주신 위대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마련하여주신 뜻깊은 《통일잔치상》은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자들이 의의깊고 가슴뜨겁게 받아안은 또 하나의 크나큰 사랑의 선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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