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사노릇도 할 짓이 아니였구나》
1926년 여름 어느날 평양 경상골에 사는 한 상인의 집에서 있은 일이다.
그날 김종조는 집주인의 청으로 그의 동료상인들이 모인 앞에서 《안중근가》를 부르고있었다.
평양일대에서도 부유하기로 소문난 그 상인의 집은 소소리높은 담장을 둘러친 속에 똬리형태로 지은 큰 겹집이였는데 대문과 방문을 몇개 거쳐서야 들어가는 골방이 있었다.
상인들은 이 골방을 소리판으로 정하고 지게군 여러명을 채용하여 집안팎의 요소요소와 문마다에 경비까지 세워놓고 은밀히 김종조의 노래를 듣고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소리판에 난데없이 종로경찰서의 최가성을 가진 조선인순사가 뛰여들었다. 어디서 샜는지 밀고자가 있었던 모양이였다.
벌겋게 상기되였거나 눈물흔적들이 어려있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을 독이 어린 눈으로 쏘아보던 최순사가 김종조에게 따지고들었다.
《종조, 너 방금<사상가>를 불렀지?》
《예 불렀수다.》
이젠 다 쑤어놓은 죽인지라 될대로 되라는 대답이였다.
그러자 최순사는 눈방울을 굴리며 을러댔다.
《너 또 콩밥이나 먹고싶은가? 어디 내앞에서 다시 불러봐라.》
《흥, 부르라면 못부를것 같소.》
옥살이를 당할것은 뻔한 일이라 이왕지사 부르고싶던 노래를 목청껏 실컷 부르고 잡혀가면 직성이라도 풀릴상싶었다.
김종조는 결연히 머리를 쳐들고 노래를 시작하였다.
《명치유신》후 일본의 초대 내각총리였으며 현직 추밀원 의장으로서 왜놈들이 하내비같이 여기던 침략의 두목 이또를 통쾌하게 처단하여 조선인민의 불굴의 기상을 온 천하에 시위한 안중근의 애국적장거를 찬양한 내용으로 엮어진 《안중근가》의 대목들이 웅글은 목청을 타고 격조높이 터져나왔다.
노래뒤끝에 옥살이를 각오한 가수의 울분이 어려서인지 곡조는 더욱 비장하게 울리는듯싶었다.
망국의 비운을 담아 애절하게 시작되였다가 복수의 총성과 호탕한 웃음으로 엮어지며 통쾌하게 흐르던 곡조는 감옥대목으로 넘어가며 더욱 사람들의 심금을 뒤흔들었다.
려순감옥을 찾아온 어머니를 만나는 안중근,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두고 먼저 가는 불효자식을 생각마시고 부디 편히 계시라고 인사하는 아들에게 《여봐라 중근아, 네 눈에서 눈물이 웬말이냐, 내 아들이 분명커든 어서 눈물을 거두어라.》고 말하며 오열을 삼키는 어머니.
비분을 자아내는 이 대목을 거쳐 사형장장면에 이르러 노래는 더욱 비감절통하게 흐르면서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걷잡지 못하게 하였다.
김종조는 두눈에서 눈물을 콸콸 쏟으며 노래절반, 울음절반으로 마감대목을 넘겨갔다.
… …
안씨를 사형할 때에
청청하던 하늘은 간 곳이 없고
먹장구름 덮이더니
비방울이 후둑후둑
하늘도 슬퍼서 눈물을 흘리였도다
이때 안씨 총구앞에 나서며 하는 말이
어머님 어머님
내 살아서 이루지 못한 뜻
죽어서 혼이 되여 이루오리다
조선이 독립되여
이천만 동포들이 춤을 출 때에
이내 해골이라도
조국의 산에다 묻어를 주오
노래는 끝났으나 방안은 절통하게 흐느끼는 사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순사의 얼굴도 온통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모자를 구겨쥐고 가슴을 탕탕치던 순사는 닁큼 일어나 칼자루를 무릎에 대고 와지끈 분질러 버리며 통곡하였다.
《이놈의 순사노릇도 할 짓이 아니였구나, 어흐흑…》
이윽하여 순사는 김종조의 두손을 덥석 잡아쥐더니 《종조선생, 나도 조선사람이요. 그렇게 좋은 노래를 못 부르게 한 나를 용서하오.》라고 말하며 주머니를 뒤져 돈 15원을 내놓으며 약소하지만 담배값으로 써달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좌중의 상인들에게 칼과 모자를 자기 집에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날부터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는데 그후 해방이 되는 날까지 누구도 그 최순사를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