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좌
조선음악사개관
3. 근대시기의 조선민족음악
박사, 부교수 남상민
조선의 근대시기(19세기 중엽~1925년)는 음악예술의 사회적성격이 강화되고 대중상대, 서양음악의 보급이 두드러진 시기이다.
1) 복잡다단한 조선의 근대력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음악력사에서 새로운 개혁과 획기적인 변화는 반드시 일정한 계기점에서 이루어지며 선행한 진보적인 유산을 계승하여 그것을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는 기초우에서 이루어진다.》
― 일반적으로 근대시기는 중세와 현대와의 사이로서 자본주의제도가 지배하는 력사적시기라고 하지만 19세기 중엽부터 시작하여 1925년까지를 포괄하는 조선의 근대시기는 봉건제도를 반대하고 근대적사회발전을 지향하는 인민들의 반봉건투쟁으로 격변하는 력사의 소용돌이속에 아시아에서 패권을 노리는 유미침략렬강들과 우리 나라 주변세력들의 지배주의적인 각축전으로 전란이 계속되고 너무도 쇠약한 국력으로 하여 일제식민지로 전락된 풍파많은 시기였다. 그러한 력사적전제하에 1919년 일제의 조선식민지화를 반대하여 일어난 전민족적인 3. 1인민봉기는 근대시기 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을 뜻깊게 장식하였다.
• 1866년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침입으로부터 구미렬강들의 조선에 대한 침략이 로골화되고 한편 인민들의 반침략투쟁도 강화되였다.
• 1882년 봉건통치배들의 무능을 반대하는 임오군인폭동이 일어나고 근대적변혁을 요구하는 김옥균개화파세력의 1884년 갑신정변은 실패하였으나 1894년의 갑오농민전쟁과 같은 인민들의 반봉건, 반침략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미약하게나마 국가제도의 개혁(1894년의 갑오개혁)이 추진되였다.
• 19세기말~20세기초 세계적범위에서 동서교류가 강화되는 가운데 조선에 서양의 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 1905년의 로일전쟁을 통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우세를 차지한 일제는 미제의 지지밑에 같은 해 매국적인 봉건통치자들에게 《을사5조약》을 강박하고 식민지통치의 길에 들어섰다. 또한 1910년에는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었다.
― 중세로부터 근대사회에로의 풍파많고 격변한 이 력사적시기는 비록 길지 않았으나 조선의 음악에서는 커다란 변화와 발전이 이룩되였다.
2)근대시기 음악발전의 주요특징
근대의 음악은 민족의 자주권수호와 근대적발전을 위한 우리 민족의 운명개척력사와 밀접히 결부되여있으며 사회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면서 조선음악발전력사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놓았다.
― 음악예술에 인민들의 반봉건, 반침략애국투쟁이 적극 반영되여 그 정치적성격이 강화되였다.
• 음악예술에서 반봉건, 반침략적성격이 지배적인것으로 되였다.
• 학교들을 거점으로 음악을 통한 대중적계몽활동이 진행되여 국권회복과 나라의 근대적발전을 위한 인민들의 투쟁에 이바지하였다.
― 음악예술활동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 음악예술활동에서 대중상대가 주류로 되였고 극장들이 건설되여 매표제에 의한 음악공연이 진행되였다.
• 전문음악창작가들이 등장하고 그들에 의한 전문음악창작이 시작되였다.
• 음악예술창조에 전문음악지휘자가 등장하였다.
• 녀성음악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대중음악예술활동에 공개적으로 참가하였다.
• 대중음악보급에 신문, 잡지, 레코드와 소리방송 등 공업적수단들이 리용되기 시작하고 정규적인 음악전문교육기관이 등장하였다.
― 근대시기를 반영한 다양한 음악들이 창조되였다.
• 가요분야에서 예술화되고 통속적인 근대민요들이 출현하고 양악형식의 가요들이 창작보급되였다.
• 기악분야에서 장단성과 높은 연주기교, 속도감, 다채로운 선률전개가 중시되였다.
• 음악에서의 극성과 무대예술이 결합되여 판소리에 기초한 첫 민족가극인 창극이 창조되였다.
― 민족음악을 토대로 한 조선의 《양악양식》이 확립되여 예술활동에 리용되기 시작하였다.
• 서양의 대, 소조조식체계와 박자, 리듬이 음악창작에 새로 도입되고 대중의 음악예술활동에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 양악형식의 음악에서 행진곡적인 양상이 주류로 되고 2∕2, 4∕4박자가 널리 쓰이였다.
• 5선악보가 도입되여 음악기보에서 점차 주도적인것으로 되였다.
3) 근대시기 음악발전의 대표적성과
― 19세기말~20세기초 자주적인 근대사회발전과 반침략투쟁을 지향하는 애국문화운동이 전개되던 때 학교를 거점으로 《창가》라는 계몽가요들이 널리 창작보급되면서 양악형식의 가요가 발생하여 인민들을 반봉건, 반침략애국의식으로 교양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 19세기말에 새로운 기악종류인 산조가 발생하여 여러 민족악기들에 보급리용되면서 기악예술의 기교화수준이 보다 높아지였고 20세기초에 양악기와 그 연주형식들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 20세기초에 첫 극장 협률사가 건립되여 무대공연이 진행되고 판소리가수들에 의하여 첫 창극 《춘향전》이 창조되였다. 그후 창극형식이 보급되면서 조선에서 가극발전의 길이 열리게 되였다.

