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도 내가 전액 부담하겠소》
윈과 빠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리스트는 갑자기 북으로는 로씨야, 남으로는 뛰르끼예에 이르는 나라들을 돌면서 연주회를 벌렸다. 그렇게 하게 된데는 자기의 명성과 기교를 시위하고 떨쳐보자는 개인적인 욕망이나 리기심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1845년에 베토벤의 생일 75돐을 기념하여 본에 베토벤기념상을 세운다는 소식을 들은 리스트는 그 자금을 자기가 보장하려고 그토록 불철주야로 각지를 순회하면서 연주를 하였던것이다. 그는 이 연주려행에서 번 돈 전액을 고스란히 베토벤기념상을 제작하는데 기증하였다.
기념상제막식은 1845년 8월 12일로 정해졌다. 그해 초 리스트는 에스빠냐에 있었지만 4월에는 프랑스에서 연주회를 열었으며 또한 스위스에서도 몇번 공연하였다.
6월에 본에 도착한 리스트는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도이췰란드사람들이 기념상을 제작하고 제막식을 한다는것만 공포하였을뿐 아무런 일도 해놓지 않았다는것을 알았다.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이췰란드측에서는 일을 전개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리스트는 우선 외국과 도이췰란드 국내에서 이름있는 인사들과 예술가들을 초청해오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야 할 숙박시설을 마련하고 행사참가일정을 짜는 등 참말로 눈코 뜰 사이도 없이 돌아쳤다.
그러던 중 리스트는 베토벤의 고향인 본에 연주회를 가질수 있는 온전한 음악극장이 하나도 없다는것을 발견하였다. 음악가인 베토벤의 기념상 제막행사에 음악회도 열지 못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였지만 야속하게도 그럴만한 장소가 없었다.
리스트는 행사를 주관하는 도이췰란드측에 빨리 음악극장을 건설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런데 도이췰란드측에서는 어째서인지 답변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 주저하는 기색이였다. 그것은 자금문제때문이였다.
리스트는 뒤일을 미처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 《그것도 내가 전액을 부담하겠소. 그러니 빨리 음악극장을 건설합시다.》라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겨우 행사조직측에서는 쾔른에 있는 한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며칠사이에 땅을 고르롭게 펴고 3 000명을 수용할수 있는 가설극장을 만들어 놓았다.
급하게 극장을 짓다보니 곁에서 보면 커다란 나무상자처럼 보여 멋은 없었지만 예상외로 내부의 음향은 대단히 좋았다. 사람들은 일치하게 리스트의 성의에 의하여 일어난 기적이라고 이야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